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로 일군 5000억달러 신화 (옮긴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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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06.06.09
조회수3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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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로 일군 ‘5000억달러 신화’
1964년 12월10일. 서독 북서부 루르탄광지대 승용차 안에서 독일의 노신사가 손수건을 꺼내 동양의 한 젊은이 눈물을 닦아주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도 못 참겠다는 듯 눈시울을 붉혔다.
그 노신사는 바로 뤼브케 서독 대통령. 그리고 동양의 젊은이는 바로 박정희 대통령이었다. 이들은 루르지역 한 회관에서 한바탕 눈물잔치를 벌이고 나오는 길이었다. 이들은 정상회담 직후 함께 한·독 간호사와 광부들을 위로하기 위해 루르탄광지역을 찾았다. 회관에는 2억 만리를 날아온 모국의 대통령을 보기 위해 500여명의 파독 광부와 간호사들이 모였다. 애국가가 울려 퍼지자마자 회관 안은 눈물바다로 변했다. 박 대통령은 준비해온 연설문을 읽기 시작했다.
“여러분 만리타향에서 이렇게 상봉하게 되니 감개무량합니다….” 그러나 눈물이 앞을 가려 연설문을 볼 수가 없었다. 그는 원고를 밀치고 즉석연설을 시작했다. “가족이나 고향생각에 괴로움이 많을 줄 알지만 비록 우리 생전에는 이룩하지 못하더라도 후손을 위해 번영의 터전만이라도 물려주기 위해 우리 열심히 일합시다. 열심히 일합시다.”
그는 더이상 연설을 할 수가 없었다. 북받쳐 오르는 눈물을 참을 수 없었던 것이다. 잠시 후 또 하나의 장관이 연출됐다. 광부와 간호사들이 뤼브케 대통령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큰절을 한 뒤 애원을 했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한국을 도와주세요. 우리 대통령을 도와주세요. 우리 모두 열심히 일하겠습니다.무슨 일이든 하겠습니다.” 뤼브케 대통령도 감동한 듯 “우리가 도와주겠습니다. 서독 국민들이 도와주겠습니다”라고 화답했다.
다음날 박 대통령은 서독국회에서 또 한번 읍소의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돈 좀 빌려주세요. 한국에 돈 좀 빌려주세요. 여러분의 나라처럼 우리도 공산주의와 싸우고 있습니다. 한국이 공산주의와 대결하여 이기려면 경제를 일으켜야 합니다. 그 돈은 꼭 갚겠습니다.”
며칠 후 박대통령은 1억4000만마르크(3000만달러)의 차관을 빌려 들고 귀국길에 올랐다. 광부와 간호사들의 임금을 담보로 말이다. 박 대통령의 서독방문은 독일언론에 한국 간호사들이 ‘살아있는 코리아 에인절’로 실린 것이 동기가 됐다. 뤼브케 대통령은 “그 나라의 대통령을 보고 싶다”며 박 대통령을 국빈자격으로 초청했다. 박 대통령이 타고 갈 비행기가 없어 난감해한다는 소식을 듣고 전세기까지 보내줬다. 당시 유엔에 등록한 120개 국가 중 한국은 두 번째로 못사는 나라였다. 필리핀의 국민소득(GNP)이 170달러. 태국이 220달러, 한국이 76달러였다.
얼마 후 한국은 동네마다 “머리카락 파세요! 파세요!”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가발공장이 생긴 것이다. 또 쥐잡기 운동도 벌어졌다. 쥐털로 만든 일명 코리안 밍크를 만들어 수출하기 위해서였다. 1965년 말 파월장병 뉴스와 정주영 현대건설회장의 태국 나라티왓 고속도로건설, 베트남의 메콩강 준설공사 수주 뉴스도 뒤를 이었다. 그리고 정주영 회장과 이병철 삼성그룹회장, 박태준 포철회장 등에 의한 신화창조. 즉 자동차와 조선, 전자, 설탕, 비료, 철강 공장뉴스가 우리를 들뜨게 했다. 그리고 경부고속도로 건설과 함께 멈췄던 한반도 동맥이 힘차게 흐르기 시작했다.
2005년 11월30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제42회 무역의 날 행사에서는 무역 5000억달러 달성 기념식이 열렸다. 이는 멕시코를 제외한 중남미 38개국 전체를 합친 것과 또 아프리카 58개국의 무역규모를 훨씬 뛰어넘는 수치다. 오늘날 대한민국의 신화는 1000m 지하에서 두더지처럼 일한 파독 광부와 시체를 닦으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은 간호사, 월남전에 참가한 파월장병의 피눈물로 이뤄진 것이다. 오! 필승코리아는 이렇게 시작된 것이다.
