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흔 할머니의 일기< 꼭 읽어보시오>
작성자 ***
작성일07.09.20
조회수16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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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흔 할머니의 일기
<사진설명 : 내 나이 아흔, 세상 떠날 날이 머지않았지>
올해 아흔인 홍영녀 할머니는 매일 일기를 쓴다.
학교 문턱을 밟아 본 적이 없는 그는
일흔이 돼서야 손주에게 한글을 배웠다.
까막눈에서 벗어난 이후부터
일기를 쓰기 시작한 홍 할머니는
삐뚤빼뚤 서툰 글씨에 맞춤법조차 엉망이지만
20여 년 동안 써 온 그의 일기에는
인생이 담겨 있다.
세상과 이별할 날이 머지않은 그의 일기를 통해
누구에게나 닥칠 노년의 삶과, 인생이란 무엇인지
조용히 자신을 뒤돌아보게 한다.
<사진설명 : 이 내 마음 누가 달래 주나>
그 누가 이 내 마음을 달래 주나
청개구리는 무슨 사연으로
저다지 슬픈 소리로...
<사진설명 : 나는 쓸쓸해, 가슴이 서러워...>
오늘도 흰 머리카락 날리면서
산마을로 너머 가시는 햇님은
어김없이 너머 가시네.
햇님 나는 나는 쓸쓸해.
가슴이 허전해.
가슴이 서러워.
<사진설명 : 인생은 바다 위에 떠 있는 배가 아닐까?>
흘러 흘러 저 배는 어디로 가는 배냐.
앞쪽으로 타는 사람은 먼 수평선을 바라보고
뒤쪽으로 타는 사람은 그 누구를 기다리네...
<사진설명 : 아직 어두운데... 햇님이 나오셨나?>
햇살이 고개를 들면 그는 창가로 다가가
햇님에게 인사 하는 것으로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경기도 포천군 일동면
한 시골마을에서 300여평 남짓한 텃밭에
무, 배추, 호박, 가지, 고추 등
갖가지 농사를 지으며 사는 홍 할머니.
밭일을 하는 동안 그는 외롭지도 아프지도 않다.
자식 같은 농작물을 매만지며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기 때문이다.
잘 들리지 않아도 TV를 켜 놓으면
그래도 조금이나마 위안이 된다.
6남매를 둔 홍 할머니는 혼자 사는 것을
안타깝게 여긴 자식들이 서로 모시겠다고
하지만 그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
그가 혼자를 고집하는 이유는
자유롭게 살기 위해서다.
"아무도 없는 집에서
변이라도 당하면 어떻게 하느냐"
자식들이 걱정하면 그는
"그렇게 죽는 게 복"이라고 대답하며
혼자이기를 고집한다.
<사진설명 : 헌 내복을 입고 밭일하는 홍 할머니>
홍 할머니는 새 내복 보다
낡디 낡은 헌 내복을 더 좋아한다.
아들, 딸, 조카들이 사다 준 새 것을 마다하고
헌 내복을 입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그는 그 이유에 대해 일기장에 이렇게 적어 놓았다.
내다 버리려고 했던 내복을 또 빨아 입었다.
낡은 내복을 입는다고 딸들은 야단이다.
새 내복이 없어서 그러는 게 아니다.
딸들이 사다 준 내복, 조카들이 사 온 내복들이
상자에 담긴 채로 쌓여 있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몸, 자꾸 새 것 입어
휘질러 놓으면 뭐하나 해서다.
그리고 새 옷들을 차곡차곡
쌓아 놓은 것을 보면 헌 옷을 입어도 뿌듯하다.
나 죽은 후에 다른 없는 이들 입게 주면
얼마나 좋으랴 싶다.
그런 에미 맘을 모르고
딸년들은 낡은 옷을 버리라고 야단이다.
<사진설명 : 물끄러미 일기장을 들여다보는 홍 할머니>
추수가 끝나면 홍 할머니는
씨앗 봉투마다 이름을 적어 놓는다.
몇 년째 이 일을 반복하는 그는
혹여 내년에 자신이 심지 못하게 되더라도
자식들이 씨앗을 심을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
손수 지은 농작물을 자식들 손에 들려 보내는 것이
가장 큰 즐거움이라는 홍 할머니가
1994년 8월 18일에 쓴 일기 전문이다.
내 글은 남들이 읽으려면
말을 만들어 가며 읽어야 한다.
