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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불길 여행'에서 만난 강태공과 채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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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09.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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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불길 여행'에서 만난 강태공과 채만식
저렇게 눈부신 강물을 왜 '탁류'라 했을까?

2009년 10월31일(토) 오마이뉴스 조종안 (chongani)

▲ 구불1길 출발지인 군산역에서 첫 코스인 진포시비공원으로 가는 길. 길에서 처음 만나는 사람도 반갑게 인사했던 코흘리개 시절이 떠올랐습니다. ⓒ 조종안

느리게 걸으면서 건강도 챙기고, 유적지와 근현대사도 접하면서 여유와 풍요를 만끽할 수 있는 '구불길 여행'이 군산 시민의 관심을 끌고 있는데, 초등학교 시절 급우들과 시내 상가 간판 읽는 재미에 빠지기도 했던 필자도 참여하고 싶어 가벼운 차림으로 집을 나섰다.

'구불1길' 출발점인 내흥동 기차역의 선사시대 유적 전시관을 뒤로하고 금강변에 위치한 채만식 문학관 방향으로 걸어가다 밭에서 일을 마치고 귀가하는 아주머니를 만났는데, 콩 타작을 하다가 늦은 점심을 먹으러 간다고 했다.

때마침 2년여 전에 연결된 장항선 열차가 굉음을 내며 지나갔는데, 기찻길을 끼고 있던 고향동네가 떠오르면서 친구들과 노란 탱자도 따러 다니고 배추 꼬랑지도 얻어먹으러 다니던 분위기와 흡사해 더욱 정겹게 다가왔다.

▲ 새로 연결된 장항선 터널을 지나면 가을의 여인 같은 억새길이 이어집니다. 억새길을 벗어나면 금강이 시원하게 펼쳐지지요.ⓒ 조종안

진포 시비(詩碑)공원, 금강호시민공원 등을 거쳐 나포 십자들녘으로 이어지는 '구불1길'은 예상대로 화려한 볼거리는 아니었다. 하지만, 산들바람에 춤추는 길가의 억새와 논에 다녀온 농부 몸에서 풍기는 구수한 흙냄새가 마음을 넉넉하게 해주었다.

억새 길을 지날 때는 잠시 명상에 잠기기도 했는데, 고즈넉한 풍경을 눈과 가슴에 담으며 한적한 시골길을 빠져나오니까 길 건너로 채만식문학관이 보였다. 들르지 않을 수 없었는데, 전시실에 진열된 백릉 채만식 유품에 켜켜이 쌓인 세월의 먼지는, 째보선창이 삶의 터전이었던 필자도 60년 세월을 비릿한 탁류와 함께 덧없이 흘러왔음을 느끼게 했다.

▲ 채만식문학관 전시실에 진열된 백릉 채만식 유품들. “채만식이 지금까지 살아 있다면 후퇴하는 민주주의를 어떤 식으로 풍자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 조종안

한적한 시골길이나 산길을 천천히 그리고 느리게 걷는 여행은 시야에 들어오는 온갖 것들을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는 능력을 키워주고, 시련이나 고민도 한가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여유를 갖게 해서 예전에도 시간이 날 때마다 떠나곤 했었다.

프랑스 사회학자 다비드 르 브르통 교수는 '걷기 예찬'이라는 책에서 정신적 시련은 걷기라는 육체적 시련을 통해 치료할 수 있다고 찬탄했다. 또 "걷는 사람은 모든 것을 다 받아들이고, 모든 것과 손잡을 수 있는 마음으로 세상의 구불구불한 길을, 그리고 자신 내면의 길을 더듬어간다"고 한 것을 보면 걷는 게 심신에 얼마나 좋은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겠다.

▲ 가슴을 뭉클하게 했던 시인과 철학자들의 명언이 20여 개의 자연석에 새겨진 시비공원. 잔디와 주변 경관이 뛰어나 하루쯤은 가족이 함께 즐기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조종안

파도가 비단결 같다고 해서 붙여진 금강(錦江)변 넓은 잔디에는, 창씨개명과 신사참배를 끝까지 거부했던 김영랑의 <모란이 피기까지는>, 민족시인 이상화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등 많은 이들을 감동·감격시켰던 시인들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진포시민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시(詩)에 관심이 없는 분들도 한 번쯤은 접해봤을 유명 철학자의 명언과 시인 20여 명의 시를 자연석에 음각으로 새겨놓은 시에 정신이 팔리다 보니까 지금은 이 세상에 없는 그들의 애절한 목소리를 듣고 있다는 착각에 빠지기도 했다.

