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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한마디

나는 시인보다 시가 되고 싶다 / 고 은

작성자 ***

작성일09.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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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늘 밤 < 09년 7월 13일 오후 10:45분까지> 우연히 저녁 운동을 마치고 집에서 아내와 함께 복지 TV공익 체 널 방송을 시청하면서, 우리고장 출신 고은 선생님의 태어나서 지금까지 지내온 이야기를 담은 방송을 보면서, 평소 시인에 대한 관심과 시인께서 남다른 애향심으로 고향을 사랑 해 오신 분이시기에, 시청 한 프로그램 내용을 중심으로,

한시간 가량의 메모와 청취한 내용을 스 켓 치 하고 . 다소 어색하지만 여기에 글을 정리해 올려본다 ,대담을 하는 복지체널 WBC 방송국 여자 기자 한분과 고 은 선생님이 대담한 내용을 요약해서 소개하면 이렇다,

내가 군산에서 태어날 적 에는 내 이름은 일본식 이름이 였 지, 말도 일본말을 해야했고 우리말 공부도 책이없어서 어깨 넘어로 글도 배우고 말도 배워야 했어 ,나이가 들어 어린 아이들과 공부를 하면서 두 번 월반 했고 ,내가 중학교를 다니면서 이 육사 시인의 광야도 만났다.

광야라는 시는 나에게는 3가지 의의가 있어 ,나를 시인으로 태어나게 한게기가 되었어, 천고 ...그건 천년만년 시간이 있다 .그 다음 광야는 작은 부락 하나가 아니다 , 커다란 공간 시베리아처럼 큰 공간이지, 이런 것에 내가 빠져 간 거지,

지구에서 백마를 탄 초인이 나타남 말에 인간도 아니고 보통 인간이 아니라 커다란 시간 커다란 공간의 세계, 이때 시인은 읽는다 ,

-광야 -지은이 이 육사....<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데 닭 우는 소리 들 렸 으 랴 ,모든 산맥들이 바다를 연모해 휘 달릴 때도 차마 이곳을 범하던 못하였으리라, 끊임없는 광음을 부지런한 계절이 피어선 지고 큰 강물이 비로소 길을 열었다 .

지금 눈 내리고 매화향기 홀로 아득하니, 내 여기에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다시 천고의 뒤에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이 있어 이 광야에서 목 놓아 부르게 하리라 ,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열리고,
이 시와 만남의 대단했지, 그리고 또하나의 사건은 우연히 주은 시집 하나이다, 누가 사가지고 가다가 아마 잘 못 간수해 , 저녁때 내가 집에 가는 길가에 빛처럼, 한 하은 시집을 발견한거야 , 이 시 집 이 나를 기다리고 있 었 구나, 하면서 그날 밤 시험공부도 안하고 여러 번 읽었던 거야,

그리고 울기도 했지, 나는 이집을 통해서, 첫째 나도 문등 병 걸릴 것 한 하운 처럼 살것, 이 시집처럼 나도 시인이 되어 이렇게 될 것이다, 2가지 명세했어 ,그날 이후 나는 문둥이로 황톳길을 떠났다, 어디서나 말하지만 중학생 시절 4km의 시골 길을 걸어서 통학했는데

어느 날 우연히 시인 한 하운의 시집을 주워서 한센인 의 고통을 문학으로 승화한 ,그이 시를 읽고 한없이 울었다는 이야기를, 이날도 이 자리에서 하면서 책이 나에게 빛처럼 다가왔다는 것이다, 나는 시인 이 었 다,

그는 전쟁과 폐허의 시인, 1952년부터 1969년 까지 스님이 되어서 승가에 입적하여 지내다가 돌아온,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때 전쟁이 일어난거야, 학교에서는 전쟁이 일어나서 ,아예 공부는 안하는 것으로 되어, 그 허탈 한 가방 뒤로 두고 산사로 들어간 것이다 ,그때 우리 마을 전체가 전쟁 안에 갖 혀 있었지,

나는 몇 번 인가 ,징집 대상으로 소집통지서를 받고 훈련소에 가면 불합격 , 그 기준이 미달된 게지, 귀고막 하나가 없었지. 병사로 전선에 나 갈수가 없었다, 나는 전선에는 못 갔어도, 전쟁에 시달렸지, 내 옷에 전쟁의 흔적이 마음과 육체에 뭍 으면, 그 옷을 보름 이상 닦아도 그 냄새가 좀처럼 지워지지 않았어,

