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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한마디

장모님과 나와 의 눈물의 이별/ 가슴에 한맺힌 불효자의 사모곡

작성자 ***

작성일07.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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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마저울던 그밤에, 눈보라가 치던 그밤에, 어린몸,갈곳없어, 낮선거리 헤매이네 ,아무에게 물어봐도 목메이게 불러봐도,어머님께신곳은, 알수없구나 찾을길없구나 .오늘 나와 헤여진 " 장모님과의 만남은 내가 20세 중반되던 가을밤이었다 ,당시 아내와 나는 한 교회를 다니면서, 서로자주 만나게되고, 자연스럽게 서로 사랑하게되어, 약관의 나이에 내가 당돌하게 결혼을 하겠다고 ,시골 논,밭길을 따라, 처음으로 처갓집에 결혼 승낙을 받아내기 위해서 가던날,

아산리 억천 구석집 골방에서 불안하게 앉아있던 더벅머리, 나를 장모님은 반갑게 맞아주시면서 ,남의 집 귀한 아들이 왔다시며 따뜻하게 해주시던 모습이 나와 처음 장모님과의 첫 만남이었다 . 그후 첫아들 원호 목사를 낳던날 제일먼저 달려오셔서 아내에게 미역국을 끊여주시면서 얼마나 좋아하시는지 잘했다 칭찬하시고 .바로 산후조리를 하도록 아래 처제님을 보내주시고 그후에도 내 어머님의 자리를 장모님께서 메꾸어주신 세월 35년이 어느덧 흘러갔다.

어머님이 이세상를 마지막 하직 하시던날, 시골 면단위 8.15 체육대회 행사 현장에 다녀오느라고 바쁜 일정을 마치고 이틀후, 다음 토요일에 뵙기를 계획하였으나, 그마저 허락치않으시고, 마지막 이생을 마감하시는 운명을 하신것이다.성남분당 서울대학병원 영안실에서 장모님의, 곱디고운 모습 얼굴을 뵙고 나니, 내눈에서는 복바치는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장인어른께서는 오늘 종일 느어머니 얼굴을 안봤으니 한번더 봐야겠다시는,

장인 어른 성화에, 온가족들을 앞세우고 ,영안실에서 편하게 계시는, 돌아가신 어머님의 얼굴은 병도 없고.눈물도 없고. 그저 편안한 모습으로계신다, 이제 영혼과 심신을 하나님 곁에서 계시는 우리어머님의 얼굴이시다. 장인께서는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치시며, 느어머님은 일정때 배많이골았어. 식량이 부족할때 면사무소에서 깨묵을 나눠주면, 그 깨묵이 썩었지, 우물가에 가서 물에담가 시컴하게 썩은 ,깨묵물을 우려내서 밥을 해먹었지 ,큰딸을 낳고 1주일만에 해방이 되니 정부에서 나락 한가마니씩 주었어, 농사지라고 비료도주고, 씻나락도 줬어 ,비료로 준 것이 깨묵이야 그것이 식량처럼 먹었던 바로 그것이야 하신다

장모님이 올해 86세이신데 8/16 10;30 돌아가신것이다 .장인께서는 왜정때 고생했던 생각에 목이 메이시는 장모님의 생각을 하고 계신다,아이구 허망하게 갔다, 이제 내 차례가 되었구나, 복은 한가지만 잘해서 있는것이 아니고 평범하게 살면서 여러가지를 잘해야 복이 온단 말이지. 내 슬픔앞에 게시는 어머님의 모습은 그간 사위를 사랑하셨던 따뜻한 손이 아니고 차디찬 손이고 .나는 임종을 못 지킨 죄로 맨손으로 어머님의 손을 가만히 잡아드렸다 .그리고 빌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이 곱고 고운, 우리 장모님을 천국에서, 천사들과 함께 지내게 해달라는 . 이시간 어머님의 모습을보니 .즐겨 입으시던 명주 옷과 비단 옷이 아니고, 까실까실한 삼베옷이고 , 많은 자손들이 참석한 이자리는, 자손들 손에 꽃다발이 아니고, 이별의 슬픔을 닦아내는 손수건들이 들려있다, 아버님의 마지막 이별은 입맛춤이 아니고,눈물을닦아주는 손길이고, 주변에서 소낙비낙수물 소리처럼, 우는소리가 어머님을 보내려는 슬픔의 이별곡인 통곡소리를 참아내는 순간의소리다..

