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곱픈자를 찾아 구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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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10.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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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 곱은 자를 찾아 구만리
군산에서 살고 있는 우리는 주변에는 항상 우리손길을 기다리는 어렵고 힘든 사람이 많이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필자는 40년간 공직생활을 통해서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이 많이 사는 빈민촌에 가까운 지역을 자주 돌아보게 되었고 그중에는 집 없이 떠돌이 생활을 하던 김 용호 할아버지의 가슴 아픈 사연을 여기에 소개하려한다,
이분은 평소에 학 고 방이라는 길가에 놓여진 아들이 버린 고 간 용호 할아버지 이야기이다 비 들 기가 사는 월명공원 정상근처에서 여름철이 되면 낮에는 어창에서 밤에는 빈집이나 부서진 어선밑창 바닦에서 잠을 자는 넝마주의 노인 영감이 있었다,
그분 이름은 용호 (가명) 할아버지 로 80세가량 노인이었고 남의 집에서 자거나 어시장 이 끝난 후에는 따뜻한 모닥불을 쬐면서 있다가 밤이 되면 어디론가 사라 저 주무시기 때문에 그분께서 밤에 자는 곳은 일정하지 않았다, 이 노인께서는 절대로 남의 물건에 손을 대지 않기 때문에 그걸 아는 사람들은 거지 할아버지이지만 때로는 찬밥도 주고 국물과 반찬도 나누어주어 식사를 하게하고,
특히 해망 동 태양상회로 기억이 되는 주인아주머니께서는 마음이 항상 너그러우셔서 이분께 보이지 않는 도움을 많이 주고 게셨다, 당시 할아버지가 가지고 있는 유일한 재산은 도로 가운데에 놓여있는 누가 마련해 주었는지 확인이 안 되는 학 고 방 (나무로 대충 만든 판자 집) 이 있었는데 이것이 도로가에 놓아 저 있어
그 주변에 있는 폐 그물과 쓰레기, 쓰다 어선에서 버린 로프 등 도로 정화 사업과 청소를 해야 하는 곳에 위치하여 있어서 부득 히 철거를 해야 하는데 동네 사람들은 이 노인이 갈 곳이 없어서 그냥두자는 의견도 있다, 그러나 차량 통행이 빈번한 곳에 있었기 때문에 할 수 없이 철거 게고 문 을 문짝에 부쳐놓고
2주일 동안 연기해가면서 노인께서 오시길 기다려도 오시지 않았다 , 나중에 안 일이지만 만약 나타나서 해망 동 직원들과 부 딧 치면 영락없이 철거가 되니까 멀리 피하라고 누가 귀 뜸을 해 주었기 때문에 오시지 않았던 것이다,
몇 일 기다려도 임자가 영 나타나지 않아 철거 절차를 밟아 놓고 행정 집행을 시작했다 마침 할아버지께서 배를 타고 화장으로 고기잡이를 멀리 나가셨기 때문에 항해를 하시다 늦게 도착했기에 우리는 무척다행이었다
포크레인으로 판자 집을 그대로 들어 화물차에 올려 폐기 처분하기 위해 안에서 집기 등을 다른데 에 치워 놓으려 했는데 그 안에는 먹다 만 간장 과 썩은 생선 몇 마리, 그리고 입다 누가 버린 헌 옷 등이 있었고 사람이 살기에는 너무나 험하고 더러운 환경이었다,
말이 집이지 예전에 풀빵을 굽던 아주 작고 허 스 름 한 판자 집 이었으나 , 이 할아버지는 이곳이 자기 집이고 호텔이나 마찬 가지 였 다 생각했다 한 다 이것을 한쪽에서 기중기 로 줄을 지붕에 매달아 들어 올렸더니 그동안 이곳에 숨어 살고 있던 살찐 큰 쥐들이 우르르 도망갔고
