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광의 고구려사를 가르쳐서는 안 되는 나라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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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07.07.19
조회수14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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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의 고구려사를 가르쳐서는 안 되는 나라 한국
고구려를 건국한 주몽의 시호는 추모왕인데, 동명왕이 북부여를 계승하여 건국한 부여의 역사를 고구려사로 왜곡하는 과정에서 동명왕 혹은 동명성왕으로 조작되었다는 것을 밝혀내었다.
또 추모왕 고주몽이 국시를 옛 영토를 되찾는다는 의미의 “다물”로 정하였는데 고구려가 되찾고자 한 옛 영토 즉, 고토는 해모수천왕이 건국하고 그 후손인 해부루왕이 동명왕에게 빼앗긴 북부여의 고토이다. 즉 동명왕의 후손들이 차지하고 있는 부여의 영토였다는 것,
추모왕 고주몽이 읍루(말갈)을 복속시키고, 북옥저를 복속시킴으로써 건국시기의 고구려 영토는 이미 만주지역의 광활한 지역을 차지하였고, 대무신왕이 평양지역의 낙랑국, 개마고원 지역의 개마국, 함경도 지역의 동옥저, 길림성 동부ㆍ흑룡강성 동부ㆍ러시아 연해주을 영토로 한 동부여를 흡수 통합함으로써 서기전 37 ~서기 55년의 고구려는 이미 만주 전지역과 한반도 북부를 영토로 한 대제국이 되었다는 것,
그러한 국력을 바탕으로 고구려 모본왕(48~53) 2년인 서기 49년에 중국의 심장부로 한(漢)나라의 수도인 낙양(洛陽) 북쪽에 있는 태원(太原)을 비롯한 상곡ㆍ어양ㆍ북평 등을 점령하였었다는 것,
4세기 전후에는 요녕성 서남부 및 북경ㆍ하북성 동부지역에 있던 낙랑군, 대방군, 현도군, 요동군 등을 점령하였고, 494년에는 하북성 북부, 요하 상류유역, 그 북쪽의 내몽고, 동몽고, 동부 시베리아 지역을 영토로 한 부여를 흡수 통합함으로써 고구려는 동북아시아의 최대 강국이 되었다는 것,
등을 객관적, 실증적, 과학적으로 밝혀냈다.
위만조선, 위만조선을 멸망시킨 한나라가 설치한 낙랑군 등의 한사군이 4세기 초까지 한반도 북부를 지배해왔다는 일제식민사학자, 조선총독부사학자, 그들의 추종자들이 한국고대사 분야를 대부분 장악하고 있다. 때문에 서기 22년 대무신왕이 동부여를 흡수 통합하였고, 호동왕자의 계략으로 평양ㆍ평안도 지역에 있던 낙랑공주의 낙랑국을 흡수 통합하는 『삼국사기』의 기록도 부정되고, 서기 49년 모본왕이 중국 후한의 심장부인 태원 등을 점령하였다는 후한의 역사서인 『후한서』의 기록도, 서기 55년에 태조대왕(53~146) 때에 이미 요하의 서쪽을 영토로 하여 요하의 서쪽에 10개의 성을 쌓아 한나라의 침입을 방비할 만큼 고구려의 영토가 광대하였었다는 『삼국사기』의 기록도 부정된다. 한반도에 한사군이 4세기 초까지 있었다는 그들의 역사인식으로는 건국 초기의 고구려가 그러한 광활한 지역을 영토로 한 강대국이었다는 것을 인정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왜곡된 역사교육을 바로잡기 위한 1,000만인 서명운동을
참역사문화연구회에서 합니다.
모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역사문화적 자긍심을 되찾고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의 평화 정착에 기어합시다.
서명하시는 곳은
참역사문화연구회의 홈페지인
www.history.or.kr
입니다.
참역사문화연구회의 홈페지인 www.history.or.kr 에 가시면 기막히고, 분노하고, 놀랄만한 연구결과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 기사들을 읽다보면 한국인으로서의 큰 자부심을 느끼실 겁니다.