황소 울음 소리처럼 낙수물이 떨어질때 .아버지께서는" 나는 아이를 낳아 어렵게 살면서도 하나도 쭈구랭이 없이( 아이를 키우면서, 도중에 죽거나, 사산하거나,8남매가 이혼한일 ,죽는일이 한건도 없음) 가슴 아픈꼴도 안보았는디" 가슴 아픈일없이. 한 세상사는 것도 복이지 하신다. 어머님이 돌아가신후, 먼산 푸른 숲을 바라보시는 시선이 오늘따라 처량하시다 .단 하루도 지나지 않으셨는데 , 7년간 대소변을 받아내신 지겨운일도 , 이제는 추억이라 하신다.그리고 이제 쓸쓸해서 어떻게 사느냐 하시는 것이다 .두분이 손잡고 한시도떨어지지 않고 늘 다니시던 장날.생선사던날, 아이들 옷사던날,운동회 하던날 ...

내가 21살먹고. 22살 먹은해 4월 초 사흔날 만났고. 느 어머니를 색시를 아내로 맞이했어 64년을 산게지. 야 수건좀 빨아 와라, 연신 눈물을 보이시지 않으시더니 .말씀 하신다 오늘 어머님과의 가족과의 이별은 잠시 이별이고, 아버님이 천국에서 다시 만나시면 .그때는 더 잘 해드릴수 있나요. 그럼 더 잘해야지.그것보다 함께 있을적에 잘해 그래야 후회안해 . 그해 여름에 보리바심 할때다 .보리겨로 떡을 해먹었지 얼마나 배가곱아 그렇겠어 .그래서 먹었지 ,조카사위 처삼촌 벌초하듯이 대충일도했고. 우리양반 돌아가시후 조카 사위놈이 왔구나.야이 재옥이가 왔네 자네 오랜만이야, 하시면서 슬퍼하신다

목사님 말씀은 7년간 어머님의 아프신것은 자녀들에게 효도의 기회를 주었고. 남편의 사랑을 받도록 한것 이라는 위로의 말씀과 무더운 여름날 밭일 하시고 보리 방아찌어 저녁밥을 지어 주시고, 남의집 논일 나가 셋거리 빵한 조각을 남겨서 막내 아들 군것질 거리로 주신일. 고생인줄도 모르고. 땀흘리 시고 서울에서 손자가 오면 호미를 내던지고. 수민이랑. 수훈이랑.수형이랑 달려가면서 안아 주신일. 큰 아들 완석이가 효자지 .그렇 나 한테 잘했어도 고맙다 안해.하시면서 그렇게도가고 싶어하는

내 고향 ,우리 집을 나하고 당신하고.밀바 타고(노인이 미는 수레) 한번 가고 싶어하신 집을 이제 영원히 다시못오실 고인이 되시어 오신 집에는 당신이 쓰시던 모자, 빛바랜 사진들,괘종시계 12시50분 멈춘곳에서 침대랑.장독.돌지않는 선풍기.가마니바디.홀테. 돗자리바디가 그대로 인체 내가 병만 하루빨리 낳으면 집에가서 다시 쓰신다는, 그 약속도 멀리한체 이제 영원히 하늘 나라로 가신 것이다.

장모님의 육신이, 군산봉황공원 승화원에서 장례식를 마치고, 하얀 백합 처럼핀 유골의 꽃이된 당신을 화장장에서 모셔올때 나는 오래참았던, 눈물이 가슴속을 파고들었다 .그동안 잘못 해드린 불효를 장모님 용서하소서 .그리고 하늘나라에서, 편히 7년의 대소변도 가리지못하신 중풍의 고통도 다 잃어버리고, 이제 영원히 쉬소서....당신을 사랑하는 남편과 59명의 자손들이 남아 계신 우리아버님께 마지막 효도를 더 잘하게 하시고, 남을 위해 봉사하는 일들에 앞장서고 모두 잘 되게 기도 해주소서 ~

<많은 위로와 격려를 해주신 여러 청원들께 감사하는 마음을 여기에 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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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수정일 2019-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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