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군산시립교향악단
작성일24.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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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차이콥스키 / 현을 위한 세레나데 Op. 48
차이콥스키는 자신의 가장 밝은 분위기의 작품인 [현을 위한 세레나데]를 [1812년 서곡]과 같은 시기에 작곡했다. 그는 이 곡을 작곡할 때 가슴에서 우러난 감정을 담아 만든 작품이다. 라고 했으며 실제로도 그런 느낌이 풍부하게 담겨 있다. 그의 말은 조금도 틀리지 않다. 그는 이 곡으로 우울하고 절망에 찬 시인의 이미지를 단숨에 날려 버렸다. 3악장 엘레지의 후반부에서 감상적인 느낌이 아주 살짝 느껴지는 것만 신경 쓰지 않는다면 말이다. 한편 이 곡은 내림 음형으로 시작한다. 이 음형은 차이콥스키가 피날레에 넣은 러시아 민속 음악 중에서 두 번째 곡과 비슷하다는 사실이 듣는 이의 관심을 끈다. 1악장의 주요 부분은 춤곡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 단순한 소나티나와 같은 모차르트 선율로 만들어졌다. 또한 차이콥스키의 작품 중에서 가장 우아한 왈츠 선율이 들어 있다. 이 부분은 1881년 초연 당시 앙코르 곡으로 연주했다. 다음 부분은 음형이 올라가기 시작하고 느린 악장에서 되풀이된다. 1악장과 2악장 모두 차이콥스키가 단순한 음계로 얼마나 아름다운 선율의 곡조를 만들 수 있는지 잘 보여준다. 현을 위한 세레나데는 현악파트 규모에 따라 분위기가 달라진다. 음색이 화려하고 낭만적일 수도 있고 실내악 분위기를 낼 수도 있다. (차이콥스키는 작곡 당시 교향곡으로 쓸지 현악 5중주로 쓸지 생각했다.) 다니엘레 가티는 교향곡 6번 비창으로 시작하는 이 음반에서 차이콥스키의 또 다른 면을 보여주었다. 그는 로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현악파트로부터 상반된 두 가지 분위기를 훌륭하게 이끌어냈다. 오프닝에서 대담함과 웅장함이 느껴지지만 좀 더 세밀한 순간에는 언제 그랬느냐는 듯 친밀함이 느껴지는 듯 하다.
2. 요한스트라우스 2세 / 피치카토 폴카 Op. 117
현악기들만의 피치카토 (현을 손가락으로 뜯는 주법) 로 진행되는 이 독특한 폴카는 요한 스트라우스가 동생인 요제프 슈트라우스와 함께 작곡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요제프는 형 못지않게 음악적 재능이 뛰어난 작곡가였으며, 형이 건강 문제로 활동을 쉬는 동안 형의 악단을 대신 맡아 지휘하기도 했다. 러시아 파브로프스키에서 만들어진 이 곡은 그처럼 우애 깊었던 형제가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장난치는 기분으로 작곡한 느낌을 준다. 합작이라고는 하지만 곡 자체는 매우 단순한데, 일설에 따르면 작곡은 요체프가 맡았고 요한은 피치카토의 아이디어만 냈다고도 한다.
3. 요한스트라우스 2세 / 집시남작 서곡
집시남작은 18세기 중반의 헝가리를 배경으로 한다. 양돈업자인 추판은 추방되었다가 영지로 돌아온 바린카이와 딸 아르제나를 결혼 시키려 하지만 아르제나는 이미 마음에 둔 사람이 있어서 남편감은 남작 정도는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한편 집시들은 바린카이가 그들의 주인이라고 말하며 그가 보물과 아내를 찾게 될 것이라고 예언한다. 이야기는 끊임없이 얽히고 설키다가 결국 집시의 예언이 실현된다. 바린카이는 집시 예언자인 치프라의 딸 사피아와 결혼하는데 그녀는 원래 터키의 공주였다. 전쟁 참전으로 바린카이는 남작 지위를 받게 되고 극은 해피엔딩으로 끝이 난다. 이 오페라는 빈의 왈츠곡들과 헝가리의 집시 음악이 잘 혼합되어 있다. 서곡은 매우 유쾌하고 흥겨우며 오늘날 연주회 프로그램에서도 자주 등장한다. 실제로 요한 스트라우스의 선조들은 헝가리에서 왔으며 슈트라우스 또한 헝가리 초원에서의 집시 생활을 동경하곤 했었다. 그는 집시남작의 초연을 위해서 사람들을 헝가리의 집시마을로 보내 그들의 의상과 소도구 등을 모두 배워오도록 했다. 그렇게 탄생한 무대는 집시마을과 다름 없었고, 마을 사람들도 실제 집시마을에 사는 집시들과 다를 바가 없었다고 한다.
