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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16.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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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광수(狂秀)의 의미, 고등학생들도 알아야 합니다.
[주월한국군] 작성자 : 한광덕 작성일 : 2015-12-26
“야~ 저거 광수다 광수~”
1980년 5월의 광주폭동은 그해 5월 18일부터 27일 새벽까지 10일 동안 진행됐다. 북한은 광주에서 벌어지는 긴박한 상황을 북한주민들에 반복해서 중계방송했다. 당시 북한은 광주에 방송 시스템을 이미 마련해 놓고 있었다. 장갑차에 기관총을 거치하고 광주시를 질주하는 모습을 본 북한병사들이 내무반에서 손뼉을 치면서 지른 소리였다.
이로부터 5.18의 진실을 탐구하려는 사회일각에서는 광주폭동에 참가한 북한사람들을 ‘광수’라 부르기 시작했다. 폭동기간 중 5월 18일부터 21일 오후 5시까지는 공수부대를 주축으로 하는 계엄군과 북한 게릴라 600명 사이의 비무장 게릴라 전투였다. 이 과정에 북한은 손성모 이선실 등 남한에서 준동해온 거물간첩들을 포함해 수많은 고첩들이 지하에서 양성한 지방 빨치산들을 게릴라 보조전사들로 이용하였고, 여기에 개념 없는 10대의 학생들과 20대의 사회불만 세력이 부나비가 되어 위장한 북한군에 동조 부역하였다.
사건이 발생하기 오래 전부터 남한에 준동하던 간첩들은 전남 각지에 꼭꼭 숨어 있는 무기고 위치를 모두 파악해 놓고 있었다. 5월 21일 계엄군은 북한특수군의 게릴라 전법에 밀려 간신히 생명을 부지하면서 광주시 외곽으로 철수했다. 계엄군이 끝까지 지키려했던 전남도청은 즉시 북한특수군의 수중으로 들어갔고, 북한 광수집단은 그로부터 5월 23일까지 점령하고 있다가 5월 24일 구름처럼 사라지기 시작했다. 5월 24-25일은 북한 특수군이 도청 건물 지하에 조립해놓은 2,100개의 폭탄을 계엄군 기술자 배성일 문관이 온건파 학생들의 비호를 받으면서 해체한 날이다.
5월 23일은 북한이 고용한 독일 기자 위르겐 힌츠페터 (jürgen hinzpeter 1937)가 북한군의 통역과 태권도 7단 등의 호위를 받으면서 샛길로 광주에 안내되어 북한집단이 원하는 대로 영상을 촬영한 날이다. 그리고 이 사진들에는 대한민국을 살인국가로 묘사하기 위해 수백 명의 비-군인 광수집단이 들어있다.
이들은 전남도청 정문 앞에 세트장을 차려놓고 북한군 2명이 들고 있는 “사망자명단‘ 팻말을 안타까운 시선으로 바라보게 했다. 사진촬영에 동원된 엑스트라들은 남녀노소 골고루 배합돼 있기 때문에 이를 보는 사람들은 그들이 모두 광주시민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들 사진 속 인물들은 모두 북한사람들이었다. 북한사람들은 그들의 비밀을 유지하기 위해 그들의 곁으로 광주시민이 접근하는 것을 배타적으로 차단했다. 북한특수군 600명 중에서 살아남은 사람은 불과 100여명, 이들 600명은 전투조와 로열패밀리 등으로 구성된 지휘부를 보호하는 경호조로 나뉘었다.
전투조는 계엄군이 광주에서 쫓겨나간 직후부터 지키기 시작한 광주교도소를 5월 21일 밤에 6차례씩이나 무모하게 공격하다가 대량살상 당했다. 광주교도소에는 좌익수 180명을 포함해 2,700명의 수용자들이 있었고, 북한은 리을설에게 그들을 해방시켜 폭동의 모멘텀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2014년 5월 13일부터 많은 매체들이 청주시 흥덕지구에 1m 깊이로 질서있게 가매장된 단체유골 430구의 존재를 보도했다. 이들의 시체포장 방법은 대한민국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방법이며, 오직 광주의 다급했던 상황에서 광주시체를 포장했던 그 방법과 동일했다. ‘칠성판’이라 불리는 나무판 위에 시체를 놓고 두꺼운 비닐로 둘둘 말은 후 그 위에 일련번호가 쓰인 시체들이다. 이 430구의 유골은 그 후 보도가 안 되었고, 흥덕경찰서와 청주시청은 화장을 했다고 하지만 여러 경로로 알아보니 화장하지는 않은 것으로 추정된다.