공부를 못해서 아무 방식도 모르고
허방지방 순서도 없이 글귀가 엉망이다.
내 가슴 속에는 하고 싶은 이야기가 꽉 찼다.
그래서 무언가 이야기를 하고 싶어
연필을 들면 가슴이 답답하다 말은 철철 넘치는데
연필 끝은 나가지지 않는다.
글씨 한 자 한 자를 꿰맞춰 쓰려니
얼마나 답답하고 힘든지 모른다.
그때마다 자식을 눈뜬장님으로 만들어 놓은
아버지가 원망스럽다.
글 모르는 게
내가 국민학교 문턱에라도 가 봤으면
글 쓰는 방식이라도 알았으련만
아주 일자무식이니 말이다.
엉터리로라도 쓰는 것은
아이(손주)들 학교 다닐 때 어깨 너머로
몇 자 익힌 덕분이다.
자식들이나 동생들한테
전화를 걸고 싶어도 못했다.
숫자는 더 깜깜이었으니까
70이 가까워서야 손자 놈 인성이한테
숫자 쓰는 걸 배웠다.
밤늦도록 공책에 써 보았고
내 힘으로 딸네 집에 전화 했던 날을 잊지 못한다.
숫자를 누르고 신호가 가는 동안
가슴이 두근두근 터질 것만 같았다.
내가 건 전화로 통화를 하고 나니
장원급제 한 것보다 더 기분이 좋았다.
너무 신기해서 동생네도 걸고 자식들한테도
자주 전화를 했다.
나는 텔레비젼을 보며 메모도 가끔 한다.
딸들이 가끔 메모한 것을 보며 저희들끼리 죽어라 웃어댄다.
멸치는 '메룻찌'로, 고등어는 '고동아'로
오만원은 '오마넌'으로 적었기 때문이다.
딸 친구한테서 전화가 왔다.
약속 장소를 불러 주는 걸 적었는데
동대문에 있는 이스턴 호텔을
'이슬똘 오떼로' 라고 적어서
딸이 한 동안 연구를 해야 했다.
딸들은 지금도 그 얘기를 하며 웃는다.
그러나 딸들이 웃는 것은
이 에미를 흉보는 게 아니란 걸 잘 안다.
그렇지만 나는 내가 써 놓은 글들이 부끄럽다.
그래서 이 구석 저 구석
써놓은 글들을 숨겨 놓는다.
이만큼이라도 쓰게 된 게 다행이다.
이젠 손주들이 보는
글씨 큰 동화책을 읽을 수도 있다.
인어 공주도 읽었고, 자크의 콩나무도 읽었다.
세상에 태어나 글을 모른다는 것이
얼마나 답답한 일인지 모른다.
이렇게나마 쓰게 되니까
잠 안 오는 밤에 끄적끄적 몇 마디나마
남길 수 있게 되었으니 더 바랄 게 없다.
말벗이 없어도 공책에다
내 생각을 옮기니 너무 좋다.
자식을 낳으면 굶더라도
공부만은 꼭 시킬 일이다.
<사진설명 :할머니가 닦고 또 닦았던 고무신>
딱히 외출할 계획도 없는데
설레는 마음으로 고무신을 닦아
햇볕에 말린 홍 할머니.
하지만 갈 곳이 없어 고무신에
다시 먼지가 쌓이고
그는 신어 보지도 않은 채
더러워진 고무신을 또 닦아 햇볕에 내 놓는다.
그는 이 마음을 이렇게 표현했다.
뽀얗게 고무신을 닦아 햇볕에 내놓았다.
어디 가게 되지 않으니
신어 보지도 않고 다시 닦게 된다.
어디든 떠나고 싶다.
<사진설명 : 가슴에 묻은 자식 생각에 눈물짓는 홍 할머니>
어린 자식이 숨지는 것을
바라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던,
젊은 시절의 아픈 기억과
살날 보다 살아온 날이 많은
노년의 외로움이 절절이 담긴 그의 일기는
그만의 일기가 아니다.
배고프고 힘든 시절을 꾸역꾸역 참고 살아온
한 여인의 일기요.
우리네 어머니의 일기이며
이 땅에 발 딛고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일기다.
- 세상엿보기 / 김순희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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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흔 노인의 애환이 담긴 일기.
화려한 수식어도 없고 맞춤법도 엉망이지만
어찌나 진솔하고 절절한지
읽는 이들의 애간장을 녹입니다.