4. 드보르작 / 슬라브 무곡 8번 Op. 46
안토닌 드보르작이 슬라브 민족의 정서를 바탕으로 완성한 8곡의 무곡으로 체코 무곡의 정수로 꼽힌다. 이 곡의 성공으로 두 번째 슬라브 무곡집도 출판된다. 1878년 초 브람스의 추천에 힘입어 드보르작의 <모라비아의 이중창>악보가 베를린의 짐로크 음악 출판사를 통해 출판되었다. 악보는 예상 밖의 성공을 거두었고, 평단의 호평도 받았다. 이에 고무된 짐로크사는 드보르작에게 브람스의 <헝가리 무곡>과 비슷한 피아노 연탄곡 형식의 슬라브 무곡 작곡을 요청했다. 그는 1878년 3월 18일부터 작곡에 착수했는데, 두 달이 채 되지 않은 5월 7일 전곡을 완성했다. 푸리안트(2/4 혹은 3/4박자의 빠른 춤곡), 수세드스카(3/4박자의 약간 느린 춤곡)등 보헤미아의 다양한 민속 무곡 형식을 가져와 새로운 션율을 만들었고, 처음에는 피아노 연탄고으로 작곡했으나 4월부터는 관현악 편곡도 병행해 8월 22일 최종 완성했다. 피아노 악보는 출판되자마자 선풍적인 인기를 누렸고, 관현악 악보도 사랑을 받는다. 덕분에 드보르작은 이 한 곡으로 일약 세계적인 인기 작곡가로 부상했다.
5. 드보르작 / 슬라브 무곡 2번 Op. 72
1878년 (슬라브 무곡 8번 1집)은 유럽 각국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다. 1879년에는 독일과 영국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누려 피아노 연탄용 악보가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다. 이에 고무된 짐로크 음악출판사는 후속편의 작곡을 의뢰했는데, 드보르작의 관심이 대곡 작곡에 가 있었기 때문에 작업은 지연되었다. 이윽고 1886년 6월 9일 작곡에 착수했고, 7월 9일 8곡을 다 완성했다. 이어 11월 초부터는 관현악 편곡에도 들어가 이듬해 1월 5일 완성했다. 이에 따라 네 손용 피아노용 악보는 1886년에, 관현악용 악보는 1887년에 출판되었다. 1집 못지 않은 선풍적인 인기를 누렸으며, 음악적으로는 1집보다 더 높은 평가를 받았다.
6. 요한스트라우스 2세 /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강 왈츠 Op. 314
본래 왈츠는 18세기 중엽 오스트리아 및 바이에른 지방에서 유래한 민속춤곡이었다. 쿵작짝 하는 3박자 리듬에 기초한 이 춤곡이 연주되면 남녀가 서로 끌어안고 빙글빙글 원을 그리며 춤을 추게 되는데, 한 때는 그 모습이 너무 외설적이라 하여 금지된 적도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 외설스런 춤곡이 19세기 들어 빈의 사교계로 진출하면서 크게 유행하기 시작했고, 이 빈 왈츠는 1814년과 1815년에 걸쳐 얼린 빈 회의를 계기로 유럽 전역에 전파되었다. 그런데 그때까지만 해도 왈츠는 고급 사교춤의 대명사 또는 사교춤을 위한 음악 일 따름이었다. 즉 왈츠 음악의 목적은 사람들이 왈츠를 추는 동안 반주를 제공하는 데 있었으며, 그 이미지나 가치는 어디까지나 유희적인 차원에 머물러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19세기 후반에 왈츠의 왕으로 일컬어지는 요한스트라우스 2세가 활약하면서 사정은 달라졌다. 그에 의해서 왈츠는 한 차원 높은 예술음악으로 격상되었던 것이다.