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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한마디

노무현의 죽음을 대하는 보수의 시선.

작성자 ***

작성일09.06.02

조회수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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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모 지역의 목욕탕을 들렀을 때였다. 씻고 나와서 전 노무현 대통령 영결식 장면을 보며 옷을 추스르고 있는데, 탕 속에서 두 명의 40대 중반의 사내가 나오면서 투덜거린다.

“저 미친놈들이 하는 짓 봐라”

“어제 보니 어떤 젊은 놈은 노무현 영정 보고 엉엉 울더라니까”

“한심한 놈들... 지들이 뭐를 안다고...”

일명 ‘보수’임을 자처하는 이들의 모습이었다.

욱~ 하고 치밀어 올랐다. 정치적인 노선은 차치하고서 한 인간이 비극적인 생을 마감했는데, 그의 죽음 앞에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이 고작 시신 앞에 침을 뱉는 모습이라니.

아니나 다를까 며칠 전에도 한 보수단체의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에 대한 공식성명을 보고 나서 기가 찼던 적이 있었다.

“...故 노무현 대통령의 자살 서거는 사법처리를 거부하고 진실을 은폐한 부끄러운 일이기도 합니다..” - 자유청년연대, 노무현 사법처리 국민연대-

어째 스스로를 ‘보수’라고 칭하는 자들은 감정을 가진 인간으로서 저런 모습을 보일 수 있는가. 도대체 인간사는 세상이 이리 정이 없어서야 어떤 희망을 갖고 살겠는가?

이들이 서거한 인간 노무현에게까지 이러한 핏발 서린 독설을 내 뱉는 것은 그들이 가진 ‘삶의 가치’가 그대로 작용하기 때문인 듯하다. 그들은 보편적인 척도로 볼 때 민주와 평화, 생명과 삶을 사랑하지 않는 듯하다. 수구냉전이데올로기(끊임없는 채움과 분열을 통해 이익을 얻는 주의)를 통해 기득권의 터를 닦고, 자연환경 파괴와 노동자 억압을 통해 재화를 창조해내며, 신자유주의가 강요하는 끊임없는 경쟁과 승리의 이데올로기를 통해 ‘부’와 ‘권력’에 대한 열망에 시달리는 듯하다. 다른 소리를 낼 수 없도록 압박하는 전체주의는 그들을 형성하는 뼈대이고, 모든 것을 재화가치로 환원하는 물질주의는 그들의 창자이며, 다른 이들을 밟아 서서 좀 더 높이 오르기 위한 발악의 현현인 이기주의는 그들의 뇌이다.



이렇다보니 빽도 없고, 연줄도 없는 상고생 노무현이 대권을 쥐고 나서 민주, 평등, 분배를 떠벌린 것에 그들은 배가 꼬였던 것이고, 대통령 퇴임 후에는 ‘삼성장학생’으로 명망이 높은 임채진 검찰총장의 지휘 아래, 노무현 대통령 재직 시절 그렇게 개혁해 보려고 기를 썼던 ‘떡 검’을 앞세워 처절한 보복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꺼리도 안 되는 사안(국정원 정보 열람 등)이 극악한 망국행위로 언론에 대서특필되면서부터 비극은 예언되었다. 이후에 이명박 정부는 그나마 몇 안 되는 노무현의 수족들을 다 떨어냈고, 명확히 근거도 없는 피의사실까지 공표하면서 노무현을 몰아 붙였다. 조중동(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은 이를 왜곡-확대 재생산해서 노무현을 인간 말종으로 색칠해 놨다.



물론 그럴만한 이유는 있었다. 우리 건설족의 대부이신 (공인)전과 14범의 이명박 각하의 도덕성이 워낙 밑바닥에 자리해 있는지라 정권의 상대적 도덕성을 끌어 올릴 수 있는 방법은 전직 대통령의 도덕성을 끌어 내리는 방법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그렇게 권력을 놓고 서민의 품으로 돌아가 소탈히 살고자 했던 노무현의 꿈은 산산이 부서졌던 것이다.



