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 군산군도

관광의 중심지! 군산에서 관광명소를 둘러보세요!

선유도
섬의 경치가 너무 아름다워 신선이 놀았다고 하며,
신시도, 무녀도,방축도,말도 등과 더불어 고군산군도를 이루는 중심섬이다.
  • 주소 : 전북 군산시 옥도면

소개

본래 군산도라 불렸으나 섬의 북단 해발 100여미터의 봉 정상의 형태가 마치 두 신선이 마주 앉아 바둑을 두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여 선유도라 불리게 되었다. 2.13km의 면적에 500 이상의 인구가 살고 있는 선유도는 신시도, 무녀도, 방축도, 말도 등과 더불어 고군산군도를 이루며 군도의 중심섬이다.

선유도는 고군산군도의 중심지로서 서해의 중요한 요충지이다. 조선시대 수군의 본부로서 기지역할을 다했던 선유도는 수군절제사가 통제하기도 하였다. 고려시대에는 여/송 무역로의 기항지였을 뿐만 아니라 이순신장군이 명량해전 승리 후 선유도에서 열하루동안 머물며 전열을 재정비하는 등 임진왜란 때는 함선의 정박기지로 해상요지였다.

고군산군도에서 8경이라는 명소가 있는데 고군산 8경의 중심부를 이루는 곳이 선유도의 진말이다. 선유도에는 이씨, 김씨가 주축을 이루고 있으며 박씨, 임씨, 고씨 등도 고루 살고 있다. 민간신앙으로서 오룡묘제, 장생제, 수신제, 부락제 등이 있었으나 전통이 단절된 상태이며, 유물 유적으로는 패총과 수군절제사 선정비의 비석군이 있다.

남서쪽에 있는 장자도와는 장자교로 연결되 있어 쉽게 왕래할 수 있다.

여행객이 선유도에서 신선처럼 즐길수 있는 방법은 대체적으로 세 가지

먼저 이웃 섬들을 둘러보는 여행이다. 선유도와 무녀도, 장자도, 대장도는 섬끼리 다리로 이어져 있기 때문에 걸어서 다녀올 수 있다. 자전거로 선유도를 한 바퀴 둘러보고 장자도를 거쳐 대장도까지 다녀오는 데 1시간이면 충분하고, 무녀도를 다녀오는 데도 1시간이면 넉넉하다. 이런저런 구경을 한다 해도 3시간이면 여유 있게 네 개의 섬을 모두 둘러볼 수 있다. 선유도는 옛날엔 3개의 섬으로 분리되어 있었으나 파도에 쓸려온 모래가 오랜 세월 쌓여 언덕을 만들면서 지금처럼 하나로 연결됐다. 바로 '선유 8경'의 하나인 명사십리 해안이다. 십리라 하지만 실제 길이는 1.5km쯤 된다. 그러나 백사장의 폭 이 200m이고 수심은 어지간히 멀리 나가도 2m 정도에 불과하니 가족 피서지로는 더 없이 좋다. 이 명사십리 산책이 선유도에서 두 번째 즐길 거리다. 세 번째는 갯벌 체험. 썰물 때 갯벌에서 소금으로 맛조개를 잡을 수 있다. 갯벌의 구멍에 소금을 조금씩 뿌려놓으면 맛조개가 삐죽이 고개를 내민다. 반쯤 올라왔을 때 잽싸게 잡아채면 된다. 또 바지락, 모시조개 등을 캐고 소라를 줍거나 농게, 달 랑게를 잡을 수 있다. 그러니 취사 도구와 양념을 준비할 일이다. 해수욕장 양쪽 끄트머리 근처의 갯벌이 이런 갖가지 갯것을 손쉽게 잡을 수 있는 포인트.

충무공 이순신과 선유도

충무공과의 인연은 임진왜란이 막바지로 치닫던 선조 30년 (1597) 9월 21일 충무공은 명량해협의 울돌목에서 기적 같은 승리를 거둔 후 지친 몸을 선유도에 닻을 내렸던 것을 말한다.

왜적이 명량해협으로 돌진해 왔는데 적 함대 133척 중 31척을 침몰시키는 큰 승리를 거두게 된 충무공은 12척 이라는 숫적 열세 때문에 적의 추적을 피해 북상하여 위도 를 거쳐 선유도에 도착한 것은 해전 6일 후인 9월 21일 이었다.