그들은 공화국영웅이기 때문에 지역 간첩들이 각별히 조치했을 것이다. 살아남은 군인 중에서 우리가 얼굴을 확인한 군인광수는 총 87명, 그중 여성이 4명이다. 군인광수는 평양에 가서 출세들을 했다. 인민군원수 1명, 차수 9명, 대장 27명, 상장 27명, 그 이하가 29명이다. 비-군인 광수는 208명, 이중 여성은 53명이다. 관직으로 출세한 비-군인 광수들의 출세현황을 보면, 대남사업총책(통전부장) 4, 총리 3, 부총리 5, 국회의장 1, 장관 8, 대사 7를 포함해 관 및 사회 각계 단체들의 수장들이다. 김중린, 임동욱, 김양건, 연형묵, 김용순, 김영길, 박봉주 등이 남한 사회에 많이 알려져 있는 인물들이다. 208명의 비-군인 광수들의 구성을 보면 각 기관의 엘리트 132명(여성 36), 예술자 27명(여7) 위장 탈북해 지금 대한민국의 상류사회를 구성한 서울광수가 49명(여10)이다.
서울 광수는 계획적으로 남한에 침투하였고, 이들은 대통령의 ‘통일대박’ 이론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했고, 통일주도세력으로는 한국사회에서 가장 단단하고 포섭범위가 가장 넓다. 대통령은 이들의 상당수를 청와대로 초청하여 사진들을 찍었다. 이들 서울광수는 이 책의 뒷부분에 “서울광수 편”에 “트로이목마”라는 제목으로 따로 다루었다. 위장광수의 효시는 신중철, 그는 광주에 왔다가 3년만인 1983년에 인민군 대위를 달고 제4땅굴을 선물로 가지고 와서 대한민국 최고의 애국자로 특별대우를 받으면서 정보사령부에서 대령까지 승진한 다음 김대중 시절인 2001년에 엄청난 정보를 가지고 북으로 갔다. 그 다음은 김희성, 광주사진들에는 두건을 쓴 남자가 어린 소년 학생을 늘 끼고 있는 모습들이 있다.
두건 쓴 남자는 훗날 북한 내각총리(김영일)가 됐고, 교복 입은 어린 학생은 1997년 5월 22일 mbc가 보도한 두 가족이 동시에 귀순했다는 기자회견 사진에 나타나 있다. 어머니 가족과 이모가족이 동시에 귀순한 사실에서 누가 그 어린 김희성이 20대 후반으로 자라나 위장 간첩으로 투입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광수를 찾기 시작한 것은 2015년 5월 5일부터였다. 광주에서 찍힌 3인 1개조의 전투팀이 있다. 이 사진은 이 나라 빨치산 후예들이 ‘5.18민주화운동의 로고사진’으로 활용해왔다, 그런데 그 세 사람이 2010년 평양 노동자회관에서 열린 ‘5.18기념 30돌 기념’ 행사장 로열석에 나란히 앉아있는 것이 처음으로 발견됐다. 참으로 극적인 순간이요, 회원들 모두가 환호했던 순간이었다. 그 다음으로 환호했던 순간은 인민군상장 리을설이 여자 복장을 하고 군인광수들의 전투조를 지휘하고 있는 모습을 발견했을 때였다.
그 다음은 황장엽과 김덕홍이 광수였다는 사실이 발견됐을 때였다. 우리 사회에 학자로만 알려졌던 노쇠한 황장엽, 그가 광주에 와서 남한의 스파이로 의심되는 젊은이들을 도청으로 끌어가 고문하다가 죽이는 역할을 담당한 사진이 발견됐을 때 사람들은 경악했다. 일부 탈북자들과 그 동조세력들이 이에 시비를 걸었지만 그들은 팩트를 제시하지 못해 지금은 침묵하고 있다. 그 다음은 당시 북한의 대남공작 총책 김중린, 남한의 국정원장에 해당하는 인물이다. 그가 현직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광주에 와서 남한을 접수하려는 정치공작을 총 지휘한 사실이 발견됐다. 김일성의 여동생을 포함해 김정일의 첫 부인, 처형, 장성택과 김경희 그리고 3살 난 딸 장금송 등 로열패밀리 8명이 광주에서 발견되었다.