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는 빈 왈츠의 대명사로 통하는 슈트라우스의 대표작, 원래는 프로이센과의 전쟁에서 패배한 조국 (오스트리아)을 위로하기 위한 합창곡으로 작곡되었으나 초연시에는 별다른 호응을 얻지 못했고, 얼마 후 관현악곡으로 편곡, 재발표되면서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그리고 같은 해인 1867년 여름 파리에서 열린 만국 박람회장에서 연주되었을 때 폭발적인 호응을 이끌어냈고, 이후 비공식적이나마 오스트리아 제2의 국가로 꼽힐 만큼 폭넓은 명성을 누리게 되었다. 도입부와 다섯 개의 작은 왈츠, 코다로 이루어진 이 곡은 언제나 듣는 이에게 꿈결처럼 감미로운 음감과 가슴 설레는 감흥을 안겨준다. 마치 도나우 강의 물결에 몸을 맡기고 그 우아한 흐름을 따라가면서 주위의 풍광을 만끽하는 느낌이랄까? 물론 그 이면에는 슈트라우스의 가슴 깊은 곳에서 우러난 조국애가 자리하고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되리라 이 곡이 유명한 빈 빌 신년음악회의 고정 앙코르로 연주되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7. 엘라 / 위풍당당 행진곡 Op. 39
1901년 엘가가 작곡해 알프레드 로드월드와 리버풀 관현악 협회 회원들에게 헌정했다. 피콜로와 풀루트, 오보에, 클라리넷, 바순, 등 2관 편성이다. 4대의 호른, 2대의 트럼펫, 2대의 코넷, 3대의 트럼본, 튜바, 팀파니, 타악기 2대의 하프, 오르간 등으로 편성됐다. 위풍당당 행진곡은 전곡 가운데 가장 잘 알려져 있는 이 곡은 2번과 더블어 알프레드 로드월드가 지휘하는 리버풀 관현악 협회의 연주로 1901년 10우러 19일 초연되었다. 1번과 2번은 모두 이틀 뒤 런던 퀸즈홀에서 열리니 프롬스에서 헨리 우드경의 지휘로 연주되었다. 행진곡 1번은 두 차례나 앙코르로 연주되었는데, 프롬스 역사상 유일무인한 사건으로 기록됐다. 트리오 부분에는 희망과 영광의 나라로 알려진 멜로디가 들어있다. 1902년에는 이 멜로디가 변형된 형식으로 다시 등장해 에드워드 7세 대관식 송가로 쓰였다. 가사도 부리기에 좋게 다듬어져 프롬스 콘서트의 마지막 날 연주된다. 행진곡 1번의 트리오 섹션은 1931년 11월 12일 EMI 애비로드 스튜디오의 개관일에 에드워드 엘가의 지휘로 연주되었다. 미국에서 희망과 영광의 나라는 위풍당당 혹은 졸업 행진곡으로 알려졌다. 거의 모든 고등학교와 대학교의 졸업식에서 연주되고 있다. 1905년 6월 28일 예일대학교 학위 수여식날 음대의 교수였던 사무엘 샌포드는 친구 엘가를 학교로 초청해 명예음악박사 학위를 수여하기로 했다. 샌포드는 뉴욕의 음악가들을 불러 모아 엘가의 오라토리오 생명의 빛과 위풍당당 행진곡 1번을 연주했고, 엘가는 1905년 겨울에 서주와 알레그로를 샌포드에게 헌정했다. 이 때부터 미국 대학의 졸업식 개회식과 퇴장음악으로 이 부분이 사용되고 있다. 이탈리아에서는 신의 신성한 교회라는 제목의 전례음악으로 쓰인다. 명료한 서주에 이어 새로운 주제가 나타난다. 강력한 비트가 교대로 등장하고 저음부는 주선율과 끊임없이 충돌한다. 오케스트라가 튜티를 반복할 때 튜바와 관악 총주도 함께한다. 현악군이 약간의 리듬을 반복하고 관현악 전체가 반복한 뒤에 목관의 의해 반음 상행 전조로 종지한다. 생기넘치는 행진곡이 반복된다. 여기와 트리오의 중간 부분에서는 고음역을 강조하는 금관과 목관, 현이 조하를 이루고 트럼펫과 트럼본의 팡파르가 행진곡의 도입부로 이어진다. 희망과 영광의 나라의 유명한 멜로디를 가진 트리오가 이어진다. 처음에는 바이올린 4대의 호른, 두대의 클라리넷으로 작게 연주되다가 두대의 하프가 포함된 오케스트라 총주가 당당하게 울린다. 기운찬 도입부를 잠깐 연상시키고 끝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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