모든 사람들의 행복을 이유 없이 빼앗기는 것 여, 비극은 아버지가 아들이 먼저 죽는 것을 보면 그것이 비극 이지요 , 젖을 빨려는 아이 엄마가 아이를 안고 죽 었 지요, 전쟁은 끝없이 양산해내는 비극 이지요. 시인은 죽음을 목견했다고말한다, 내가 지금 존재하는 것 나를 시를 쓰게 하는 것이 지요,

시는 비극 자체 속에서도 폐허에서도. 원고지가 없을 때도 숯덩이 널 판지 에 쓰는 것입니다, 시는 처절 한곳에서, 지옥에서, 당장 총알을 피하려 피한 것은, 아니지만 총알이 지나간 후 , 그총알이 나를 노렸다고 생각도했다 한다. 오늘도 하루해가 빈 가슴 만 커지게 시인의 노래 고 은.......

휴전,전쟁을 격고난후 숨결이 헤쳐지고 나는 허무에 빠졌죠 산에도 가고 들에도 가고 그랬어요 , 자살 충동이 그를 흔들었다 1952 승려가 되었다, 1958년 현대문학에 시 폐결핵으로 등단 그 허무는 나의것이 아니고 그 시의 전체의 것이 었다 .

그 폐가 원점이었다 하천물 흘러가는 시의 삶이 이전의 허무상태가 다 소멸 되고난후 1970년 겨울 판자집 술집에서 신문조각에 불를 댕겨서 죽음 으로 불사르는 죽음에 현실속에서 민주화를 외치는 시대와 만났다,1970년 80~90년대 까지 1973년 박정희 정권에 맞서다,

1977년 긴급조치법 위반으로 구속되기도 했고 1978년 삭발은 내 표현이 절정으로 지낸것이고 1980년대 내내 민주화를 외쳤고 1987년까지는 서울시내 여기저기 경찰서를 민주헌법을 외치면서, 나는 단골로 서울유치장 성북,동쪽 경찰서로 다녔다, 80년대에는 안기부 남산 그 일대에 여러번 가 있었다,

70년대 말 민주화 운동으로 함 석헌 항의 삭발과 함께 했다 . 평소에는 점잖아 졌다가, 나는 술에 취하면 맹수로 변하고, 흥분하면 경찰서 책상위의 전화기 깬다. 독살스런 표정 샘솟듯이 시가 생각나고 시를 울려 가지고 쓴다. 청각이 없어졌는데 ,

하나는 옛날에, 하나는 유신시대가 준 선물이다. 미국 대통령 카터 가 , 박정희 유신 정권과 무엇을 만들어 내는, 물리적 형태로 가서 몸으로 항의를 하다가 청각이 상실했지, yh 사건에 깊이 관련돼 가지고 감옥에서 다친귀를 치료치못해서 하나는 영영 파손되고 하나는 재판이끝이나고 수술해 고막 청각을 회복 했다, 하나 가지고 내란 음모죄 계엄교사 라는 죄목으로들어갔다,

그때 이 문영, 한 완상, 지금 국회 의원인 이 혜찬과 함께 내란 음모 죄로 1980년 육군형무소 수감된다, 특별 감방 7호 실 김 재규 정보부장이 쓰던 그방에 들어 갔고, 문 익 환,정 승 화장군 방 바로 옆에서 철장 신세를 졌는데, 창이 없고 내모난 작은 방 ,관보다 조금 커, 작은 알 전구 30촉 짜리가 어둠을 밝히고 있었지,

아마 사진 현상하는 암실과 같았지. 가끔 전기불이 꺼지면, 전기 사정이 나빠서 그랬다 했어 ,거의 당시 정치 상황으로 사형인 극형을 각오 했어야 했어요, 죽음을 앞두고 절망적인 상황에서 나는 시를 생각했어, 내가 살아나가면 이렇게 쓰리라 ,

바깥소식이 없는데 구상하다가 막상 재판이 마쳐시작을 시작한 것이고, 사전도 들여다가 암기도했어, 그게 세상에 나가서 문학적 소중한 경험을 하고 나에게 문학으로써 시를 갖게 된 것이다 길, 고 은 시 길게 낭송하다..

