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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한마디

이제 우리 군산의 희망을 노래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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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09.03.24

조회수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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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우리 군산의 희망을 노래하자

시골 논길을 조깅을 하면서 달리는 그 기분은 상 쾌 도 하지만. 동녘 하늘에 물드는 아침 햇살을 바라보면 사람이 사는 여러 가지의 중요성을 알게 된 다, 모처럼 우리 손자 상명이 와 손녀 채 은 이가 아빠와 엄마 손을 잡고 어제 밤 늦게 집에 와 내 품을 파고들었다,

내 손자들이 집에 오면 내 기분은 청아하고 시원한 산골짜기에서 내리는 생수 물 처 럼 상쾌하다, 그 이유는 왜 일까. 이른 아침에 먼 곳에서 울어주는, 장 닭 울음소리가, 오늘따라 더 구슬픈 율 북 리 시골 마당의 새벽이다 ,

어제 밤에 지나가던 길손을 붙들고 그렇게도 시끄럽게 짖어대던, 이웃집 삽살개는 잠이 들어 조용하고, 낮에 대나무 사이를 오 가면서 날아가던, 종다리 새들 노래가 그리운, 이 새벽에, 여러 가지를 생각해보니,

내가 그간 살아온 흔적들이 쌓여있는 고물상 같은, 내 서재 실 에서, 이글을 쓰면서 잠시 많은 생각에 잠겼다 .이 슬픔을 극복하는 길은 내가 어떤 일이던지 주어진 여건에서 최선을 다 하는 길이고, 나의 작은 일을 머리로, 가슴으로, 발로, 뛰면서, 지는 해가 더 아름다운 것처럼,

새들이 마지막 죽을 때 우는 그 소리가 더 빛나고, 아름답고 처량한 것처럼, 이제 얼마 남지 않은 마지막 날들을, 아주 소중하게 쪼개어 시간을 내 가면서, 그간 내가 삶을 통하여 채득한 데로 ,많은 일들을 소화해야 하는 시점에 내가 서 있다,

별로 한 일도 없는데 40여 년간 한곳에서 머물다 머지않은 날 그간 정들었던, 모든 것들을 정리하고 일어서야하는 그날이 오기 전에, 미 쳐 마무리를 못한 일들을 차분하게 정리해가면서, 올 한해를 보내야한다. 어떠한 미련이 있어서가 아니다 ,그간하고 싶었던 일도 많고, 해보고 싶었던 일들도 많았지만,

직장에서 나에게 기회가 그리 많지 않아, 내 고향을 지극히 사랑한다는 말 이외에는 아무 할말이 없다, 그래도 나에게는 금쪽같은 남은 날들이 나에게 있다. 그래서 요지 음 하루하루를 아주 소중하게 보내면서 남들은 24시간을 일하면 족하지만,

나는 48시간을 쉬지 않고 일 해야 한다는. 마음으로 내 몸을 추 스리면서 열심히 일 해보려고 한 다. 내가 떠난 후, 나와 함께 일하던 그들의 가슴에 무엇인가 조그마한 일이라도 그 흔적으로 남기는 일은 내가 한번밖에 연습을 해보지 못하고 살아온 그간의 경험을 그들에게 진솔하게 말하고 우리 시민들에게 최후의 모든 정열을 쏟아가면서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이 오늘의 내 일과이다,

나는 나를 요구 하는 데가 어디라도 달려갈 것이고, 내가 필요한 곳에는 언제든지. 그 자리에서 일 할 것이고, 내 고향 희망을 노래를 하련 다, 우리 군산 사람들은 위대하다,

그래서 요지 음 밀려오는 기업인들과 투자자들에게 두 손을 별리고 반갑게 그들을 맞이하고 있다 .그간 고향을 지켜온 우리는 미련한 원주민으로 남기보다는 위대한 원주민의 조상이 되어야 한 다고 생각한다,

살다보니, 나도 나이가 들어 이제 얼마 있지 않으면, 젊음을 고향땅에서 다 불살라 버리고 인간으로써 용도가 폐지가 될 것이다, 고물처럼, 골동품처럼, 나도 노년이 되면, 인간의 최후인 죽음을 향한 발걸음으로 천국을 향해 갈 것 이지만.

