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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한마디

산자는 바람을 통하여 죽은자의 소리를 듣고 /고 은 선생님 고향방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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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09.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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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 선생님은 만 인보를 탈고 하신 후, 홀가분한 마음으로 고향에 오셔서 ,가까운 지인들과 만나시고, 또한 지난 7월 24일 금요일, 군산 시 지곡 동 새들 공원 예술회관 신축 부지에서, 세계를 향한 동북아 문화 예술의 중심도시 군산예술회관 기공식 축사를 마치셨다,

이날 점심 식사를 역대 군산 시장님 4분과 하시고, 필자와 함께 동행 한, 박 성현 박사님< 소련에서 박사 학위취득>< 프랑스 대학교 만인보연구 박사논문 집필중> 과 이 복 웅 군산문화원장님, 조 시민 전북오페라 단장님 김 용구 복지과장님 과 신시 도를 향해 가던 중, 비 응 도 선착장에서 기다리시던 월명 유람선 지 명수 사장님과 재미있게 나눈 이야기와

서울 자택으로 올라가시기 전, 잠간 차 한 잔 하고, 떠나신다고 하신 어른을 이 복 웅 원장님 안내로 군산 YMCA 앞에 있는 찻집에서 만난 후, 너무 솔직하고 그 내용이 재미있어, 시인께서 군산에 머무시면서 나눈 대화를 중심으로 이 글을 써 보려한다,

당연히 이야기는 만 인 보를 중심으로 시작한 말씀이라서 소설 같지만, 필자는 더 흥미롭고 재미가 있어 열심히 메모를 리얼하게 했다, 이야기의 처음 중심은 제주도로 넘어 간다, 항구에서는 늘 배가 떠나면, 떠나는 배를 탄 사람은,뭍에 있는 사람을 향해 손을 흔들지. 떠나는 사람이나, 남아있는 사람이나, 한 마음으로 흔들다보면, 마음이 하나가 되거든,

배가 안보일 때까지 손을 흔들다보면, 배는 멀 리 가 버렸고, 아쉬움으로 그를 보내고 남아 있는 사람이 늘 있기 마련인데, 어느 중년 부인이 어린아이를 업고 혼자 있던 거야, 그래서 말을 걸었지 ,저 나하고 짜장 면이나 한 그릇 할까요. 그 여인은 아무 말 없이 중국집으로 따라 오는 거여, 방으로 들어가서 , 중국집에서 ,짜장 면 을 먹으면서, 애 기를 손으로 건드리니까, 화를 벌컥 내면서,

나가 버린 거야, 뒤를 미행 했지, 어느 집에서 살고 있었지, 용두 암, 언저리야, 알아보니 사연이 기가 막혀서, 이야기 하는 거 여, 그 이야기는 이러지 한 육지 남자가 쌀장사를 하려 고, 제주도에 와서 장사를 하다가 섬 날씨가 좋지 못하니까 집에 못가고 섬에서 묵으면서 9일간 지냈다지. 그때 소녀하고 눈이 맞아 연애를 걸었지, 그리고 날이 갠 어느 날 맑고 바람이 잔, 어느 날 이었어,

그 남자는 육지로 떠나면서 다시 오마하면서 헤 여졌 지, 시간이 지나도 아무 소식이 없는데, 여자는 떠날 때 돌아온다고 한 그 약속을 믿 고 기다리다가 점점 배가 불려오니, 친정에서 아버지와 형제들한테 욕을 먹고, 집에서 쫏 겨 났 지, 간신히 어머니가 그런 딸이 너무 불쌍해서 셋방을 하나 얻어 아이를 낳게 돌봐준 거여 그 후 에 기다리다, 영 안 오니 까, 정신 이상이 되 었 어,

그 후 그 애인이 떠난 그 시간이 되면, 늘 이곳에 왔던 거여. 63년 나는 먼 여행을 하고 있었지, 술은 재앙을 전재로 한 축복이지, 술 먹 을 라고, 어느 때 는 점심도, 저녁도 굶 머 , 그리고 그날 저녁때가 되면 우선 독한 소주한잔을 먹고 나 면, 발끝까지, 손끝까지, 변방 끝까지 짜르르 하거든, 그때 초밀감도 얼마못가, 내가 친했던 남 재 희라는 친구가 양복표가 가끔 생기거든,

