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의 교향악단이 모여 1년간 갈고 닦은 기량을 선보이는 ‘교향악 축제’가 올해로 19년째를 맞았다. 이름값만 믿고 도도하고 심드렁한 연주를 한 악단보다는 청중과 음악에 겸손한 태도로 성심을 다하는 오케스트라가 더욱 깊은 감동을 준다.
올해도 감동은 예상치 못한 곳에서 찾아 왔다. 지난 8일 군산시립교향악단은 12년 만에 서울 나들이를 했다. 지휘자 임동수가 이끄는 군산시향의 실력과 열의는 많은 연습에 따른 자신감에서 비롯된 것임을 오래지 않아 눈치챌 수 있었다.
첫 곡인 클로드 드뷔시의 ‘목신의 오후 전주곡’에서부터 현과 관의 조화가 ‘심상치 않은’ 조짐을 보였다. 목신 판과 그의 유혹을 받는 물의 요정의 움직임이 플루트에서 오보에, 클라리넷, 바이올린, 다시 두 대의 플루트로 옮겨 가는 모습이 눈에 잡힐 듯이 선명했다.
목신이 헤치던 어슴푸레한 아지랑이는 드미트리 스몰스키의 교향곡 10번 ‘체르노빌’에서 완전히 걷혔다. 스몰스키는 올해로 70세가 된 벨로루시 태생의 작곡가로 인근 우크라이나에서 1986년에 일어난 체르노빌 원전 사고를 음악으로 표현했다. 환경의 재앙이 울리는 경종과 인류 공통의 과제가 호소력을 있게 다가왔다.
특히 비올라 독주가 곁들여 지는 이 교향곡의 형식은 랄로의 바이올린 협주곡인 ‘스페인 교향곡’의 아이디어와도 맞닿아 있었다. 비올라라 독주의 최승용은 마지막 위로와 안녕을 기원하는 다독임까지 차분하게 소화했다. 마농 그로피우스를 위한 레퀴엠인 알반 베르크의 바이올린 협주곡과 유사한 느낌이었다.
군산시향의 진정한 승리는 브람스의 교향곡 4번에서 이뤄졌다. 사소한 실수 따위는 거론할 필요 없이 단원 모두가 전폭적으로 임동수에게 그리고 브람스에게 신뢰를 표현한 감동적인 무대였다. 4악장 ‘파사칼리아’의 웅장한 사원은 어떤 세파에도 흔들리지 않을 듯이 견고했다. 교향악 축제 전반부의 ‘하이라이트’라 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