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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를 찾아서- 군산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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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09.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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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정복규의 뿌리를 찾아서 2009.7.30.목
160. 군산지역
▲옥구고씨(沃溝高氏)
시조 고형중(高瑩中)은 고려시대에 예빈성경, 동궁시강학사(東宮侍講學士)를 지냈다고 전해올 뿐 문헌이 없어 세계(世系)나 본관의 유래 등은 알 수 가 없다. 다만 제주고씨에서 분적되었다고 한다.
조선씨족통보에는 시조 고형중이 고려시대에 문과에 급제하여 신종 때 국자제주(國子祭酒)에 이르렀다고 적혀 있다. 현재는 제주고씨와 합본하여 '제주고씨 중앙종문회'를 만들었다.
옥구는 현재 전라북도 군산에 있는 지명이다. 본래 백제 때 마서량현(馬西良縣)이었으나 통일신라 경덕왕이 옥구로 고쳐서 임피군에 속했다. 1356년(공민왕5) 금강의 조운(漕運)기지로서 진포(현재의 군산)가 되었다. 1895년(고종32)군으로 승격했다가 후에 군산에 합병됐다.
조선시대 과거 급제자는 고천수(高天授, 1545 乙巳生) : 무과(武科) 선조16년(1583) 별시 병과(丙科) 1명이 있다. 무과 1명이다.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옥구고씨는 1985년에는 총 2가구 11명, 2000년에는 총 31가구 80명이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고(高)씨는 제주고씨를 비롯 총 51개의 본관이 있으나 모두 제주고씨에서 갈라졌다. 고씨는 2000년 현재 435,839명이다. 제주고씨 325,950명, 장흥고씨 61,626명, 개성고씨 11,833명, 강릉고씨 4,626명, 횡성고씨 4,277명, 장택고씨 3,710명, 경주고씨 2,148명, 창평고씨 1,811명, 고흥고씨 1,698명, 안동고씨 1,614명, 청주고씨 1,578명, 고성고씨 1,228명, 고령고씨 1,172명, 강화고씨 1,130명, 진주고씨 1,035명, 전주고씨 1,001명 등이다. 그밖에 본관은 모두 1천명 미만이다.

▲옥구김씨(沃溝金氏)
시조 김범(金範)은 신라 김알지의 후손으로 전하는 상산김씨(=상주김씨) 시조 김수(金需)의 19세손이자 장사랑 김윤검(金允儉)의 아들이다. 그를 시조로, 본관을 옥구로 하게 된 이유는 알 수 없다.
김범 은 1540년(중종 35) 문과에 진사과로 급제, 1566년(명종 21) 내시교관에 임명되었으나 사퇴했다. 다시 학행(學行)으로 천거되어 옥과현감이 되어 조식(曺植)과 함께 명종에게 불리어 학문, 정치에 관해 진언했다. 만년에는 주자학에 전심하여 많은 제자를 가르쳤다. 인조 때 효자정문이 세워졌고 상주의 옥성서원에 배향됐다.
사마방목에는 본관이 상주로 기록되어 있다. 진사(進士) 김인수(金仁秀)를 시조로 하는 문헌도 있다. 옥구는 전북 군산시 옥구읍의 지명이다.
옥구김씨는 1985년 조사에서는 나타나지 않았고 2000년에는 총 1가구 3명이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한편 전북 도내 지명을 본관으로 하는 김씨와 2000년의 인구는 다음과 같다. 고부김씨 200명, 고산김씨 1,040명, 김제김씨 5,220명, 남원김씨 1,725명, 만경김씨 13명, 무송김씨 193명, 무장김씨 2,339명, 무주김씨 2,255명, 부안김씨 56,318명, 순창김씨 975명, 완산김씨 653명, 옥구김씨 3명명, 용담김씨 197명, 용안김씨 500명, 임실김씨 12명, 임피김씨 117명, 장계김씨11명, 장수김씨 237명, 전북김씨 536명, 전주김씨 57,979명, 정읍김씨 480명, 진안김씨 21명, 태인김씨 4명, 흥덕김씨 110명 이다.
옥구를 본관으로 하는 성씨는 ▲옥구고씨(80명) ▲옥구임씨(626명) ▲옥구장씨(5,708명) ▲옥구송씨(160명) 등이다.