여러 마리 새끼가 길가로 나 뒹구는 것 이 었 다, 정말 철거하길 잘했다고 생각했으나 막상 갈 곳이 없는 이 노인 거 쳐 을 걱정하지 안 을 수가 없었다, 그날 밤 소 룡 동에 있는 수심 양 노원 에 박 상근 당시 총무님께 부탁을 드리고 정원이 없는 상태에서 긴급히 보호를 해야 하기 때문에 잠시 게시게 한 후
영세민으로 책정하여 비바람을 맞으면서 노상에서 생활 하시는 이 노인을 국가의 보호 아래 편히 마지막 여생을 지내실수 있는 시설에 보내드리고자 했으나 주민등록 을 확인한 결과 직권 말소가 되어 있다, 그 내용을 확인 해보니 호적이 무적 자 로 써 주민등록을 만들 수 가 없었다는 것이다,
주민등록에 등재된 본적지에 확인해보니 몇 년 전에 이분이 호적상 사망신고가 되어 있었고 본인은 그 내용도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수소문해서 원적을 찾아보니 전남 목포가 고향이었고 젊을 때 부인과 헤어진 후 계속선박 생활만하고 있다 했고, 68년도에 처음 주민등록 을 낼 때 사진을 보니
그 사진은 마도로스 김처럼 멋이 있었고 젊었을 적에는 술집여자들께나 울렸던 이 노인이었다고 생각하면서 씁 씁 한 웃음을 지어보였다,그 당시 아들이 있었는데 그 행방을 모른다고 해서 제적 등본을 보니 아들이 둘이었는데 그 이름을 물어보니 그때서야 큰아들 과 둘째 아들의 이름 을 똑똑히 기억 하면서 이 아들 들이 어디에 있느냐는 것 이다,
수소문 을 해보니까 큰 아들은 어릴 때 서울에 있는 남의 집 호적에 올려서 잘 살고 있었고 지금까지 자기를 길러준 아버지 어머니가 자기 아버지인 줄알 고 살았다는 것이다 작은 아들은 연락이 되었는데 지금까지 평온하게 잘 살았는데 왜 나를 찾느냐고 박절하게 전화를 끊어 버리는 걸 설득해서 그 이유를 알아보았다,
원래 부인은 목포 해변 가 선술집 에서 술을 마시다 등 어리 끼리 마주쳐서 그것이 인연이 되어 신혼살림을 하면서 유달 산 언저리 에 판자 집을 지 어 살았다 했다 그 당시만 해도 한번 배가 바다에 나가면 한 달 만에 한번정도 항구로 들어오는데 집에 들어오면 부인이 있는 집에 가는 것보다
항구주변의 색시 집들을 먼저 찾아 달려갔고, 그런 와중에 큰아들 을 낳았으나 돌보지 않아 아이들이 굶는 날이 더 많았단다, 생활고에 찌들 린 그 아내가, 큰아들과 둘째 아들을 버리고 어디론가 사라 저
그때부터 어린것 들을 두고 선박생활을 더 할 수 없어, 남에 집에 맡겨놓았는데, 산비탈에서 큰 아들이 떨어져 얼굴에 흉터가 크게 있었는데,치료한답시고 쑥을 띁 어 부처 주었다는 것 이었다. 간신이 큰 아들을 설득하여 태양상회로 오게 한 후, 나와 함께 방에 들어가니, 웬 젊은이가 있었던 것이다
노인께서 막 방안으로 우리가 들어섰는데 아래로 않으시라고 하면서 아들이 절을 하니 이 할아버지께서도 일어서서 그분을 향해 함께 맞절을 하는 것 이다 , 30여년 만에 만나는 감격적인 부자 상봉의 현장이었고 더 기가 막힌 일은 절을 받던 김 노인께서 바지에 소변을 보는 것이다,
아버지는 눈이 어두워 알아보지 못했지만, 이 아들은 금방 아버지를 알아 보았던 것이다, 어디 한번보자 하시면서 노인께서는 손으로 얼굴을 만지시고 그 얼굴 흉터를 확인한 노인은 땀을 흘리시면서 그 자리에서 주저 않았다, 그동안 말을 안 해 말을 못하는 벙어리인줄만 알았던 내가 당황 할 정도로 또 밖 또박 하게 아들을 부 르 것 이 었다,
철이야, 철이야 .....이렇게 우리 주변에는 기가 막힌 사연을 간직한 불쌍하고 가련한 이웃이 있다는 걸 생각해 볼일이다....
