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봄: 장암야우 (長岩夜雨) 육지 슬하를 떠나 온 강물이 째보 선창에 여장을 풀고 잠시 쉼을 얻는 밤 동무 봄비가 장암 제련소 앞 바다에 얼굴 비빕니다 내게로 내려오는 줄 알았는데 그리로 몰려 간 뜻을 난 모르겠어요 장항선열차 끝역까지 타고 내려 온 나그네들 사연은 가슴에 그냥 묻어 둘래요 더러는 흐릿한 가로등 얼굴로 월명공원에 올라 등대 옆에 잠든 고깃배 바라 봅니다 봄이 흐르고 강물은 바다로 흐르고 내 마음도 비에 무쳐 갔는데 누군가 홀로 남아 갈 줄 모릅니다.
2.여름: 해망 낙조 정오의 빛같이 싱싱한 젊은이여 혹 군산에 오거든 해망동공원에 올라 서해 드넓은 바다 황산벌 장렬한 전투장 같은 낙조를 보시라 출렁이는 피 빛 파도 함성이 굴욕을 거부하는 당신의 마음을 분명 노래하고 있음을 보시라 분투 중에 쓰러지는 계백 장군의 혼이 희망처럼 걸린 것을 깃대 삼아 가시라 오늘도 흙은 여전히 땅으로 돌아가고 당신을 위하여 베푼 하루 해망 낙조가 신전 의식처럼 치러지고 있는 군산의 여름.
3.가을: 명산 추월 (名山 秋月)
지평선 곡창지대 만경 평야 풍요를 위하여 바닷가로 물러 선 너그러운 산무리들 색동저고리 소녀 강강수월래 하네 솔가지 사이 두루미 둥지 하얀 알 들썩 들썩 보름달 깨고 탄생하려나. 또 하나 내 하얀 꿈. 누가 알았을까, 여기 아들 딸 낳고 쌀가마니 실어다 뒷방에 쌓아 놓고 바다 생선 엮어 툇마루에 걸고 고즈넉한 가을 밤 명산 추월 밑에 시 한 수 지으며 살줄을,
4.겨울: 점방막설 (占方幕雪)
염전 평야 구석 쌓아 놓은 소금 산 점방 마루에 올라 손부채처럼 퍼진 바다 위 은막 눈보라를 바라보네 하늘이 하얗게 풀어져 내려오고 거기, 기록 된 시민들의 애환을 상영하네 내 얘기도 극 중에 있어 산에 오르네 수평선 너머로 배에 실려 갔을 백색 추억이여 삼십 년을 봉화처럼 피워 보낸 백색 청춘 일기여 오오! 반 백 머리같이 백색 고결한 군산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