-길-

길이 없다 그리하여 길을 만들며 간다, 길이 있다 길이 있다, 수많은 내일이 완벽하게 오고 있는 길이있다 가슴이 뛴다 ,수많은 내일이 완벽하게 오고있는 그길을 향해 마음을 다잡고 미래의 희망을 만들며 나갈것이다 길이 없으면 길을 만들어 간다,

어둠이란 빛의 결핍 시는 문학 언어를 다 덜어 내는 것이다 .
정금 덩어리 같은 언어 어휘량이 없어 인도 산스크리스 점찍는 것. 말쟁이 언어가 없어짐, 감옥 공부가 헛 공부다. 나가면 문학을 할 것이다 ,

1982년 출옥후 시인은 모든 만인보다, 내가 만났던 사람을 노래한다, 만나지 못한 사람 고대, 근대 인물이 들어가고, 세종 대왕이나 이 순신 같은 사람을 설정하고 상상속에서 그렇게 종합을 한것이 내가 쓴 만인보다, 살아 숨쉬는 심오한 행복한 시대 도시가 있어야 한다,

고대 당나라 두보는시는 시인이 써야 나온다고 말했다, 시는 불행 해질때 쓰면 행복 해집니다, 비극이나 불행을 시로써야 합니다, 우리는 80~90년대 거대한, 인류 보편적인 문제가 나타난다 거대한 담론. 겨드랑이나 사타구니에있는 그 어떤것들 틈에 박혀 있는것을 들어 올리는것,

작은 미 시 담론이 있어야함, 거대한 것을 시작이, 새로 생겨나는 작은 특권이 있죠 ,자신에 함몰되어 타자를 헤치는 것은 이기주의 이고 영원한 문학의 적이다, 3살때 어린 아이가 그때 살아온 환경으로 어른들 때문에 타자의 형벌을 받고 있는 것이죠 ,

2000.6.15 남북정상 회담때 술 한잔 할적에 당시 대통령이 술이 약하다 하니까 ,그쪽에서 고위 당국자가 나에게 시인 하고 한잔 합시다, 이때 남북정상 회담은 서로 적 이기를 패기하기 시작한것 입니다, 우리 민족은 언젠가 남과북이 하나가 되어야 겠지요, 2005년 다시 백두산에서 산속에서꽃을 노래 할수있고 깊은 영혼속의 울림속 마저 울리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

백 두 산
모든 산들을 저 아래에 두고 / 몇억만년 지나도록 / 아직껏 이것은 산이 아니었다, 오 너 백두산 /그토록 오래된 나날이건만 / 새로이 / 네 열여섯봉우리 펼쳐라 / 장군봉 망천후 사이 / 성난 노루막이 비버처럼 / 가까스로 날라가 버릴 몸뚱어리 버티고 선 / 내 불쌍한 발밑조차 / 보이지 않아 캄캄하지만 / 수많은 어제였던 오늘이었고 /

내일이어야 할 오늘이었다 / 활짝 펼쳐라 여기 억만년 세월의 가슴 있다면 / 그 가슴 삼아 / 열여섯봉우리 / 네 이름을 부른다 열여섯봉우리 / 스물여섯봉우리에 걸어 / 이 나라 시원 속에서 / 다시 태어나는 / 너를 부른다 목 놓아 / 너를 부른다 / 푸른 피 엉겨 / 푸른 피 엉겨 / 너를 부른다 [고은 시, 백두산 중 발췌]

그 시인의 하나 하나가 나도 그렇게 지냈다, 시로 내가 감동을 받았다고 하는 쪽에 내가 서 있었다 ,나는 항상 꼬래비로 따라 다녔다 ,후회는 없죠, 살아온 자체가 역사와 현대가 함께 가는것이고 내 운명은 시인의 운명이다, 나는 시인보다 시가 되고 싶다, 한편의 시가 되어 허공을 떠돌고 싶다,

시 자체이고, 시 이고 싶다 .....이 글을 정리하면서 빠른 이야기를 정리하다 보니 다소 어색한 부분도 있으나, 어른께서 하신 끝 부분에 시인은 동의 한다 ....나도 한편의 시가 되어 허공을 한없이 떠돌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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