▲옥구임씨(沃溝林氏)
시조 문경공 임개 는 고려 때 사람이다. 그는 1085년(선종2) 공부상서로서 송나라에 가서 송제(宋帝)의 등극을 축하하고 돌아왔다. 1087년(선종4) 어사대부로서 서북로 병마사를 거쳐 동지중추원사, 형부상서, 참지정사 등을 지냈고, 중서시랑 평장사, 판형부사로 치사(致仕)했다. 옥구임씨는 평택임씨에서 분관했다.
시조의 아들 임유문은 숙종 때 요나라, 예종 때 송나라를 다녀오고 문하시랑평장사 등을 지냈다. 참지정사, 관형부사를 역임하고 인종 때 문하시랑평장사를 거쳐 중서시랑으로 지공거가 되었다.
임완 은 1114년(예종9) 예부원외랑을 지낸 후 익산백(益山伯)에 봉해졌다. 임경한은 순조 때 서예의 대가로 명성이 높았다.
과거 급제자는 임완(林莞, 1549 己酉生) : 무과(武科) 선조13년(1580) 별시 갑과(甲科) 장원급제, 임성립(林成立, 1612 壬子生) : 무과(武科) 인조14년(1636) 별시 병과(丙科), 임준걸(林俊乞, 1601 辛丑生) : 무과(武科) 인조15년(1637) 별시 병과(丙科), 임번(林蕃, 1601 辛丑生) : 사마시(司馬試) 연산군7년(1501) 식년시 이등(二等), 임제백(林齊栢, 1701 辛巳生) : 역과(譯科) 영조5년(1729) 식년시 등 5명이다.
옥구는 전북 군산시 옥구읍의 지명이다. 옥구임씨는 1985년에 57가구 266명, 2000년에 196가구 626명이 있다. 옥구 본관 성씨는 ▲옥구고씨(沃溝高氏) ▲옥구김씨(沃溝金氏) ▲옥구송씨(沃溝宋氏) ▲옥구이씨(沃溝李氏) ▲옥구임씨(沃溝林氏) ▲옥구장씨(沃溝張氏) 등이다. 임(林)씨는 117개의 본관에 인구는 2000년 현재 762,767명이 있다.

▲옥구장씨(沃溝張氏)
시조 장익 은 장정필의 12세손이다. 고려시대에 집현전 대제학, 평장사를 지내고 옥성(옥구) 부원군에 봉해졌다. 승문정자 판도판서를 지낸 장송이 1세조다. 장송 의 손자 장화 는 고려 때 판도판서, 장화 의 아들 장대유는 부사를 지냈다. 장대유의 아들 장한 은 판서, 장윤 은 참의를 역임하여 아버지와 함께 가문을 빛냈다. 군수를 지낸 장승조, 현감 장현손, 어모장군 장희, 장순명도 후손이다.
조선시대에 장규(張珪, 1609 己酉生) : 사마시(司馬試) 인조17년(1639) 식년시 이등(二等), 장시상(張是祥, 1710 庚寅生) : 사마시(司馬試) 영조5년(1729) 식년시 삼등(三等), 장윤설(張允卨, 1588 戊子生) : 사마시(司馬試) 인조2년(1624) 식년시 삼등(三等), 장세문(張世文, 1536 丙申生) : 사마시(司馬試) 명종16년(1561) 식년시 삼등(三等), 장인협(張仁浹, 1769 己丑生) : 사마시(司馬試) 정조16년(1792) 식년시 이등(二等), 장상한(張相韓, 1647 丁亥生) : 사마시(司馬試) 현종10년(1669) 식년시 이등(二等) 등 모두 6명의 과거 급제자를 배출했다.
항렬자는 19世 문(文), 20世 환(煥), 21世 기(基), 22世 현(鉉), 23世 원(源), 24世 병(秉), 25世 우(愚), 26世 시(時), 27世 용(鎔), 28世 호(浩), 29世 상(相), 30世 응(應), 31世 달(達), 32世 종(鍾), 33世 하(河), 34世 동(東) 35世 희(熙), 36世 규(圭), 37世 석(錫), 38世 승(丞)이다. 충북 괴산군 청안면 효근리가 집성촌이다. 2000년 현재 5,708명이다.

