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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한마디

난초향기 처럼 도도한 타향살이,세간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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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07.04.23

조회수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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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화단에는 30 여 년 전 부터 심어둔 꽃에서 해마다 봄이 오면 이때 쯤 모란 꽃 이 피 었다. 올해도 빨갛게 꽃잎이 나오려고 딱딱한 꽃가지 에서 새순이 잘 올라오고 있다, 오월이 오면 향기롭고 화사한 모란꽃이 화단 한구석에서 나를 몇 주는 반겨 줄 것이다 . 아마 오월에 누군가는 나를 떠나가겠지. 그래서 나는 목단 꽃은 좋아해도 모란꽃은 싫어한다, 모란꽃은 많은 사람들에게 는 목단이라 불리고 화투에서는 9자로 통하는 예쁜 꽃이지만 피바가지를 잘씌우는 꽃이다,

저녁때 집에서 그간 실내에서 겨울을 보낸 난초 꽃들을 아내와 함께 집안에서 밖으로 내어놓았다, 우리 지방은 만상일(서리가 내리지 않는 봄)) 4월20일경이라서 그간 실내에서 잘 관리를 못하던 난 화분을 밖에 내어 놓았다, 해마다 나는 난 화분을 밖으로 내어놓으면서 ,자식처럼 애지중지하는 난 화분이 하나가 있는데 우리 집에서 올해로 13년째 자라고 있는 석부작 난꽃 화분하나다 . 올해도 어김없이 나는 아내와 난 화분을 내어놓으면서 실강 이 를 하고 있다, 그것은 화분을 내어놓다 보면 겨울 내내 말라빠진 난초 꽃이 아직 잎은 푸른데 아내는 활기 가없는 화분에서 난초를 먼저 들어내고,가위를가지고 손질을 하려든다

화분을 쏟아서 새 화분으로 갈아주면서 꼭 마른 난초를 골라서 뽑아서 버리는데. 이 광경이 너무 아쉬워서 나는 이런 난초를 다시 주워서 물어 담아둔다, 왜냐하면 조금이라도 푸른빛이 있으면 생명이있고 수분을 잘 공급해주면 다시살아 날것이라는 단순한 내마음에서, 마치 병원에서 중환자에게 전기 충격으로 소생시키는 시술처럼,내가 병행하는 난초 꽃을 치료해 보려는 마음에서 이다. 난초는 우리에게 끈질긴 생명력을 보여주고 꽃이피면 은은한 향기를 불어주어, 꽃이는날 핀 새벽에 집안에 가득한 향기를 생명이 끝나는 순간까지 자신의 주인에게 품어주는 멋과 향기의 도도함이 있기에, 나는 난꽃을 더 사랑하고 우리 집을 기쁘게 해주던 난초 꽃 화분의 마지막 애 처 러 운, 모습을 다시 예전대로 소생 시켜보려는 것이다 ,

오늘은 산에서 울어주는 이름 모를 새소리에 밤잠을 못 이루는 저녁이다 .오늘 따라 저 새 란 놈이 왜 이리 오래도 울고 있는지, 예전에는 깊은 산 계곡에서 저녁에 저 새가 울 때에 음침한 곳에서 울기에 저녁에는, 어른들ㅇ메 밖에 어린아이들이 나가면 안 된다고 말씀하셨다, 화려한 벚 꽃잎들이 사라지고 노란 유채 꽃과 산수유나무에서 이제 막 돋아나는 새싹들과 함께 노란 꽃망울이 올라오고 있다, 나는 가끔 얼토당토 안는 일에 메달려 지나온 세월들이 참 많이 있다.