그래도 내가 그간 살아온 흔적들은 마라톤 풀코스를 최후까지 최선을 다해서 달려온 기진맥진한 마라톤 선수처럼. 최후 의 승 리 자 가 더 멋진 모습으로 골인지점을 달려온 것처럼, 멋진 직장 생활을 마감을 하고 또 다른 도전을 하면서 새로운 삶을 준비하면서 고향을 끝까지 지키면서 지내려한다.

우리가 사는 생활 속에서 발생한 쓰레기장에서도 봄이 오면 새 싺 이 돋아나는 것을 보면서, 새로운 인생을 노래할 것이다,

초라하게 세상에 태어났지만 멋지게 살다 가는 나그네가 되어 한걸음씩 주님께 다 가 가려 한다. 내 생애의 마지막 그 종착역이 어디 일 런지는 모르지만 마지막 한 줄까지 내게 주어진 내 노트를 다 쓰면서 모든 사람을 더 사랑하고 고향을 노래 하려한 다,

그건 누가 나를 알아주라고 하는 것이 아니고, 산과 바다에 우리살고, 산과 바다에 우리가 살았던 내 고향 군산항을 위해서 일 것이다. 우리 모두는 어렵고 힘든 사람들을, 머리로, 가슴으로, 잡아주고 발로, 일하면, 더 아름답고 훌륭한 군산이 될 수 있다,

나는 어릴 적부터 내가 이발기계로 가난한 어린 아이들을 머리를 깍 아 주었던 무면허 가짜 공짜 이발사였다, 그때 머리를 다듬어 주었던, 어떤 사람은 인근 도시의 어 였 한, 시장님이 되셨고, 어떤 사람은 약사도 되셨다,

그중에 가장 어렵고 힘든 사람은, 가난한 이발소집 아들이었는데 똥똥에 빠져서 동내 친구들과 손으로 건저내주고. 그해 여름 참외 밭에서 개구리참외를 그 친구 내 밭에서 맛있게 먹었다, 우리가 살면서 모든 질문의 해 답 은대 자연 속에 살면서 자연 속 에서 얻었다 ,

가난한 바보가 부자인 천재 보 다 더 훌륭하고 값진 생활을 하는걸 보았다, 김 수한 추기경님이 그랬고. 법정 스님의 모습이 그렇다, 역사는 빠르게 서서히 우리 앞을 지나가고, 서두르지 않고 서서히 강물처럼 오늘도 흐른 다 ,

끈질 긴 노력과 억센 파고를 이긴 자 만이, 금강의 기적을 서서히 이루어가는 역사의 주역이고, 주인공이 될 수 있지만, 우리 시민 모두는 그 역사의 주인공이 되어 가고 있다,

지난 09년 3월17일 오전 10시 군산시청 앞 광장에서 순직하신 故 이 금일<李 今 一>님 의 영결식이 있 었 다, 금강 장례식장에서 시청 앞마당까지 운구 된 고인 의 유해 앞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애통해 하면서 마지막을 그를 보내 던 그 모습을 이글에 잠시 그려 본다,

삼가 고 이금일 사무관님의 영전 앞에 명복을 비는 이 글로 그분을 추모해본다, 항상 맑은 미소에 꽃 속에 파 무 친 보기도 아까운, 나이에 가신님의 영전 사진을 바라보니, 금방 웃는 얼굴로 내 팔 장 을 스 스 럼 없이 끼어 주시던 님 의 모습이 생 각 납 니다 .

울 더 이다. 많은 사람이 울더이다. 두 손 모아서 눈물을 닦으면서, 당신을 그 토록 사랑한 남편과 두 아이들 그리고 시장님과 남녀직원들이 눈물을 뿌리 더 이다,

침통한 영결식장 바다에 생전의 당신 모습이 추억이 서린 시청 앞 마당에 밤과 낮이 없이 뿌린 당신의 꽃잎처럼 아름다웠던 그 모습은 2009년 1월15일 23시경 전문 교수 자문을 위해 회의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부질없는 대형트럭 운전수의 실수 때문에,

순직한 28년간 맺은 정이 나와 끊어지는 순간 이었지요, 언제나 다정한 당신의 열정 앞에 녹아내린 그 많은 일들. 눈물들, 땀과 피가 결코 헛됨이 없이 내 고향 군산에 밑 걸음이 될 것이니, 주님 품에서 고이고이 잠 드소서 다시 만날 그날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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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수정일 2019-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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