세상과 이별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
우리는 살아온 날들에 대해
어떤 고백을 할 수 있을까요?
<사진설명 : 내 나이 아흔, 세상 떠날 날이 머지않았지>
올해 아흔인 홍영녀 할머니는 매일 일기를 쓴다.
학교 문턱을 밟아 본 적이 없는 그는
일흔이 돼서야 손주에게 한글을 배웠다.
까막눈에서 벗어난 이후부터
일기를 쓰기 시작한 홍 할머니는
삐뚤빼뚤 서툰 글씨에 맞춤법조차 엉망이지만
20여 년 동안 써 온 그의 일기에는
인생이 담겨 있다.
세상과 이별할 날이 머지않은 그의 일기를 통해
누구에게나 닥칠 노년의 삶과, 인생이란 무엇인지
조용히 자신을 뒤돌아보게 한다.
<사진설명 : 이 내 마음 누가 달래 주나>
그 누가 이 내 마음을 달래 주나
청개구리는 무슨 사연으로
저다지 슬픈 소리로...
<사진설명 : 나는 쓸쓸해, 가슴이 서러워...>
오늘도 흰 머리카락 날리면서
산마을로 너머 가시는 햇님은
어김없이 너머 가시네.
햇님 나는 나는 쓸쓸해.
가슴이 허전해.
가슴이 서러워.
<사진설명 : 인생은 바다 위에 떠 있는 배가 아닐까?>
흘러 흘러 저 배는 어디로 가는 배냐.
앞쪽으로 타는 사람은 먼 수평선을 바라보고
뒤쪽으로 타는 사람은 그 누구를 기다리네...
<사진설명 : 아직 어두운데... 햇님이 나오셨나?>
햇살이 고개를 들면 그는 창가로 다가가
햇님에게 인사 하는 것으로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경기도 포천군 일동면
한 시골마을에서 300여평 남짓한 텃밭에
무, 배추, 호박, 가지, 고추 등
갖가지 농사를 지으며 사는 홍 할머니.
밭일을 하는 동안 그는 외롭지도 아프지도 않다.
자식 같은 농작물을 매만지며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기 때문이다.
잘 들리지 않아도 TV를 켜 놓으면
그래도 조금이나마 위안이 된다.
6남매를 둔 홍 할머니는 혼자 사는 것을
안타깝게 여긴 자식들이 서로 모시겠다고
하지만 그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
그가 혼자를 고집하는 이유는
자유롭게 살기 위해서다.
"아무도 없는 집에서
변이라도 당하면 어떻게 하느냐"
자식들이 걱정하면 그는
"그렇게 죽는 게 복"이라고 대답하며
혼자이기를 고집한다.
<사진설명 : 헌 내복을 입고 밭일하는 홍 할머니>
홍 할머니는 새 내복 보다
낡디 낡은 헌 내복을 더 좋아한다.
아들, 딸, 조카들이 사다 준 새 것을 마다하고
헌 내복을 입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그는 그 이유에 대해 일기장에 이렇게 적어 놓았다.
내다 버리려고 했던 내복을 또 빨아 입었다.
낡은 내복을 입는다고 딸들은 야단이다.
새 내복이 없어서 그러는 게 아니다.
딸들이 사다 준 내복, 조카들이 사 온 내복들이
상자에 담긴 채로 쌓여 있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몸, 자꾸 새 것 입어
휘질러 놓으면 뭐하나 해서다.
그리고 새 옷들을 차곡차곡
쌓아 놓은 것을 보면 헌 옷을 입어도 뿌듯하다.
나 죽은 후에 다른 없는 이들 입게 주면
얼마나 좋으랴 싶다.
그런 에미 맘을 모르고
딸년들은 낡은 옷을 버리라고 야단이다.
<사진설명 : 물끄러미 일기장을 들여다보는 홍 할머니>
추수가 끝나면 홍 할머니는
씨앗 봉투마다 이름을 적어 놓는다.
몇 년째 이 일을 반복하는 그는
혹여 내년에 자신이 심지 못하게 되더라도
자식들이 씨앗을 심을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
손수 지은 농작물을 자식들 손에 들려 보내는 것이
가장 큰 즐거움이라는 홍 할머니가
1994년 8월 18일에 쓴 일기 전문이다.
내 글은 남들이 읽으려면
말을 만들어 가며 읽어야 한다.
공부를 못해서 아무 방식도 모르고
허방지방 순서도 없이 글귀가 엉망이다.