어쩌다 그를 만나러 가면 새 옷을 입고 나오지 신조 옷이지, 담배꽁초로 새로 입은, 양복 애 리 에 꽂아 버리면, 지지 직 타 버리는 것 이야, 그러면, 그 친구 반응이 태연하게, 나보고 하는 말이 화를 내지 않고 허! 약간 취 하 셨 군 이라 하면서, 화를 전혀 안내거든, 그러면 나는 바로 거대한 암석을 만난거지, 그 다음부터는 그에게 교육을 받는 것 처 럼,

내가 꼼짝없이 교육을 받아야 돼, 그리고 술을 먹 는 거 야, 남 재 히 그 사람 하고 술을 먹으면, 처음에는 점잔은 체하고, 아무나 다 칭찬을 하다가, 몇 잔 이 속으로 들어가면 곧 저주로 바꿔지지, 아부된 왜곡된 복철아, 아~ 하면 입을 벌리거든, 손가락에 변을 발라서, 밀어 넣지, 세 속 적으로 굴욕 된 이야기야, 고향에 사는 이 복 웅 이는, 내 물질적인 재원이야,

군산에 오면 현실이 증명된다니까, 바다의 권력, 아무 때나 바람이 불고, 아무 때나, 노래를 부르지, 노래 섬이라는 곳이, 저기 무인도야, 내가 부르는 노래는 유료야, 그런데 노래 섬은 시도 때도 없이, 노래를 부르거든,

스웨덴 교과서에 만인보가 올랐지, 고등학교에서 단행본으로 배우고 있지, 창작방법 고금 고전, 호 매 로스로, 배우는 거야, 이때 이 복 웅 원장이 말 한다 , 형, 용두 리 산에 올라가면 토치카가 있거든. 그래 왜정 때 있었지, 들판에서 가미가제 하려고 연습했지,

군산 비행장 , 바다 메워서 항구야, 내가 지금 이곳을 지나 네, 꿈이냐 생시냐 하 네, 이 친구 경북 봉화 출신인데, 내가 쓴 만인 보를 가지고, 프랑스에서 박사학위 논문을 쓰고 있네. 필자의 생각에는, 우리나라 에서는, 28년간이나 작품을 쓴 30권의 방대한 분량의 만 인보를 연구하는 일에 아직 꿈 도 못 꾸는데 . 유럽 에서는 여기저기 서, 벌써 고 은 시인님의 문학을 연구하고 있다는데, 놀랍고,

이 자료를 연구를 하는데, 비행기표 값까지 지불하면서, 지도교수가 고 은 선생님 문학 자료를 수집하는, 놀라움을 느낀 순간 이었다, 그것도 우리나라 출신 박사를 연구자로 통해 프랑스 어 로 자기 것으로 만들고 있으니 .....박 종화, 양 주 동이 하고 네가 지낸 적이 있지, 그때 문인들이 복 웅 이를 내가 소개를 하니까, 나이가 많은 걸로 했고, 이 사람은 그렇게 행세를 했어,

이 사람이 죽기 전에 머리 속에 들은 것, 다 내놓게 해야 해, 언제 죽을까 모르거든, 교통사고랄지, 어이고 못 돌아 간 다, 이건 완전히 바보 야, 문학을 하는 20대 애들은 깔렸어, 그들를 위하여, 바다가 구경하는 것 여, 조 시민 건들었다 는 ,큰 일이 난다, 어 자네가 문화원장에 재선이 됐어, 이제 좀 느긋해 변을보면 파리가 꼬이는데,

여기는 철학이 죽어가, 이런 시대가 미학, 철학이 없는, 수판 알 만 튕기는, 아이들이 생기 는 세 상 이 되지, 이야기를 하다보니, 차량은 어느덧 비 응 도에 도달했다. 안내를 받아 4층에 올라갔는데 상당한 시간을 지 명수 사장님과 지난번 군산에서 근무하신, 마침 휴가 중 인 기관장님과 고 은 시인을 기다리고 계셨다.

