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군산시립교향악단
작성일24.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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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그 / 홀베르그 모음곡 작품번호 40번 중 1번곡
작품번호 40번은 노르웨이 출신 덴마크 극작가 루드비그 홀베르그의 탄생 200주년 기념제를 위하여 작곡한 것으로 그 해에 완성된 것은 피아노 독주곡이었고, 오늘날 일반적으로 애호되고 있는 현악 합주용 악보는 다음해 1885년에 현악합주용으로 편곡하여 완성되었다. 1884년에 초연되었으며 Prelude, Sarabande, Gavotte, Air, rigaudon으로 구성되었고, 그리그가 바흐와 헨델 등에 의해 유명해진 프랑스풍 모음곡의 형식에서 착상을 얻어 작곡한 곡이다. 곡 전체에 18세기음악 양식과 낭만주의적 표현, 그리고 노르웨이 민속음악 고유의 감미로움이 배어 있고 작곡기법이 매우 섬세하며 그리그 특유의 뛰어난 선율감과 신선한 음악적 사고가 돋보인다. 피아노를 위하여 작곡한 원곡도 자주 연주되지만, 뉘앙스나 정서가 훨씬 풍부한 현악합주용이 더욱 인기가 있다.
1번곡 Prelude - Allegro vivace
<전주곡> 바로크 시대의 조곡 제1악장을 모방한 전주곡이 있는데, 프랑스풍의 서곡과 같은 완급의 형태를 취하지 않고 시종활기 있게 진행되는 토카타풍 경햐을 지닌 서곡이다. 서두 리듬과 악센트에 특색 있는 악구가 나타나는데 곧 이 리듬에 실려 우아한 선율이 나타난다. 이것들은 얼핏 듣기에 대조적인 성격으로 느껴지지만 일반 소나타 형식에 있는 것 같은 제1, 제2의 두 주제로서의 대비적인 의미는 없다. 주제의 제시가 반복된 후 극히 짧은 자유 전개풍 경향이 나타나지만 곧 최초의 율동적 요소와 제2의 선율적 요소가 조합되어 나타나고, 이윽고 재현부풍으로, 그것도 최초보다는 더욱 활기를 띠고 주제가 제시된다. 그 후에 짧지만 힘찬 결미로 이 장을 마무리 짓는다.
얀 쿠치어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출신의 얀 쿠치어는 1927년부터 1934년까지 베를린 음대에서 피아노와 작곡, 지휘를 공부한 후 암스테르담 콘세르트허바우에서 빌럼 멩겔버르흐의 제자가 되었다. 1950년에는 바이에른 방송 교향악단 소속 합창단의 리더 (카펠마이스터)로 임명되었으며, 이후 작곡에 더욱 많은 시간을 보냈다. 1966년부터 1976년까지 뮌헨 음대의 지휘 교수로 있었으며, 작곡활동은 2002년까지 지속했다. 작곡가로서 교향곡들과 협주곡, 발레곡, 실내악, 합창곡, 오페라 등 다양한 장르에 걸쳐 많은 작품들을 남겼다. 얀 쿠치어는 관악기, 특히 금관을 위해 많은 곡들을 썻다. 필립 존스 브라스 앙상블과 함께 작업했던 1970년대 후반에 금관 교향곡 등을 작곡하며 금관 음악 작곡가로 큰 명성을 얻었다. 그의 작품들은 20세기의 아방가르드를 따르지 않고, 작품의 특성에 따라 바로크부터 낭만, 경음악 등 다양한 스타일을 갖추고 있다. 그가 생전에 조직했던 국제 얀 쿠치어 콩쿠르는 금관 앙상블을 위한 콩쿠르로서 현재도 열리고 있다. 어린이 서커스는 두 대의 트럼펫, 호른, 트럼본, 튜바로 구성된 금관 오중주를 위한 작품으로 1986년에 작곡되었다. 제목에 쓰인 어린이와 서커스라는 의미의 두 단어는 이미 이 곡의 특징을 잘 성명해주고 있다. 총 아홉 개의 소곡으로 구성되어 장면이 빠르게 바뀌며 발랄한 경음악 스타일로서 리드미컬하면서 음악적 유머가 한가득 들어있다. 저음악기들이 연주하는 기본리듬 위에 고음악기들이 가볍게 뛰놀며 곡예를 부리는 리듬은 이 곡의 매력이며 또한 둔한 음색으로 민첩하게 연주하는 저음악기의 독주도 흥미롭다.