내 가슴 속에는 하고 싶은 이야기가 꽉 찼다.
그래서 무언가 이야기를 하고 싶어
연필을 들면 가슴이 답답하다 말은 철철 넘치는데
연필 끝은 나가지지 않는다.
글씨 한 자 한 자를 꿰맞춰 쓰려니
얼마나 답답하고 힘든지 모른다.
그때마다 자식을 눈뜬장님으로 만들어 놓은
아버지가 원망스럽다.
글 모르는 게
내가 국민학교 문턱에라도 가 봤으면
글 쓰는 방식이라도 알았으련만
아주 일자무식이니 말이다.
엉터리로라도 쓰는 것은
아이(손주)들 학교 다닐 때 어깨 너머로
몇 자 익힌 덕분이다.
자식들이나 동생들한테
전화를 걸고 싶어도 못했다.
숫자는 더 깜깜이었으니까
70이 가까워서야 손자 놈 인성이한테
숫자 쓰는 걸 배웠다.
밤늦도록 공책에 써 보았고
내 힘으로 딸네 집에 전화 했던 날을 잊지 못한다.
숫자를 누르고 신호가 가는 동안
가슴이 두근두근 터질 것만 같았다.
내가 건 전화로 통화를 하고 나니
장원급제 한 것보다 더 기분이 좋았다.
너무 신기해서 동생네도 걸고 자식들한테도
자주 전화를 했다.
나는 텔레비젼을 보며 메모도 가끔 한다.
딸들이 가끔 메모한 것을 보며 저희들끼리 죽어라 웃어댄다.
멸치는 '메룻찌'로, 고등어는 '고동아'로
오만원은 '오마넌'으로 적었기 때문이다.
딸 친구한테서 전화가 왔다.
약속 장소를 불러 주는 걸 적었는데
동대문에 있는 이스턴 호텔을
'이슬똘 오떼로' 라고 적어서
딸이 한 동안 연구를 해야 했다.
딸들은 지금도 그 얘기를 하며 웃는다.
그러나 딸들이 웃는 것은
이 에미를 흉보는 게 아니란 걸 잘 안다.
그렇지만 나는 내가 써 놓은 글들이 부끄럽다.
그래서 이 구석 저 구석
써놓은 글들을 숨겨 놓는다.
이만큼이라도 쓰게 된 게 다행이다.
이젠 손주들이 보는
글씨 큰 동화책을 읽을 수도 있다.
인어 공주도 읽었고, 자크의 콩나무도 읽었다.
세상에 태어나 글을 모른다는 것이
얼마나 답답한 일인지 모른다.
이렇게나마 쓰게 되니까
잠 안 오는 밤에 끄적끄적 몇 마디나마
남길 수 있게 되었으니 더 바랄 게 없다.
말벗이 없어도 공책에다
내 생각을 옮기니 너무 좋다.
자식을 낳으면 굶더라도
공부만은 꼭 시킬 일이다.
<사진설명 :할머니가 닦고 또 닦았던 고무신>
딱히 외출할 계획도 없는데
설레는 마음으로 고무신을 닦아
햇볕에 말린 홍 할머니.
하지만 갈 곳이 없어 고무신에
다시 먼지가 쌓이고
그는 신어 보지도 않은 채
더러워진 고무신을 또 닦아 햇볕에 내 놓는다.
그는 이 마음을 이렇게 표현했다.
뽀얗게 고무신을 닦아 햇볕에 내놓았다.
어디 가게 되지 않으니
신어 보지도 않고 다시 닦게 된다.
어디든 떠나고 싶다.
<사진설명 : 가슴에 묻은 자식 생각에 눈물짓는 홍 할머니>
어린 자식이 숨지는 것을
바라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던,
젊은 시절의 아픈 기억과
살날 보다 살아온 날이 많은
노년의 외로움이 절절이 담긴 그의 일기는
그만의 일기가 아니다.
배고프고 힘든 시절을 꾸역꾸역 참고 살아온
한 여인의 일기요.
우리네 어머니의 일기이며
이 땅에 발 딛고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일기다.
- 세상엿보기 / 김순희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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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흔 노인의 애환이 담긴 일기.
화려한 수식어도 없고 맞춤법도 엉망이지만
어찌나 진솔하고 절절한지
읽는 이들의 애간장을 녹입니다.
세상과 이별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
우리는 살아온 날들에 대해
어떤 고백을 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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