그래서 오늘은 평소에 내가 잘 아는 집안 형님이시고 한때 일류대학 총장님을 지내시고 지금은 D재단 학원 이사장님으로 계시는 노교수님과 생명을 담보로 한 노병들의 모임을 보면서, 느낀 이야기를 여기에 적어 보려 한 다. 이분들은 군대 임관 동기생님들의 모임인데, 감히 내가 함께 이분을 잠시 나마 모신 것이다, 지금도 열심히 건강하게 지내시고 계신 분들의 모임인데 이분 들 중에는 장성출신들이 두분이 계셨고 , 오늘모임은 훈련소 입소 당시 중대장님을 중심으로 지금까지 끈끈한 정을 가지시고 지내신 다 ,

참 부러운 모임들이었고 즐거운 모습들이었다. 이분들은 젊은 시절 전쟁이 끝나 어려운 우리나라를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처음 수립하여 지금의 대한민국을 만들어 오신 분들이시다, 야! 동 생 너 이리 와! 야 이놈아! 이쫄병 너 몇 중대이고 나는 바로 옆 중대였어 허허 허! 나이 더 먹은 동생은 너 밖에 또 누가 있냐! 저놈 훈련 받을적 에 언제나 제일 늦게 오던 놈이! 오늘도 저놈이오니 이제다 왔어 허허허! 하시는 이 말씀이 무척 재미가 있었으나 이분들도 앞서 이야기를 한 난초 꽃들 처럼 깨끗하고, 도도하게 사나이답게, 의리를 지키면서 나라를 위해서 열심히 고생한 모습을 엿 볼 수 가 있었다.

이 시 간 집에서 오늘 하루가 생각하니, 참 뜻이 있는 날 이었다 ,여러 가지로 의미가 있었다고 생각 하면서 귓전을 스치면서 들려오는 남 인수 가수님 의 옛 노래 애수에 소야곡에 내가 빠져들고 있다 , 운다고 옛 사랑이 다시 오려마는 눈물로 달래주는 구슬픈 사연, 고요히 창을 열어 별빛을 보면 그 누가 불어주는 휘 바람 소리! 이라는 가사에서 흘러간 이야기들이 주마등처럼 들려보고 스크린처럼 지나간 다 , 밖에서 울어주는 두 마리 저 새소리가 참 처량하다 .

이 시간 야속한 미국 버지니아에서 울려 퍼진 32명의 희생자 참사로 가해자 범 인 조 승 희 의 가족들이 참회하는 기도소리 .누나가 끝까지 동생 죄를 속죄하려는 용서를 비는 절규의 소리 , 그가 어린 시절의 자란 과정에 대하여 관심이 있다. 그런데 미국이라는 사회는 참 이상한 사회이다. 오늘 아침 보도를 보니 그동안 자기 나라에서 자라면서 교육을 잘못한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 . 그래서 이름도 그간 사용하던 한국식 조 승 희 에서 승 희 조 미국식으로 바로 바꾸고 희생자 네 번째 묘비를 세우고 그간 우리들의 잘못된 교육 때문에 너 가 희생이 된 것이라는 팻말을 함께 사망한 그 학생들과 함께 마련하고 그를 위로하는 모습이다

이 사건으로 어릴 적에 고국을 떠나고 외똘이가 되어 떠난, 이웃집에서 살던 성자 양 과 그리고 부모 없이 방황한. 지금은 미국에서 살고 있는 우리 어린조카들이 더 생 각 이 나고 직장 생활을 하다 이혼하고 고국을 떠난 영리하고 똑똑한 대기업에서 근무하는 컴퓨터 기술자인, 누님의 셋째 조카가 생각이 더 난다, 지금 생각해 보니 이 모든 일들이 가슴이 아픈 이야기들이다. 애처러운 이들을 보면서, 어제한 노교수님께서 나에게 하신 말씀이 생각 이 난다, 아니 내 가슴을 더 울리고 있다,

사람은 자기 고향이 타향에서 살다보면 늙을수록 더 외롭고 더 나는 것 여! 그래서 나도 내가 살던 고향을 마지막까지 지켜보려 하고 있어! 우리 전의이씨 일가는 군산에 생기기전에 금강 가 에서 살았고, 그러니까 군산시 보다 먼저 우리조상들이 이곳에서 살았으니, 대단한 거지 그래서 우리 집을 내가 종손 집안이고, 장손이니 헐어저가는 집을 지금이라도 고쳐 서 지 키 지 않으면 고향이 없어 저 ! 동생한테 고향을 맡겼으니 잘 지키라시며 시간이 없어 하신 다 . 떠나시면서 두 손을 꼭 잡아 주셨다. 봄 처녀 오신 다 던 날 나를 두고 서울로 떠난 우리 형님들은 언제쯤이나 오시려 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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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수정일 2019-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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