결국 이러하자, 전체주의와 물질주의, 이를 관통하는 천박한 자본주의, 지역주의, 학벌주의를 극복하려고 나서다 결국 패배한 ‘적장’ 노무현 앞에 그 이념의 추종자들은 오히려 통쾌해 하는 것이다.

그들은 민주, 평등, 분배, 화합, 약자에 대한 배려, 사법정의, 상식이 통하는 사회, 조화와 포용의 가치를 단 한 번도 꿈꿔본 적이 없음으로 그들이 맹신하는 가치 기준대로만 반응했던 것이다. 하여 일명 보수라고 스스로를 칭하는 몇몇 이들과 단체가 보이는 싸늘한 반응을 만들어 낸 것이다.



물론 상당수의 보수들은 겉으로는 애석한 표정을 짓고 있는 듯하다. 대표적으로 이명박 대통령은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을 듣고, 침통한 표정으로 “전직 대통령으로서의 예우를 다하라”라고 하지 않았는가? 하지만, 과연 사람을 벼랑 끝으로 몰아 떠밀어서 죽게 만든 후에 애도를 표하는 것이, 정말로 슬퍼서인지 아니면 반대세력들로부터 ‘역풍’을 받을 것이 두렵기 때문인지는 분간하기 힘들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이명박 대통령 그를 그 자리에 있게 만들어낸 삶의 가치 기준으로 판단해 봤을 때는 다만 그렇게 하는 것이 ‘대차계산’을 통해서 ‘순이익’이 더 남을 방범임을 간파한 것은 아닌지. 나머지 ‘보수’를 자칭하는 이들의 그것이라고 다를 바 있을까. 이들은 노무현 서거 이후 ‘화합’과 ‘대화’, ‘상생’을 얘기하지만, 왜? 그 전에는 그리하지 못했단 말인가?



환경을 파괴시키고 후손들의 미래를 끌어 쓴 결과로 자본을 불리고, 하나라도 더 갖고 높아지려는 경쟁 심리를 조장함으로 사회번영을 이룬다는 그 정신 자체가 건조한 것임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그들이 이렇게 황폐한 정신을 하고 있었는지는 차마 알지 못했었다. 이렇다 보니 노무현이 어깨에 짊어지고 간 짐의 무게가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무거운 것임을 새삼 깨닫게 된다.

노무현이 남긴 화두도 우리의 것이지만, 인간 노무현의 죽음을 대하는 저 ‘보수’를 자칭하는 이들의 냉랭함 역시 우리가 풀어야할 화두이다.
이 나라, 이 민족, 이 시대가 끌어 안아야하는 비극임은 왜 이리 많은지...
하지만 그것을 끓어 안아야 하는 우리의 마음은 왜 이리 좁은지...


이제 우리는 그만 슬퍼하자. 이 아픈 감정을 다시 안 느낄 수 있도록, 고민하자.
그리고 그 고민의 결과를 삶 속에 체현하자. 그리하면 고통은 다짐이 되고, 눈물은 희망이 될 것이다.


* 이 말은 노무현의 죽음을 애도하는 이들에게 면죄부를 주려 쓴 것이 아니다. 보수기득권층이 추종하는 가치, 즉 노무현을 죽음으로 몬 '전체주의와 물질주의, 이를 관통하는 천박한 자본주의'를 공유하면서 노무현의 서거에 가슴아파 하는 것은 오히려 보수의 냉소보다도 못한 위선과 가식에 지나지 않는다. 그 스스로 전혀 못느끼고 있을지라도...

그런면에서 군산에서 '기꺼이' 노무현의 서거에 슬퍼하고 분향한 대부분의 정치인들은 그의 죽음 앞에 슬퍼할 가치도 없는 자임을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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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수정일 2019-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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