1999년 5월 18일 방송3사가 집중적으로 “5.18현장 이름 없는 주역을 추적한다”는 제목으로 수시로 방송을 내보냈다. 이 사실을 보도한 한계레신문에는 4명의 얼굴이 소개됐다. 그후 17년이 되었지만 아무도 나서는 사람 없다. 이에 더해 2015년 봄부터 광주시가 나서서 지금까지 광주시청 로비를 ‘5.18주역을 찾는 사진 전시공간’으로 활용하고 있지만 1년이 다 지나도록 광주에서는 나타나는 사람이 없다.
그런데 우리는 이를 벌써 찾아냈다. 그 4인은 김창식(제1광수) 농업 상, 리명수 인민군대장(인민보안부장), 전병호 인민군대장 북핵개발 주역, 김정실(여) 최고인민회의 8,9,10기 대의원이다. 광주폭동의 주역으로 인식된 사람들이 한국에는 없고 북한에 있는 확실한 증거인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광주에서 찍힌 10대의 얼굴들이 대부분 서울로 위장 탈북하여 대통령을 포함해 수많은 남한의 인물들을 포섭하고 방송을 통해 인기인이 되어 이를 바탕으로 대북정책과 통일정책을 주도하고 있다는 기막힌 사실들이 발견되었다.
제목 : 체코주재 전 북한대사 김태산氏의 5.18관련 증언 영상을 보면서
[시스템클럽] 글쓴이 : 현우 작성일 : 2015-12-25 02:10
김태산씨의 아래 증언 영상 내용을 보면 5.18때 북한군이 광주에 100% 왔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5.18 광주에 찍힌 탈북자들 본인이다. 탈북 광수로 의심받고 있는 그들은 왜 탈북광수라는 사실을 밝힐 수 없는 것인지? 이것이 풀어야 할 숙제이다. 그들이 탈북 광수라는 사실을 스스로 밝힐 수 없는 이유는 다음과 같은 이유로 예상된다
1. 그들이 위장 탈북자들이기 때문에..
2. 진짜 탈북자이지만 진실을 밝히지 못하도록 막는 내부 세력 압력때문에..
☞ 1번으로 의심받는 주요 이유는
1) 그들이 하나같이 대한민국 사회에 성공한 스타가 되어 있으며 활동하는데 아무런 제약없이 신 분과 주거지까지 노출되어 마음껏 활동하고 있다는 사실..(진짜 탈북자일 경우 생명의 위협으 로 숨어다닐 수 밖에 없음)
2) 탈북 동기 및 탈북방법 증언 내용들이 도저히 납득하기 어려운 증언들이 대부분임..
3) 위장 탈북자로서 자수하게 되면 북에 있는 가족들이 몰살하거나 정치범 수용소로 끌려가게 되 는걸 너무도 잘아는 그들이 스스로 커밍아웃하기는 죽기만큼 어려울듯 함.
☞ 만약 2번으로 인해 탈북광수들이 자수를 못할경우
1) 진실을 밝히지 못하도록 하는 세력이 간첩이거나 대한민국 반역세력으로서 그 집단을 반드시 고소고발해야 하며,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시급히 이 사회에서 영구히 퇴출시켜야 함.
2) 진짜 탈북자들이라면 1번보다는 더 쉽게 구국의 심정으로 진실을 밝히고 내부세력을 고발할 수 있다고 생각됨.
☞ 결론
탈북 광수들은 이제 위장 탈북이든, 진짜 탈북이든 이제 살기위해서라도 진실을 고백해야 한다. 끝까지 자수하지 않고서는 적화 통일이 되더라도 죽고, 자유통일이 되더라도 살지 못한다. 진실은 반드시 드러나게 되어 있으며, 반드시 망해 없어져야 할 北공산정권을 위해 살것이 아니요. 이 자유대한민국을 위해 다시한번 목숨건 구국의 결단이 있기를 기대한다.
주 : 전 체코대사 김태산은 제295광수로 명명됨
동영상 : https://youtu.be/koa9wnfsp7s
자료정리(2016-01-21)
대한해외참전전우회 창원시지회 사무국장
겸, 보훈지킴이 창원시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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