「난중일기」를 보면 장군이 선유도에 도착한 후 몸살로 몹시 앓았으며 가을 태풍으로 선박의 이동이 용이치 않았다. 선유도에서 12일간의 휴식을 취한 장군은 선유도를 떠난지 14개월 후 선조 31년(1598) 11월 19일 임진왜란의 마지막 해 전이라 할 수 있는 노량해전에서 54세의 나이로 전사하였다.

선유도 갯벌은?

일반적으로 조류(潮流)로 운반되는 모래나 점토의 미세입자가 파도가 잔잔한 해역에 오랫동안 쌓여 생기는 평탄한 지형을 말한다.

이러한 지역은 만조 때에는 물 속에 잠기나 간조 때에는 공기 중에 노출되는 것이 특징이며 퇴적물질이 운반되어 점점 쌓이게 된다. 한국 서해안의 조차는 해안선의 출입이 심하고 긴 만()이라는 지형적 특성에 의해 조차가 매우 크다.

국내 총 개펄 면적의 83%가 서해안 지역에 분포하며 캐나다 동부 해안, 미국 동부 해안과 북해 연안, 아마존 강 유역과 더불어 세계의 5대 갯벌로 한반도와 중국의 요동.산둥반도로 둘러싸인 서해 바다 연안에 포함되는 갯벌중의 한 곳 입니 다.

갯벌은 쓸모없는 땅으로 여겨져 1980년대 후반부터 '서해안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간척·매립사업의 대상이 되었으나, 최근 하천과 해수의 정화, 홍수 조절, 생태적 가치 등이 밝혀지면서 보전운동이 일어나고 있다. 새만금간척 사업으로 갯벌에 대한 일반인들의 인식 변화에 힘입어 관광객이 늘고 있는 여행 포인트이다.

  • 손바닥모양의 등대.
  • 난간에 기대어져있는 자전거한대
  • 노을이 지고있는 바다와 그앞의 등대 모습
최치원 전설

고군산 군도에서 가장 면적이 넓은 섬으로 신라초기에 본 신시도 주변에 풍성한 청어를 잡기 위하여 김해김씨가 처음으로 입주하여 사람이 살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신시도는 신라시대의 대학자로 명성을 떨친 최치원선생이 일시나마 살았던 곳으로 더욱 유명하다.

선생이 신시도를 찾게 된 연유는 옥구군 옥구면에서 한동안 서원을 차렸을 때 해변가인 하제에서 서해를 바라보다 신시도의 우뚝 솟아있는 월영봉을 쳐다보고 곧바로 명산이라고 칭찬을 하면서 뗏목같은 풍선(風船)을 타고 신시도에 도착 월영봉에 올랐다는 것이다.

최치원선생의 자는 고운 또는 해운이라고 부른다. 월영봉에 오른 고운은 그곳을 월영대라 칭하고 돌담을 쳐 거처를 만들어 놓고 때로는 생식을 하며 글을 읽었다고 한다. 해발 199m 인 월영봉은 선유8경의 하나로 가을이면 형형색색으로 물들인 단풍은 장관을 이룬다. 주민들은 너나없이 한폭의 동양화를 대표한다고 한다.

신시도 주민들이 이 월영대를 찾아 글을 읽은 최치원선생의 자가 고운이었음에도 해운이라는 자하나를 지어 부르게하여 신시도를 영원히 연상케 했다고 한다. 최치원 선생의 글 읽는 소리가 중국 남경까지 들렸다고 하는 얘기가 전해올 만큼 큰 소리로 글을 읽기도 하였지만 주변의 공기가 맑고 깨끗한 자연속에서 고독과 외로움을 잊어버리고 자연을 벗삼아 생활하였음을 의미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한때는 신시도 마을 청년들이 고운의 뜻을 기리고 지키기 위하여 고운이 글 읽었던 곳에 흔적이 남아 있는 돌담을 손질 보존하고 있을 정도로 고운이 이섬에 살았던 것을 마을사람들은 큰 자랑으로 여기고 있다.

선유도 지도

선유도 지도

고군산군도에서 세 번째로 큰 섬으로서 '두 신선이 마주앉아 바둑을 두고 있는 형국'이다.