금강 체육공원과 이웃한 채만식 문학관은 백릉 채만식 선생의 발자취를 더듬어 볼 수 있는 공간으로 들러볼 만한 곳인데, 2001년 개관하여 많은 사람이 방문하고 있다. 관람시간은 약 1시간이고 관람료는 무료.

강태공 할아버지 따라 떠난 추억여행

맨발로 뒹굴어보고 싶도록 잔디가 잘 정돈된 문학광장을 지나 오랜만에 강변을 거닐기로 했다. 다양한 옷차림의 강태공들이 기다림을 즐기고 있었는데, 넉넉하고 푸근한 인상을 풍기는 할아버지가 외롭게 앉아 시선을 낚시에 집중하고 있기에 가까이 다가갔다.

▲ 인생 경력이 트럭 25년, 개인택시 30년이라는 강태공 할아버지. 말씀도 얼굴처럼 푸근해서 오래 대화를 해도 지루함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 조종안

푸근한 인상의 강태공은 어렸을 때 트럭 조수로 시작, 30대 초반에 차주가 되었다는 성병호(72세) 할아버지였다. 그는 70년대 말부터 개인택시를 운영하면서 자식 넷을 두었는데, 모두 결혼하고 두 내외만 산다면서 택시도 지난 8월에 팔아버리고, 낚시를 소일거리로 삼았다고 말했다.

"시내에서 버스 타고 오시려면 복잡할 텐데요, 낚시를 무척 즐기시나 봅니다"
"아녀요, 애려서부터 군산화물 트럭 운전대를 잡고 살었는디 복잡헐 것도 없고, 개인택시를 30년 넘게 허믄서 무사고 경력인디 나이를 먹은 게 눈이 흐려각고 안 되것드라고요. 그려서 차도 팔어버리고···."

"트럭을 운전하다 택시를 하면 정말 핸들이 가벼운가요?"
"그럼요.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았지요. 그때만 혀도 차가 얼마 없어서 운전허기도 편혔고, 근디 지금은 차가 원청 많여붕게···. 그때는 택시 헌다고 허믄 괜찮었어요. 손님들이 이왕이믄 개인택시 탈라고 기다리고 혔응게."

작은 사고라도 나면 이것도 저것도 안 되겠기에 정든 택시를 팔았다는 성 할아버지에게 "젊었을 때는 멋쟁이 운전수로 아가씨들에게 인기가 좋으셨을 것 같습니다"라고 했더니 "글쎄요. 회사 근처 대폿집 아주머니들은 잘생겼다고는 혔는디"라며 껄껄 웃었다.

"조수로 시작했다고 하셨는데 운전은 언제부터 하셨나요?"
"1960년도에 면허증 따고, 군대 갔다 와서는 군산 비향장 공사 헐 때 전주 채 누구네 지에무시(GMC)를 몰았는디, 조꼼 있응게 담프차 '신호 6톤'이 나오고, '신호 8톤'이 나오고 허드라고요."

"그럼 60년대 말이나 70년대 초에 군산-서울 4톤 화물차 요금은 얼마였나요?"
"저는 광주에 많이 댕겨서 서울은 잘 몰라요. 한 달이믄 스물다섯 번씩 댕겼응게. 삼만 오천 원도 받고 사만 원도 받은 것으로 기억헙니다. 그때는 한국합판 말고도 자잘헌 목재소가 많이 있었잖요. 거기서 골라 도꼬이(단골) 집으로 다녔지요. 광주에 댕길 때만 혀도 삼십대였응게 좋은 때였지요··.허허"