고구려를 건국한 주몽의 시호는 추모왕인데, 동명왕이 북부여를 계승하여 건국한 부여의 역사를 고구려사로 왜곡하는 과정에서 동명왕 혹은 동명성왕으로 조작되었다는 것을 밝혀내었다.
또 추모왕 고주몽이 국시를 옛 영토를 되찾는다는 의미의 “다물”로 정하였는데 고구려가 되찾고자 한 옛 영토 즉, 고토는 해모수천왕이 건국하고 그 후손인 해부루왕이 동명왕에게 빼앗긴 북부여의 고토이다. 즉 동명왕의 후손들이 차지하고 있는 부여의 영토였다는 것,
추모왕 고주몽이 읍루(말갈)을 복속시키고, 북옥저를 복속시킴으로써 건국시기의 고구려 영토는 이미 만주지역의 광활한 지역을 차지하였고, 대무신왕이 평양지역의 낙랑국, 개마고원 지역의 개마국, 함경도 지역의 동옥저, 길림성 동부ㆍ흑룡강성 동부ㆍ러시아 연해주을 영토로 한 동부여를 흡수 통합함으로써 서기전 37 ~서기 55년의 고구려는 이미 만주 전지역과 한반도 북부를 영토로 한 대제국이 되었다는 것,
그러한 국력을 바탕으로 고구려 모본왕(48~53) 2년인 서기 49년에 중국의 심장부로 한(漢)나라의 수도인 낙양(洛陽) 북쪽에 있는 태원(太原)을 비롯한 상곡ㆍ어양ㆍ북평 등을 점령하였었다는 것,
4세기 전후에는 요녕성 서남부 및 북경ㆍ하북성 동부지역에 있던 낙랑군, 대방군, 현도군, 요동군 등을 점령하였고, 494년에는 하북성 북부, 요하 상류유역, 그 북쪽의 내몽고, 동몽고, 동부 시베리아 지역을 영토로 한 부여를 흡수 통합함으로써 고구려는 동북아시아의 최대 강국이 되었다는 것,
등을 객관적, 실증적, 과학적으로 밝혀냈다.
위만조선, 위만조선을 멸망시킨 한나라가 설치한 낙랑군 등의 한사군이 4세기 초까지 한반도 북부를 지배해왔다는 일제식민사학자, 조선총독부사학자, 그들의 추종자들이 한국고대사 분야를 대부분 장악하고 있다. 때문에 서기 22년 대무신왕이 동부여를 흡수 통합하였고, 호동왕자의 계략으로 평양ㆍ평안도 지역에 있던 낙랑공주의 낙랑국을 흡수 통합하는 『삼국사기』의 기록도 부정되고, 서기 49년 모본왕이 중국 후한의 심장부인 태원 등을 점령하였다는 후한의 역사서인 『후한서』의 기록도, 서기 55년에 태조대왕(53~146) 때에 이미 요하의 서쪽을 영토로 하여 요하의 서쪽에 10개의 성을 쌓아 한나라의 침입을 방비할 만큼 고구려의 영토가 광대하였었다는 『삼국사기』의 기록도 부정된다. 한반도에 한사군이 4세기 초까지 있었다는 그들의 역사인식으로는 건국 초기의 고구려가 그러한 광활한 지역을 영토로 한 강대국이었다는 것을 인정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왜곡된 역사교육을 바로잡기 위한 1,000만인 서명운동을
참역사문화연구회에서 합니다.
모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역사문화적 자긍심을 되찾고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의 평화 정착에 기어합시다.
서명하시는 곳은
참역사문화연구회의 홈페지인
www.history.or.kr
입니다.
참역사문화연구회의 홈페지인 www.history.or.kr 에 가시면 기막히고, 분노하고, 놀랄만한 연구결과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 기사들을 읽다보면 한국인으로서의 큰 자부심을 느끼실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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