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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한마디

어느 요절가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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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07.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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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칼럼 2007.11.7.수
어느 요절가수 이야기
< 낙엽 따라 가버린 사랑 >을 불렀던 차중락은 짧은 삶을 살다 간 가요계의 스타였다. 그는 인쇄소를 경영하는 아버지와 경기여고 육상선수 출신의 어머니 사이에서 8남 3녀 중에 세째로 태어났다. 그는 어려서부터 예체능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특히 형제들 중에서도 매우 잘 생기고 음악과 체육에 뛰어난 소질을 보였다. 핸섬한 얼굴에 미스터코리아 2위에 뽑힐 만큼 건강한 몸짱에다 성격까지 좋았다. 그는 경복고를 졸업하던 해에 음악 감상실을 출입한 후로 음악의 매력에 푹 빠져버렸다.
본격적인 데뷔는 1963년 10월 사촌형인 차도균의 권유로 그룹 키보이스의 리드보컬로 합류하면서 부터였다. 그 뒤 고무장화를 신고 엘비스 플레슬리의 모창을 멋들어지게 부르면서 대중들에게 첫 선을 보였다. 시민회관에서 열린 이 공연은 화제를 모으면서 크게 성공했다.
1966년 당시 차중락은 열애을 하고 있던 이대생과 결별하는 아픔을 겪는다. 이 때 신세계 레코드 사장의 아들 강찬호 역시 실연의 아픔을 겪은 동병상련의 처지였다. 그래서 강찬호는 "낙엽따라 가버린 사랑"을 작사한 후 여기에 엘비스 프레슬리의 "Anything that parts of You" 을 편곡하여 차중락에게 주었다. 이 노래는 그 후 공전의 히트를 몰고 왔다.
1967년에는 이봉조 작곡의 < 사랑의 종말 >로 TBC 방송가요대상 남자가수 신인상을 수상했다. 차중락은 그 때부터 배호와 함께 당시 가요계의 쌍두마차로 이름을 날린다.
나이는 차중락(1941-1968)이 배호(1942-1971)보다 1살 많다. 배호는 아줌마 팬들이 더 많았고, 차중락은 중.고.대학생 등 젊은 여성팬들이 더 많았다. 차중락은 엄청난 스케쥴을 소화하면서 항상 피로에 지쳐 있었다. 결국 1968년 9월 서울동일극장 무대 위에서 고열로 쓰러진 후 의식불명인 채 병원으로 실려 간다.
이때부터 차중락의 팬들은 깊은 슬픔에 쌓이기 시작했다. 눈물을 흘리는 여성 팬들이 계속 늘어났다. 여중, 여고 배지를 단 여학생들은 눈 한 번 뜨지 않는 차중락 오빠를 지켜보다가 수없이 울고 돌아갔다.
차중락의 머리맡에는 방문객의 사인북이 있었다. 그 안에는 기도하듯 정성스런 글씨들이 차곡차곡 담겨졌다. 눈물방울의 얼룩과 함께 기도시도 있었다. 슬픔 가득 찬 연서도 있었다.
그의 곁에서 밤샘을 한 소녀들도 많다. 사인북에는 여자이름이 줄을 이었다. 1백 페이지의 책자는 이들의 호소로 가득 채워졌다. 그러나 팬들의 애절한 기원에도 불구하고 차중락은 투병 끝에 그해 10월 11일 27세의 젊은 나이에 뇌막염으로 세상을 떠났다. 이날은 자신의 대표곡 < 낙엽 따라 가버린 사랑 > 발표 1주년이 되는 날이다.
망우리 공동묘지 차중락의 무덤가에는 때때로 밤샘을 하는 소녀가 있었다. 망령이 되살아날 것 같은 무덤들 사이에서 눈 오는 밤을 혼자 새우는 여고 3년생이었다. 그녀는 단순한 팬이 아니었다. 무서운 집념을 버리지 못했다.
그 소녀는 차중락의 무덤가에 돌을 모아 조그마한 돌성을 쌓았다. 편지를 넣기 위한 우체통이다. 돌로 된 우체통에는 고인에게 바치는 연서들이 수북이 쌓였다. 그녀는 차중락이 입원했을 때도 거의 빠짐없이 병원에 왔다. 임종도 지켜봤다.
차중락이 떠난 그 이듬해 2월 16일 폭설로 뒤덮인 망우리 그의 묘지에서 묘비 제막식이 있었다. 그의 무덤에서 밤샘을 했던 그 소녀는 이날 일기체로 된 3권의 연서를 무덤 앞에 내놓았다.
그러면서 “임께서 가시는 길에 저도 따라갈까요. 이젠 모든 것이 끝났습니다.”라고 오열했다.
배호는 차중락이 떠난 지 3년 후인 1971년 11월 7일 29세에 세상을 떠났다. 두 사람 모두 깊어가는 가을에 타계했다.
인간의 뇌세포 230억 개 중 98%가 말의 영향을 받는다. 어떤 말을 하느냐에 따라 운명이 갈라진다. 말은 또 어떤 사람이 되느냐, 어떤 인생을 사느냐하는 운명의 갈림길에 항상 서 있다.
말 속에 기가 있다. 말이 씨가 된다. 가수들은 자신의 노랫말에 따라 인생이 달라진다. 가수들은 거의 자기가 부른 가사의 말대로 살다 갔다는 연구결과도 나왔다. 차중락도 자기 노랫말 처럼 그렇게 살다 갔다.
< 정복규 논설위원, 유머스피치 강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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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수정일 2019-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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