군산에서 여객선을 타고 서남쪽으로 2시간 30분쯤 달리다보면 선유도의 명물인 망주봉을 만나게 된다. 한눈에 보기에도 사연이 있음직한 우뚝한 두 개의 바위산, 막연한 옛날 간신들의 모함으로 귀양 온 한 신하가 있어 다시 불러 주겠다 고 한 약속을 까맣게 잊어버린 임금을 그리워하며 매일 바위산에 올라 한양을 바라보았다 해서 그 이름을 망주봉(望主蜂)이라 했다고 전해진다.

망주봉 아래로는 초승달 모양의 완만한 모래 고운 백사장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만조가 되어 물이 가득 차면 가득 찬대로 썰물이 져 물이 빠져나가 갯벌이 드러나면 또 그대로 보는 이들의 가슴을 탁 트이게 해준다. 이 해변을 따라 예전에 는 모래 언덕이 높았었고 그 모래언덕을 따라 해당화가 무리 지어 심어졌었다고 한다. 해당화가 만발할 때면 그 향기로 선유도 일대가 흠뻑 취하곤 했다고 하는데 한 경찰지서장이 당뇨병에 특효라고 캐가기 시작한 이후, 당뇨병 환자들이 너도 나도 뽑아 가는 바람에 지금은 해당화 한 그루 볼 수 없는 민둥 모래 둔덕만 남아있다.

햇볕 좋은 여름날 오후, 말도(末島) 쪽으로 지는 해는 장엄하여 선유낙조(仙遊落照)라고 말한다. 소나기와 함께 생겨나는 망주폭포, 비구름으로 무겁게 내려앉은 하늘을 배경 삼아 유리알처럼 하얗게 부서져 내리는 폭포를 보고 있노라면 가슴이 감동으로 떨려 온다.

이름난 고장이면 그러하듯이 고군산군도에도 8경이 있다. 선유낙조, 삼도귀범, 평사낙안, 망주봉, 명사십리, 그리고 장자도 앞 칠산어장에 어찌나 많은 배가 몰려와 고기잡이를 했던지 밤에는 이 고기잡이하는 뱃불로 찬란했었다는 장자어 화(壯子漁火), 신시도의 월영대(月影臺), 주변 풍경이 그로 하여금 어울리게 하는데서 이름한 무산 12봉이 8경에 속한다. 이 8경 중 5경이 바로 선유도에 있다. 또 아득한 옛 날, 주변 풍경이 좋아 신선들이 놀다가곤 했었다는 선유도의 최고봉인 선유봉(해발 150m)에 올라보면 인근 경치를 한 눈에 조망할 수가 있다.

선유도의 북쪽으로는 횡경도가 천혜의 방파제로 막아서고 동으로는 신시도가, 서쪽으로는 관리도와 장자도가 마주 서있어 선유도는 섬들에 에워싸여 있는 형상이다. 선유봉 정상에 서면 방축도, 명도, 말도가 나란히 어깨를 맞대고 서있는 모습이 마치 어깨동무라도 한 것 같다.

선유도 주민들의 주소득은 바다에서 얻어진다. 약간의 논농사와 밭농사를 짓기도 하지만 전답을 합해 봐야 섬 전체 면적의 10%를 겨우 넘고 있을 뿐이다. 대부분의 가정은 평균 4.5톤의 소형어선을 이용하여 연안어업에 종사하거나 해태 (김)양식을 하고 있는데 바다에서 나오는 해산물이 해마다 줄어들고 있다. 봄, 가을엔 소라, 새우, 멸치잡이를 하고 겨울엔 해태양식, 여름에는 휴어기로서 선유도를 찾는 관광객들에게 대선(貸船)을 해서 수입 을 보태기도 한다.

한때 전라도의 수영(水營)이 설치돼 수군절제사가 임피, 군창, 만경, 김제, 부안, 무장, 고창, 영광 등 8개군을 다스렸을 만큼 번성을 구가했던 선유도, 곡창 호남의 관문으로 군창이 군산으로 바뀌면서 당시 고군산 도에 옛고()자가 붙어잃어버린 군도의 중심지 선유도는, 21세기 서해안 시대를 맞아 다시 한 번 일어서려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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