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옥구현 경장리의 큰 하천이 있던 아흔아홉다리에서 물을 따라 내려가면 경포가 있었는데 지금의 중동 로타리 부근 지역으로 생각되며 전라도와 충청도에서 모인 짐들이 여기에 쌓여지고 그것을 배로 서울(개성,한성)로 운반하였기 때문에 생긴 이름이며 서울(京)로 떠나는 배가 드나 든 갯벌(浦口)이라 하여 부르기 쉽게 셔울개→서울개→설개→설애로 바뀐 듯 합니다.
흙구더기
시내 중심가에서 남쪽으로 새로 만들어진 동네라는 뜻의 동흥남동이 바로 이곳으로 옛 옥구현 북면의 팔마현(八馬峴-팔마재) 또는 경장리에 속했던 곳으로 본래 군산의 현 시가지 일대는 작은 산과 연못과 습지로 이루어져 있어 오늘날과 같이 평탄한 도시가 되기까지에는 오랜 세월이 걸렸는데 이 곳은 비가 오면 신발에 온통 황토흙이 묻어 신발에 흙을 많이 묻히고 다니면 "흙구더기에서 왔는가"고 놀렸다 한다.
삼학동의 모시산
현재 삼학동 일대에 있던 낮은 야산의 이름으로 옛날에 서울로 보내는 짐 중 한산 모시와 나포 숫골의 삼베 등은 잘 말라야 하겠기에 이곳 야산에 말뚝을 박아 모시나 삼베를 건조시켰는데 바닷바람에 너울거리는 모습이 마치 수천 마리의 황학과 백학 같았다고 하며 삼학동이라는 동명은 여기에서 근거하였고 산 이름도 모시산이 되었다 하는데 현재는 산의 모습은 거의 없고 주택과 아파트가 들어서 있 습니다.
째보선창
"째보"라는 말은 "언청이"를 비웃는 말로 선창의 생김새가 언청이 처럼 생겨 붙여긴 이름으로 옛날 옥구군청 자리의 큰 못에서 시작하여 현재의 영동파출소 그리고 군산시장(市場)을 지나 금강과 연결되는 포구를 말하며 삼남(충청,전라,경상)의 농산물을 서울로 보내는 중요한 선창이었으나 이제는 복개되거나 매립되어 옛 모습을 찾아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둔뱀이
오늘날의 둔율동을 말하며 조선 숙종시대에 이 곳에 둔소(군대 주둔지)가 있었고 주변 야산에 밤나무 많아 둔소의 "둔(屯)"과 밤나무 "율(栗)"자를 합해 한자음으로는 "둔율"이라 불렀고 한글말로는 둔밤이 인데 이 것이 둔뱀이로 변했다는 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