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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한마디

새만금과 군산 산업단지에 흐르는 축복에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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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08.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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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아련한 추억을 좀 더듬어 보려한다 .1970년 초에 선유도 해수욕장을 가기 위해서는 지금처럼 뱃 편도 그리 좋지 않아서, 항상 군산내항 부잔교에서 한나절 정도를 기다려서 뱃 시 간 을, 여러 번 물어보고 선유도행 배를 탈적이다. 당시에 뱃 표 하나를 얻으려면,

힘께 나 있는 사람들이, 먼저 우선순위로 배를 타고 서민들은, 그나마 남은 뱃 표를 사서 타고 갈 적 이다.여름이 되면 만선을 하고 돌아오는 어선처럼 .온통 뱃전에서부터 사람들이 발 디딜 곳이 없을 정도로, 여객선에 많이 타고 선유도 를 향해 출항하여, 바람이 불거나 .

파도와 풍랑이 일어나면 장항앞바다에서, 다시 군산내항으로 회항을 해오던 어수룩한 시절이었으니 그때 우리내의 삶은 고달 펏 고 힘든 시기라서 모두들 시원한 바다를 동경하고 살던 때, 우리지방에서는 해수욕장을 한번 가는 일은 평생자주 있는 일이 아니었다,

한 동내에서 모내기를 마치고 못 줄잡이가 남겨놓은, 공동기금으로 개 한 마 리 를 잡아, 닭고기와 푸짐하게 음식을 준비해서, 모래찜을 가는데, 주로 군산~장항 금강 나 룻 터 에서, 장항을 건너가는 똑딱선으로 동백 정 모래밭이나 .장항 제련소 뒤편 백사장으로 많이들 갔다.

군산항을 출발하여 유부도 앞을 지나면서 비 응 도 쪽을 바라보면, 멀리 보이던, 긴 방조제공사는, 바다위에서 장비로 돌을 쏟아 넣어 가면서 하고 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군산 산업 기지를 만들던, 방조제 공사였다.

이 바다가 지금은 금싸라기로 변해간, 군산공업단지 조성공사 라는 걸, 당시에는 아무도 몰랐다 .어제 어느 방송에서 일제시대 군산에서는 부동산을, 일본 사람들이 몽땅 사서 투기하는 열풍이 불었고, 군산은 당시만 해도 어마 어마한 부동산투기 지역이 우리 군산이었다고 한 다 ,

지금 생각해보면 당시에 일본사람들이 군산지방에 유독 눈독을 드렸던 목적은 .지금의 새 만 금 사업을 구상했고, 처음에는 산북 동 열 대 자 을 중심으로, 간척사업을 먼저 실시하여, 대단위 일본인 농장건설을 시도하였다고 본 다, 왜냐하면 내가 아는 것만 해도,

일본인 농장 중에는 발산초등 학교자리의 도 곡 농장과 .말신 이 .편산이 라 하는 사람이 살던 곳이, 개정 면 에 있었고 .웅봉농장이 지금 개정병원 자리에 위치하고 .동양 척식회사와 불리흥업 주식회사가 앞서 말한, 지금 산북 동 일대 농경지를 사들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바다 간척을 시작하여, 내초도 앞바다를 막기 시작했고 군산항을 건설하고, 군산선 철도를 이어 그들만의 파라다이스를 만들다가, 8,15해방이 되니 손을 떨고 일어섰다 . 요지 음 일본인들의 관광객들이 심심치 않게 군산을 방문하고 있다.

그들은 말없이 새 만 금 현장을 돌아 보 고 간 다 . 아마 그들이 야심적으로 구상한 사업을 우리가 해내는 것이다. 어제는 새만금 깃발아래 전국 명사들께서 뭉치셨다 참으로 다행스럽다. 모두들 새 만 금 발전을 싱크탱크 해주실 역할을 자임 해주셨다 한 다 ,

나는 아직 두바이를 가보지는 않았다 그러나 자료나 보도에 의하면, 두바이는 모래로 된 섬을, 야자수모양으로 수변을 조성하고, 그곳에 새로운 도시를 건설한다고 한 다 . 필자는 상해 포 동 지역 을 다녀온 적이 있다 .

그곳에서 느낀 점은, 장래에 긴 안목에서, 대형 프로젝트를 시행 해가는 것을 보았다, 그 사람들은 서두르지 않고, 선진국을 따라 잡자는 모습인 것으로 보였다. 우리 지방의 농지 값이 전국 최하위의 값을 그간 오래 유지한곳이다 ,이제 서서히 전국 평균치로 들어서는데,

그 부동산 가격 폭이 크게 오른 것으로 보였다. 그런데 지금까지 어려울적에 땅을 잘 가지고 계셨던 우리시민들이 너무 성급하게 부동산을 외지인들한테 팔아버린다 .물론 그간 자녀들의 학자금이나 .살아오시면서 부채를 가지고 계셨고. 살림에 어려우실 줄은 안다.

그러나 우리가 먹어야할 과실을 다른 사람에게 먹게 하면 더 속이 상할 일이다 .지난겨울에 군산에 있던 아파트를 팔고, 전주로 이사를 간 조카는 이렇게 말했다,조금만 더 있었더라면 3 천 만 원 은 벌었을 텐데, 일본인들이 따먹지 못했던 과실을 ,

우리가 이제 그 열매를 가꾸어 따먹을 차례가 된 것이다 .우리나라 그 어느 지방에서도, 군산만의 모습을 흉내를 낼 수 없는 일들이, 요지 음 아주 재미있게 생겼다 . 군산 내항과 외항 앞바다의 원수처럼 보였던, 당나라 소정 방 군대가 .왜구들이 일백 년 전에 서양 선교사들이 지나간,

저 시 컴 한, 뻘땅 들 이, 새 만 금 사업에 이용 될 줄이야, 누가 꿈엔들 생각 했었겠는가, 하나님이 내려준 우리 고장의 보물이 될 줄은 누가 알았겠는 가 , 이제 전북을 이끌고 나갈 새 만 금 과 공업단지에 흐르는 축복의 눈물은, 묵묵히 땀을 흘리면서 지켜온 우리시민들의 것이다,

있다면 새 만금 사업과 일천만평의 공단에 점화시킨 위대한 군산 우리시민의 열정이 있었다고 본 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에서 자만해서는 절대로 안 된다 . 이 거대한 사업과 우리고장을 위해서 수고하고 땀을 흘려주시는 모든 분들에게, 따뜻하고 정겨운 군산만의 자랑인, 인심으로 감싸 드려야한다.

외지에서 오신 모든 분들에게, 편안하고 쉴만한 잠자리와 즐길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드리자 .우리 고장만의 특유의 인심인 맛있는 음식과 덤으로 주는 한주먹 인심을 보여드리자 .덤으로 짐 하나를 더 들어 드리는 미덕을 보여주자 .

처음에는 손해일지는 모르지만 많이 양보하면 우리에게도 복이 따라올 것이다 . 우리가 조금만 더 노력하면 많이 달라져가고 있다 .우리의 열정이 있으면 웃음이 넘치는 고장이 만들어 진다 , I Q 148이상인 천재는 백수가 많다고 한 다 .

그러나 남들이 바보처럼 보았던, 우리 고향을 사랑하던, 굽은 나무가 선산을 잘 지켜오지 않았겠는 가 . 그래서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 다는 걸 이제야 알았다 . 바보처럼 순진하게 열심히 살아온 우리가 지금까지 생각을 바꾸어. 열정으로 다 저 왔던, 내 고향 군산을 마음껏 조금만 더 사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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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수정일 2019-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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