첼로 협주곡 나단조 작품 104은 미국 시대의 안토닌 드보르자크의 향수가 낳은 명작으로 1895년 2월에 완성, 같은 해 6월 손질을 하여 지금의 형태로 되었다. 드보르자크가 미국의 흑인이나 인디언의 민족음악과 모국 체코의 민족음악과 결부시키려한 자품이 여럿 있는 중에서 이는 음악으로서 가장 충실히 된 것이다. 독주부는 첼리스트에게 고도의 기술을 요구하고 있으나 그 기술이 전체의 표현에서 나타나는 일은 한 번도 없고 관현악부와 혼연일체가 되어 교향곡적으로 발전시켜 간다는 정도의 취급 방식은 작곡자가 경도되어 있던 브람스의 피아노 조가 있는 교향곡 이라는 협주곡에서 오는 영향도 느낄수 있어 첼로 협주곡의 최고의 명작의 하나로 손꼽히고 있다.
드보르작 교향곡 7번
드보르작은 1870년대말 발표한 '슬라브 무곡'으로 인해 엄청난 성공을 거두며 일약 국제적인 스타로 떠올랐는데, 이로 인해 유럽 전역에서 다양한 작품 의뢰가 들어오게 됩니다. 엘가가 그토록 좋아했던 교향곡 6번, 자식들을 잃은 슬픈 시기에 작곡된 '스타바트 마테르','레퀴엠'등도 당시 그의 명성을 드높여 주었지만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바로 그의 일곱번째 교향곡입니다. 드보르작의 교향곡 7번은 당시 런던을 비롯해 유럽의 많은 청중들이 고대하던 새로운 교향곡에 부응하는 어찌보면 그만의 개성이 너무나 잘 살아나 있으며 작품성 또한 아주 뛰어난 교향곡 이라고 평가되고 있습니다. 1악장의 강렬함, 2악장의 심오함, 3악장 스케르초의 너무나 뛰어난 교차 리듬과 인상적인 선율, 웅장한 4악장 피날레가 듣는 이에게 풍부한 감정까지 선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