성 할아버지는 모래가 부족하던 시절이라서 광주나 전주를 뛰는 트럭들은 돌아올 때 냇가에 지천으로 널린 모래를 싣고 와 건재상회에 팔았는데 왕복 기름 값은 빠졌다며 운수업이 좋긴 한데 교통경찰에게 뜯기는 것이 많아 탈이었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 한꺼번에 망둥이가 세 마리가 올라오자 기뻐하는 강태공 할아버지. 세상에 부러울 게 하나도 없는 양반 같았습니다. ⓒ 조종안

얘기가 한참 달아오르려고 하는데 씨알 굵은 망둥이 세 마리가 한꺼번에 걸려 올라왔다. 구경을 하면서도 신이 났는데 옆에서 새우를 잡던 젊은이도 함께 기뻐했다. 사진을 찍어야겠다고 했더니 웃으면서 포즈까지 취해주었는데, 언론에 공개해도 괜찮으시겠느냐고 했더니, 하든지 말든지 관심 없다는 듯 웃는 표정이 무척 편하게 보였다.

군산화물(주) 트럭을 운전했다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는 병원에서 치매와 싸우느라 고생하는 큰 누님과 80년대 중반에 돌아가신 큰 매형이 생각났다. 할아버지도 잘 안다며 반가워해서 더욱 간절했는데, 트럭 두 대를 소유한 큰 매형이 군산화물 초창기 이사였고, 트럭 조수 알바를 해서 번 돈으로 영화도 가고 자장면도 사먹었던 추억들이 아스라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차가 귀하던 60년대에 군산에는 대한운수, 삼성운수 등 운수회사가 4-5개 있었는데, 구 기차역 광장 사거리 합동시외버스터미널(지금의 농협 건물)과 마주하고 있던 군산화물(주)은 차주만 40명이 넘었고, 트럭도 80대가 넘게 보유하고 있어 당시에는 전라북도에서도 손꼽히는 운수회사였다.

채만식을 떠오르게 했던 금강

느림의 미학이 담긴 '구불길 여행'에 나섰다가 뜻밖의 어른을 만나 시간가는 줄 모르고 추억을 더듬고 다녔고, 얘기는 구수해서 들을수록 입맛이 당겼다. 할아버지도 싫지 않은 기색이었지만, 일어설 수밖에 없었는데 고개를 돌리니까, 강물이 오후 햇살을 토해내느라 은빛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 저녁 햇살에 반사되어 반짝이는 금강. 금강하굿둑 부근은 70년대까지만 해도 물속에서 움직이는 소라가 보일 정도로 물이 맑았습니다.
ⓒ 조종안

반짝이는 강물을 보는 순간, "저렇게 눈부신 강물을 왜 '탁류'라 했을까?", "문학에 대한 일제의 사상적 탄압이 자행되던 시대에 탁류를 신문에 기고하는 당시 채만식 심정은 어땠을까?" 하는 두 개의 우문(愚問)이 떠올랐다.

어려서는 소설속의 정 주사가 처음 군산에 도착하는 째보선창에서 공동수도와 쌀가게를 운영하던 어머니 심부름을 다니느라 하루에도 몇 번씩 선창가에 나갔고, 어른이 되어서는 탁류에 등장하는 조선은행 건물에 들어선 한일은행을 거래하면서 여직원과 사귀었던 알싸한 추억을 간직하고 있어, 남다르게 느껴지기 때문에 떠올랐을 것이다.

다음 코스인 금강호시민공원과 진포대첩 비가 가깝게 보였으나 땅거미가 지기 시작해서인지 몸을 움직이기가 싫어 발길을 구암동 방향으로 돌려 왜놈들이 간척사업을 할 때 설치한 수문과 3·1 독립운동 사적지인 구암교회를 둘러보았다.

금강이 주무대인 '구불1길'을 완주하지 못해 아쉬웠지만, 총거리가 18km 가까운 장거리 코스여서 나머지는 다음에 시간이 나면 둘러보기로 하고, 세 시간 가까이 걸으면서 이 사람 저 사람 만나 즐겁게 보낸 것에 만족하며 '구불길 여행'을 마쳤다.

출처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250176&PAGE_CD=&BLCK_NO=&CMPT_CD=A0101 '구불길 여행'에서 만난 강태공과 채만식 -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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