군산에서 살고 있는 우리는 주변에는 항상 우리손길을 기다리는 어렵고 힘든 사람이 많이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필자는 40년간 공직생활을 통해서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이 많이 사는 빈민촌에 가까운 지역을 자주 돌아보게 되었고 그중에는 집 없이 떠돌이 생활을 하던 김 용호 할아버지의 가슴 아픈 사연을 여기에 소개하려한다,
이분은 평소에 학 고 방이라는 길가에 놓여진 아들이 버린 고 간 용호 할아버지 이야기이다 비 들 기가 사는 월명공원 정상근처에서 여름철이 되면 낮에는 어창에서 밤에는 빈집이나 부서진 어선밑창 바닦에서 잠을 자는 넝마주의 노인 영감이 있었다,
그분 이름은 용호 (가명) 할아버지 로 80세가량 노인이었고 남의 집에서 자거나 어시장 이 끝난 후에는 따뜻한 모닥불을 쬐면서 있다가 밤이 되면 어디론가 사라 저 주무시기 때문에 그분께서 밤에 자는 곳은 일정하지 않았다, 이 노인께서는 절대로 남의 물건에 손을 대지 않기 때문에 그걸 아는 사람들은 거지 할아버지이지만 때로는 찬밥도 주고 국물과 반찬도 나누어주어 식사를 하게하고,
특히 해망 동 태양상회로 기억이 되는 주인아주머니께서는 마음이 항상 너그러우셔서 이분께 보이지 않는 도움을 많이 주고 게셨다, 당시 할아버지가 가지고 있는 유일한 재산은 도로 가운데에 놓여있는 누가 마련해 주었는지 확인이 안 되는 학 고 방 (나무로 대충 만든 판자 집) 이 있었는데 이것이 도로가에 놓아 저 있어
그 주변에 있는 폐 그물과 쓰레기, 쓰다 어선에서 버린 로프 등 도로 정화 사업과 청소를 해야 하는 곳에 위치하여 있어서 부득 히 철거를 해야 하는데 동네 사람들은 이 노인이 갈 곳이 없어서 그냥두자는 의견도 있다, 그러나 차량 통행이 빈번한 곳에 있었기 때문에 할 수 없이 철거 게고 문 을 문짝에 부쳐놓고
2주일 동안 연기해가면서 노인께서 오시길 기다려도 오시지 않았다 , 나중에 안 일이지만 만약 나타나서 해망 동 직원들과 부 딧 치면 영락없이 철거가 되니까 멀리 피하라고 누가 귀 뜸을 해 주었기 때문에 오시지 않았던 것이다,
몇 일 기다려도 임자가 영 나타나지 않아 철거 절차를 밟아 놓고 행정 집행을 시작했다 마침 할아버지께서 배를 타고 화장으로 고기잡이를 멀리 나가셨기 때문에 항해를 하시다 늦게 도착했기에 우리는 무척다행이었다
포크레인으로 판자 집을 그대로 들어 화물차에 올려 폐기 처분하기 위해 안에서 집기 등을 다른데 에 치워 놓으려 했는데 그 안에는 먹다 만 간장 과 썩은 생선 몇 마리, 그리고 입다 누가 버린 헌 옷 등이 있었고 사람이 살기에는 너무나 험하고 더러운 환경이었다,
말이 집이지 예전에 풀빵을 굽던 아주 작고 허 스 름 한 판자 집 이었으나 , 이 할아버지는 이곳이 자기 집이고 호텔이나 마찬 가지 였 다 생각했다 한 다 이것을 한쪽에서 기중기 로 줄을 지붕에 매달아 들어 올렸더니 그동안 이곳에 숨어 살고 있던 살찐 큰 쥐들이 우르르 도망갔고
여러 마리 새끼가 길가로 나 뒹구는 것 이 었 다, 정말 철거하길 잘했다고 생각했으나 막상 갈 곳이 없는 이 노인 거 쳐 을 걱정하지 안 을 수가 없었다, 그날 밤 소 룡 동에 있는 수심 양 노원 에 박 상근 당시 총무님께 부탁을 드리고 정원이 없는 상태에서 긴급히 보호를 해야 하기 때문에 잠시 게시게 한 후