브람스 / 대학축전 서곡
브람스는 46살때 1879년 3월 11일 독일의 브레슬라우 대학에서 주는 가장 정결하고 고귀한 음악가에게주는 명예철학박사학위를 기쁨 마음으로 받아들였다. 그의 명예박사 학위 증서에는 그가 "현시대 진지한 음악의 대가들 가운데 첫 번째"라는 표현이 기록되어 있기도 하다. 그에 대한 감사의 답례로 브람스는 대학축전 서곡을 작곡하였다. 1881년 1월 4일 브레슬라우 관현악협회 콘체르트 하우스 홀에서 많은 청중들 앞에서 자신의 지휘로 성대하게 초연되었으며, 대학에 헌정되었다. 이 곡은 서곡이기는 하지만 엄격한 소나타형식을 따르지 않고 자유로운 형식으로 작곡되었는데 1958년 그의 나이 25살때 괴팅겐에서 학생들과 사귈 무렵 익힌 4곡의 학생의 노래에 작곡가 자신이 만든 주제를 엮어서 전체를 하나로 화려하게 혼합하여 안성하였다. 브람스의 서정적이고 낭만적인 선율에 새로운 세상을 향한 젊은이의 폐기가 묻어나는 작품이다. 대학축전서곡은 그 느낌이 경쾌하고 유모가 깃들어서 브람스 자신도 라이네케에게 보낸 서신에서 웃는 서곡 이라 하였다.
당돌하고 당당한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1번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1번는 그의 첫번째 피아노 협주곡이지만 사실은 2번이 첫번째고 이곡은 두번째 작품이다. 그의 나이 21살에 작곡된 것으로 2번과 달리 베토벤 특유의 돌발적인 악상과 당돌함 그리고 반듯하고 당당한 아름다움이 있다. 젊은, 아니 어린 나이라서 선배인 모짜르트나 하이든의 단순한 모방이거나 심대한 영향을 받은 초기작으로 오해할 수 있지만 모짜르트, 하이든 그리고 베토벤을 좋아하는 음악 애호가는 단박에 이 곡이 베토벤표 오리지날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다. 2번이 작은 홀에서 연주되는 자그만 협주곡을 염두에 둔 것이라면 1번은 플룻, 클라리넷, 오보, 바순, 트럼펫, 혼과 드럼을 다 포함하는 본격적인 대작이다. 이 곡은 1798년에 프라하에서 초연되었는데 당시 이곡을 들어보 ㄴ체코의 뛰어난 젊은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였던 Jan Vavlav Tomasek은 후에 이런 글을 남겼다고 한다. <그의 파워넘치고 빛나는 연주는 존경하지만 유기적이고 점진적인 아이디어 전개 없이 한 멜로디에서 다른 멜로디로 갑자기 대담하게 건너뛰는 그의 연주는 그렇지 않다. 이런 취약점은 번번히 그의 위대한 작품을 훼손하는데 청중은 가끔 너무 무례한 방식으로 알게된다. 독특함과 개성 자체가 그의 주된 목적인 것 같다.>
생상 / 피아노 협주곡 2번 Op.22
피아노 협주곡 2번은 생상스의 피아노 협주곡 중 가장 유명하며, 오늘날 프랑스 독주 협주곡 장르에서 중요한 작품들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1868년 5월 13일 파리의 살 플레엘에서 생상스의 피아노 협주곡 2번이 초연되었다. 당시 작곡가 본인의 피아노 연주와 안톤 루빈스타인의 지휘로 연주가 진행되었는데, 그 결과는 그리 좋지 못했다. 하지만 훗날 이 무대는 프랑스 악파에서 피아노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음악이라는 개념을 정립한 역사적인 사건이 되었다. 이전까지의 피아노와 오케스트라르 위한 음악들은 쇼팽의 작품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었고 그의 영향력 안에서 맴도는 작품들만이 등장했던 것이 사실이었다. 그러나 생상스의 피아노 협주곡 2번에 이르러 진정한 프랑스 특유의 기질이 드러나는 상투적인 표현을 써보자면 삶의 기쁨이 가득 차 있는 작품이 탄생한 것이다. 생상스가 작곡한 5곡의 피아노 협주곡중 어떤 작품도 피아노 협주곡 2번의 경지에 이르지 못했다. 프란츠 리스트는 이 작품에 대해 당신의 피아노 협주곡 2번은 찬사를 보내야 마땅하며 창안해낸 형식은 매우 새롭고도 적절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악장이 진행될수록 그 음악적 흥미가 더욱 발현되고 환상적으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특히 반복부에 보다 극적인 악센트를 추가해서 더욱 풍부한 느낌을 줍니다. 라고 칭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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