1964년 12월10일. 서독 북서부 루르탄광지대 승용차 안에서 독일의 노신사가 손수건을 꺼내 동양의 한 젊은이 눈물을 닦아주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도 못 참겠다는 듯 눈시울을 붉혔다.
그 노신사는 바로 뤼브케 서독 대통령. 그리고 동양의 젊은이는 바로 박정희 대통령이었다. 이들은 루르지역 한 회관에서 한바탕 눈물잔치를 벌이고 나오는 길이었다. 이들은 정상회담 직후 함께 한·독 간호사와 광부들을 위로하기 위해 루르탄광지역을 찾았다. 회관에는 2억 만리를 날아온 모국의 대통령을 보기 위해 500여명의 파독 광부와 간호사들이 모였다. 애국가가 울려 퍼지자마자 회관 안은 눈물바다로 변했다. 박 대통령은 준비해온 연설문을 읽기 시작했다.
“여러분 만리타향에서 이렇게 상봉하게 되니 감개무량합니다….” 그러나 눈물이 앞을 가려 연설문을 볼 수가 없었다. 그는 원고를 밀치고 즉석연설을 시작했다. “가족이나 고향생각에 괴로움이 많을 줄 알지만 비록 우리 생전에는 이룩하지 못하더라도 후손을 위해 번영의 터전만이라도 물려주기 위해 우리 열심히 일합시다. 열심히 일합시다.”
그는 더이상 연설을 할 수가 없었다. 북받쳐 오르는 눈물을 참을 수 없었던 것이다. 잠시 후 또 하나의 장관이 연출됐다. 광부와 간호사들이 뤼브케 대통령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큰절을 한 뒤 애원을 했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한국을 도와주세요. 우리 대통령을 도와주세요. 우리 모두 열심히 일하겠습니다.무슨 일이든 하겠습니다.” 뤼브케 대통령도 감동한 듯 “우리가 도와주겠습니다. 서독 국민들이 도와주겠습니다”라고 화답했다.
다음날 박 대통령은 서독국회에서 또 한번 읍소의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돈 좀 빌려주세요. 한국에 돈 좀 빌려주세요. 여러분의 나라처럼 우리도 공산주의와 싸우고 있습니다. 한국이 공산주의와 대결하여 이기려면 경제를 일으켜야 합니다. 그 돈은 꼭 갚겠습니다.”
며칠 후 박대통령은 1억4000만마르크(3000만달러)의 차관을 빌려 들고 귀국길에 올랐다. 광부와 간호사들의 임금을 담보로 말이다. 박 대통령의 서독방문은 독일언론에 한국 간호사들이 ‘살아있는 코리아 에인절’로 실린 것이 동기가 됐다. 뤼브케 대통령은 “그 나라의 대통령을 보고 싶다”며 박 대통령을 국빈자격으로 초청했다. 박 대통령이 타고 갈 비행기가 없어 난감해한다는 소식을 듣고 전세기까지 보내줬다. 당시 유엔에 등록한 120개 국가 중 한국은 두 번째로 못사는 나라였다. 필리핀의 국민소득(GNP)이 170달러. 태국이 220달러, 한국이 76달러였다.
얼마 후 한국은 동네마다 “머리카락 파세요! 파세요!”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가발공장이 생긴 것이다. 또 쥐잡기 운동도 벌어졌다. 쥐털로 만든 일명 코리안 밍크를 만들어 수출하기 위해서였다. 1965년 말 파월장병 뉴스와 정주영 현대건설회장의 태국 나라티왓 고속도로건설, 베트남의 메콩강 준설공사 수주 뉴스도 뒤를 이었다. 그리고 정주영 회장과 이병철 삼성그룹회장, 박태준 포철회장 등에 의한 신화창조. 즉 자동차와 조선, 전자, 설탕, 비료, 철강 공장뉴스가 우리를 들뜨게 했다. 그리고 경부고속도로 건설과 함께 멈췄던 한반도 동맥이 힘차게 흐르기 시작했다.
2005년 11월30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제42회 무역의 날 행사에서는 무역 5000억달러 달성 기념식이 열렸다. 이는 멕시코를 제외한 중남미 38개국 전체를 합친 것과 또 아프리카 58개국의 무역규모를 훨씬 뛰어넘는 수치다. 오늘날 대한민국의 신화는 1000m 지하에서 두더지처럼 일한 파독 광부와 시체를 닦으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은 간호사, 월남전에 참가한 파월장병의 피눈물로 이뤄진 것이다. 오! 필승코리아는 이렇게 시작된 것이다.
최근수정일 2019-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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