영세민으로 책정하여 비바람을 맞으면서 노상에서 생활 하시는 이 노인을 국가의 보호 아래 편히 마지막 여생을 지내실수 있는 시설에 보내드리고자 했으나 주민등록 을 확인한 결과 직권 말소가 되어 있다, 그 내용을 확인 해보니 호적이 무적 자 로 써 주민등록을 만들 수 가 없었다는 것이다,
주민등록에 등재된 본적지에 확인해보니 몇 년 전에 이분이 호적상 사망신고가 되어 있었고 본인은 그 내용도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수소문해서 원적을 찾아보니 전남 목포가 고향이었고 젊을 때 부인과 헤어진 후 계속선박 생활만하고 있다 했고, 68년도에 처음 주민등록 을 낼 때 사진을 보니
그 사진은 마도로스 김처럼 멋이 있었고 젊었을 적에는 술집여자들께나 울렸던 이 노인이었다고 생각하면서 씁 씁 한 웃음을 지어보였다,그 당시 아들이 있었는데 그 행방을 모른다고 해서 제적 등본을 보니 아들이 둘이었는데 그 이름을 물어보니 그때서야 큰아들 과 둘째 아들의 이름 을 똑똑히 기억 하면서 이 아들 들이 어디에 있느냐는 것 이다,
수소문 을 해보니까 큰 아들은 어릴 때 서울에 있는 남의 집 호적에 올려서 잘 살고 있었고 지금까지 자기를 길러준 아버지 어머니가 자기 아버지인 줄알 고 살았다는 것이다 작은 아들은 연락이 되었는데 지금까지 평온하게 잘 살았는데 왜 나를 찾느냐고 박절하게 전화를 끊어 버리는 걸 설득해서 그 이유를 알아보았다,
원래 부인은 목포 해변 가 선술집 에서 술을 마시다 등 어리 끼리 마주쳐서 그것이 인연이 되어 신혼살림을 하면서 유달 산 언저리 에 판자 집을 지 어 살았다 했다 그 당시만 해도 한번 배가 바다에 나가면 한 달 만에 한번정도 항구로 들어오는데 집에 들어오면 부인이 있는 집에 가는 것보다
항구주변의 색시 집들을 먼저 찾아 달려갔고, 그런 와중에 큰아들 을 낳았으나 돌보지 않아 아이들이 굶는 날이 더 많았단다, 생활고에 찌들 린 그 아내가, 큰아들과 둘째 아들을 버리고 어디론가 사라 저
그때부터 어린것 들을 두고 선박생활을 더 할 수 없어, 남에 집에 맡겨놓았는데, 산비탈에서 큰 아들이 떨어져 얼굴에 흉터가 크게 있었는데,치료한답시고 쑥을 띁 어 부처 주었다는 것 이었다. 간신이 큰 아들을 설득하여 태양상회로 오게 한 후, 나와 함께 방에 들어가니, 웬 젊은이가 있었던 것이다
노인께서 막 방안으로 우리가 들어섰는데 아래로 않으시라고 하면서 아들이 절을 하니 이 할아버지께서도 일어서서 그분을 향해 함께 맞절을 하는 것 이다 , 30여년 만에 만나는 감격적인 부자 상봉의 현장이었고 더 기가 막힌 일은 절을 받던 김 노인께서 바지에 소변을 보는 것이다,
아버지는 눈이 어두워 알아보지 못했지만, 이 아들은 금방 아버지를 알아 보았던 것이다, 어디 한번보자 하시면서 노인께서는 손으로 얼굴을 만지시고 그 얼굴 흉터를 확인한 노인은 땀을 흘리시면서 그 자리에서 주저 않았다, 그동안 말을 안 해 말을 못하는 벙어리인줄만 알았던 내가 당황 할 정도로 또 밖 또박 하게 아들을 부 르 것 이 었다,
철이야, 철이야 .....이렇게 우리 주변에는 기가 막힌 사연을 간직한 불쌍하고 가련한 이웃이 있다는 걸 생각해 볼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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