▲임피김씨(臨陂金氏)
시조 김한추(金漢樞)는 신라 경순왕의 제4자 대안군(大安君) 김은열(金殷說)의 9세손인 김여흥(金余興,고려시대 시중)의 손자다. 그는 고려 때 평장사(平章事)로 임피군(臨陂君)에 봉해졌다. 그 뒤 후손들이 임피를 본관으로 삼았다. 김수옹(金守甕)을 시조로 하는 문헌도 전한다. 임피는 전라북도 군산시 임피면의 지명이다. 군산시 이전에는 옥구군 임피면이었다.
조선시대에 김경남(金京男, 1605 乙巳生) : 무과(武科) 인조15년(1637) 별시 병과(丙科), 김의선(金義善, 1629 己巳生) : 무과(武科) 현종3년(1662) 증광시 갑과(甲科), 김덕린(金德隣, 1555 乙卯生) : 무과(武科) 선조16년(1583) 별시 병과(丙科), 김종남(金從男, 1555 乙卯生) : 무과(武科) 효종2년(1651) 별시 병과(丙科), 김언봉(金彦鳳, 1555 乙卯生) : 의과(醫科) 선조3년(1570) 식년시 등 모두 5명의 과거 급제자를 배출했다. 무과 4명, 의과 1명 등이다. 임피김씨의 인구는 1985년에 총 14가구 61명, 2000년에 총 38가구 117명이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한편 임피를 본관으로 하는 성씨는 임피김씨 외에 ▲임피진씨(臨陂陳氏)와 ▲임피임씨(臨陂林氏)가 있다. 임피진씨의 시조는 진이(陳理), 봉호는 순덕후(順德候)이다. 그는 중국 원나라 때 양산(梁山) 사람으로 세칭 진왕(陳王)이라 불리었다. 임피진씨는 양산진씨(梁山陳氏)와 같은 계통을 이루며 그 후손들이 청양과 남원에 세거했다. 2세손 진여안(陳汝安)은 고려조에 정주목사(定州牧使)를 지냈다. 임피진씨는 1985년에 72명이다. 임피임씨는 시조와 본관의 유래를 알 수가 없다.

▲임피진씨(臨陂陳氏)
시조는 진이(陳理)는 당초 중국 원나라 때 양산(梁山) 사람이다. 그는 세칭 진왕(陳王)이라 불리웠다. 정묘보(丁卯譜) 서문에 보면 임피진씨는 양산진씨(梁山陳氏)와 같은 계통이며 그 후손들이 청양과 남원에 세거했다고 한다. 2세손 진여안(陳汝安)은 고려조에 정주목사를 지내면서 임피진씨의 터전을 마련했다.
임피는 전북 옥구군에 있던 지명이다. 본래 백제의 시산(屎山)이며 현재는 군산시 임피면이다. 현재도 진(陳)씨가 많이 살고 있다.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임피진씨는 1985년에 총 17가구 72명, 2000년에 총 71가구 221명이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임피를 본관으로 하는 성씨는 임피진씨 외에 임피이씨(臨陂李氏)가 있다.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임피이씨는 1985년 조사에서는 나타나지 않았고, 2000년에는 총 2가구 6명이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한편 우리나라 진(陳)씨의 본관은 강릉 결성 경주 광동 김해 나주 남해 능주 달성 덕창 밀양 복주 부여 삼척 성주 신광 안동 양덕 양산 양주 여산 여양 여주 여진 여흥 연안 영양 온양 용궁 월성 의령 임파 전주 죽산 진산 진주 진해 청주 초계 충주 평산 풍기 함양 해주 홍성 홍주 흥덕 등 총 47개에 인구는 2000년 현재 142,496명이 있다.
여양진씨(驪陽陳氏)가 97,372명으로 대다수를 차지한다. 여양진씨의 시조 진총후(陳寵厚)는 고려 예종 때 이자겸의 난을 평정한 공으로 여양군에 봉해졌다. 그래서 후손들이 본관을 여양으로 했다. 여양진씨는 조선시대 과거 급제자가 모두 41명이다. 본관 여양은 충청남도 홍성군 장곡면 일대의 옛 지명이다. 삼척진씨(三陟陳氏)는 7,198명이다.
( 성씨 전문기자, 전북매일신문 논설위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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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수정일 2019-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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