지 명수 사장님은 수필을 쓰시면서, 고 은 선생님과 만나신 적이 있었고, 이 자리는 문화원장님이 소개로 마련된 것이다, 바다를 바라보면서, 시인께서는, 저기는 내 어젯밤에 여인이 타고, 있다, 선유도로 떠나는 배를 바라보고 있다, 역시 고향이라는 여인이, 최고야 최고의 유혹이고 최고의 권력이야, 우리도 이 자리에서, 미지의 여인에게 미지의 누구에게, 손을 흔들어 하나가 되는 거여,

수평선에 갈 때 까지, 흔들어 하시면서, 옆 사람 손 등에 키스를 한 다, 내 옆에도 어떤 여인이 나를 향해 손을 흔들어, 애기업고 머리는 덕지덕지하고 그런데 꼬실 마음이 생겼어 요, 어제도 그 자리에 있고 , 오늘도 그 자리에 있지, 밥이나 먹을까 하면, 곤란 할 것이지, 지나는 바람과 파도야,

나는 고향을 떠난 사람이다, 고향에 애착이 없다, 나를 거하게 만드는 것 이, 내 고향이 야 , 나는 고향에게 아직 거하게 한 게 없어, 내가 죽으면, 너 가 할일이 많을 거야, 너는 예수님의 제자 디모데, 이런 거해도 돼, 하시면서. 조 시민 오페라 단장을 바라보시고, 계셨다,

이 내용을 녹음하는 박 성현 박사의 녹음기를 손으로 밀어내면서, 검은 미행으로 내가 오 랬 동안 살아온 거야, 엉덩이가 술잔 같으면, 바다위에서, 깃발을 흔들리는, 조각배, 고깃배가 깃발을, 너무 흔들어, 문학의 위기가 있어, 술잔에 담는 다, 하시면서, 소주잔을 거나하게 비운 다, 필자를 바라보시며, 너는 술을 안 먹 냐, 하시는 표정이시지만, 잔을 권 하다 그만 두시고,

옆자리에 있는 지사장과 함께한 분들과 함께 연신 기분 좋게, 어린 아이처럼 젓갈과 생선회와, 안주를 눈으로 즐기시면서, 감탄사를 연발 한다, 아~ 참 좋다, 최고야, 내 고향 바람이, 이렇게 좋을 수가 없다, 하신다. 자리를 비 응 도 에 정박한, 퀀 스 타 호로 이동하여,

소주를 하신 후에 노래를 부르시는 모습은, 정겹고 아름다운 그리운 시간의 정을 내품는 즐거운 노 시인의 노래였다. 이날 시인께서 오르신 퀀 스 타 호는 일본에서 관광객들에게 서비스를 하던 배로 그 시설이 훌륭한 배 였 다. 우리는 이 자리에서, 좋은 시간을 갖고,

다시 시인을 모시고 시내를 향해 차를 몰았다 .차가 내초 도를 지나서, 군산대학 방면으로 올적에, 옥녀봉을 바라보시면서, 아 옥녀 봉 이로구나, 나 어릴 때 옥녀 탕 산, 어린나의 선망의 봉우리야 이때 이곳을 설명을 하는 문화원장님 의 여러 가지 옛날이야기를 들으시면서,

이 사람 교통사고로 죽으면 어떻게 하나 하시면서, 아까 하시던 농담을 또 하시고, 우리친구 이 병훈 이 가버린 후, 내 고향에는 이 사람뿐, 내 심정을 잘 이해해주는 사람이 더 없을 것 같아, 하시면서 . 아 옥녀봉이 뒤로 가 네, 달은 뒷면을 바라보는 거야,

석 매 그 사람은 9, 28 수복 때 나락 밭에 숨어서 살아남은 사람이야 ,옥녀봉을 지나니 신관 리 에는 소영이가 살 았 어 예 뻣 어, 관여 산, 신촌 이야, 고향은 시간 속에 있어, 여인의 자궁 같아, 그 동내가 우리 작은집이야 개사 1구 문씨들이 살던 곳이야, 옥정 리, 가는 곳이야 신촌 할미 산 조 부위가 살 았 어, 그때 여맹 위원장 한 사람도 있어. 여기는 도둑 고개여 하면서,

