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생각하니 당신의 자식사랑은 늘 감동이었습니다 - 대야장날 어쩌다 생선이라도 사오시면 자식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먹이려 하늘보다 더 높은 큰 들의 당신은 주로 까시만 드셨었습니다.
수건 동여메고 누워 앓으시다가도 못난 자식 학교에서 돌아오면 “아이고 내 새끼” 하시며 벌떡 일어나 삼복더위 왕구슬땀 아랑곳없이 물젖은 보리짚 불지펴 호호불면서 호박잎 찌고 가지도 찌고 된장도 쪄 저녁상을 무지개빛으로 차리셨습니다.
고된 농사일과 수만가지 집안일로 코스모스처럼 가늘고 활처럼 굽은 당신은 멍멍이도 잠든 칠흙 밤에도 닭 울도록 홀로 지새며 6~8명 자식들의 옷과 양말을 천년된 포도주보다 훨씬 진한 향으로 기으시고 또 기으셨습니다. * 상기의 “큰 들”은 대야를 지칭합니다. 저는 대야면 출신으로, 몇일 전에 귀빠진 날을 맞이했지요. 그래서 어머니도 생각났고요. 다른지역 어머니들께서도 그렇겠지만, 저 어렸을 당시는 제 어머님을 포함해서 대야지역의 어머니들께서는 한결같이 자식사랑이 유달리 깊으셨습니다. 자식에 대한 사랑이 하나에서 열까지 모두 헌신이었고 희생이었지요. 그래서 이제는 그게 더욱 마음이 아프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