한 화 흠 의 시집을 주웠던, 길모퉁이를 지나가니 노래를 하신 다, 당신과 나 사이에 저 바다가 없었다면 쓰라린 이별만은 없었을 것을 하시면서, 남 진 가수의 노래를 부르시고 계신다, 고향에 오셔서 감회가 새로운 모양이 시다, 어느덧 군산 북 중학교 가 있었던 자리에서 박 성현 박사에게 자세히 설명을 하니, 이 친구는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하면서, 자료를 녹음하고 사진으로 담으면서,

뛰어다니다가, 신발 끈이 끊어지고 있다. 신발 끈을 손에 들고, 그래도 일본인이 살았던 히 로 스 가옥을 꼭 안내 해 달라 한 다, 히 로 스 가옥은 문이 잠기고 인기척이 없다 ,이다음 프랑스에 돌아가 이곳을 교수와 함께 온다고 말 한다 ,

이 원장님께서 손자를 마중하려고 잠간 익산 역에 다녀오시는 동안에, 화백이신 하 반영 선생님과 오전에 두 분 이 너무 짧게 만나 다시 한번 만나시려고 화실로 갔으나 하 선생님께서 92세 고령이시고, 기공식 행사에 참석 하신 후 몸이 불편하셔서, 낮잠을 주무시는 바람에 못 만나고 아쉽다는 말을 남기시고, 그곳을 떠나 내 흥 동 연안도로 시비 공원에서, 지난번 돌아가신

고 은 선생님과 절친한 이 병훈 선생님의 시비 앞에서 조용히 머리를 숙이시고, 고 은 선생님의 시비인 노래 섬 ,시를 보신 후에, 강 건너 장항 제련소는 내 영혼의 이미지 이지요, 외로울 적에 젓갈하고, 소주한잔 하면 ,외로움이 삭아 지거든, 증오를 거부해야 하거든, 외부에 난 보이는 악질이지, 내가 악질이야... 하시면서 고향을 떠난 후 그리운 군산을 읊조리고 계신 다 .

내 청춘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나는 나다, 만인 보는, 나다, 하시면서, 어디서 전화가 왔는지 ,월요일 판, 주요 일간지, 신문 1면 만인 보, 제목을 정하고 계셨다, 아, 아가미 젖이 왔다 ,이제 정신이 난 다 ,저녁 식사를 일력식당에서 하시는데, 주인아주머니 가 아가미 젖을 가져다 드리니, 괜찮 치, 좀 짜 네 요,

이게 목포에 가면 도선 매화 80가지 생선 젓갈이 있어, 청순가련 형 굳어 버린 다, 냄새가 나면 파리가 꼬여 ,나 지금 군산에 와서 품위가 다, 망 가 졌네. 술김에 하시는 말씀이, 아마 내가 생각하기는 세계적인 시인이, 이 모양이다, 하신 말씀이 아닌가? 생각했다. 바람은 하늬바람, 짠물바람 ,봄에 에 로 티 즘. 마파람, 가도는 하늬바람이 많이 불었지,

말도는, 민어 늦 조기 가 재미 참 죽여 줘. 어느 파도위에서 배가 뒤집어 저서 죽어서, 돌아오지 않는 날이여, 강풍이 불어와 바람에 당하는 것 여, 히 개~ XX 같은 소리여, 산자는 바람을 통하여, 죽은 남편의 소리를 듣고, 아들은 아버지 죽음 소식을 듣게 된다네, 가난한 술을, 가난한 마음에다 붙고, 섬세함으로 우리가 죽었다, 다시 살 것이지,

너희들이 주는 잔은, 재 합 한주야, 자, 이제 헤 여 지 자 하시면서. 누군가 에게, 잠시 하실 말이 있는 듯, 했는데, 필자보고 오라 하시더니, 왼쪽 귀를 물어주고, 아파하는 나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어이 고마워! 모든 일은 더 겸손하게 하면서 살자고 하시면서 ,서울로 가는 차에 몸을 실고 떠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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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수정일 2019-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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