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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불 3길 큰들길

Gubul-gil Course 3 Great Field Course

총거리 17.2Km 총소요시간303

너른들(큰들)을 걷는 길로 지네를 닮았다하여 오공혈이라 불리는 고봉산과 건축학적으로 의미있는 채원병고택을 지나 임진왜란 등에서 공을 세운 최호장군 유지와 발산리유적(5층 석탑 등)을 만날 수 있는 길로 풍요와 아픔을 동시에 간직한 길이다.

  • 채원병 가옥
    성산면 고봉리 고봉산 기슭에 위치한 과거 이 지역 부농의 주택이었으나, 행랑채 등 많은 부분이 헐려져 현재는 안채와 사랑채, 사당 밖에 남아 있지 않다. 그러나 각 방이 나뉘어져 있으면서도 툇마루로 연결되어 있는 특이한 공간 구조와 뛰어난 조경 수법을 보여주고 있어 건축사적으로 중요한 자료이다. 풍수지리적으로 이 집의 터는 고봉산의 지맥이 마치 지네와 같은 형상을 이루고 있는데 그 혈맥이 바로 이 집안으로 흘러 들어와 이 집의 중심부가 지네의 어금니에 해당한다고 전해지고 있다. 안채의 건립 연대는 철종 11년(1860)이며 사당은 광무 5년(1901)에 지었다. 이 가옥의 조경수법은 대문 안쪽의 안채가 직접 들여다 보이지 않도록 차면 화단이 꾸며져 있다.
  • 진남정
    1921년에 이 고장의 유림, 유지와 한량들의 발기로 현 경암동인 옥구군 경포천변에 건립되었는데 하천이 자주 범람하므로 1928년에 월명동의 위치에 옮겨 세워졌다고 한다. 이 정자는 정면 4칸, 측면 2칸의 우진각집이었다. 그 후 신축되어 개정면 발산리 월령마을 최호장군 유적지 내의 2,500여평의 대지에 120여평 규모의 2층 건물로 전통과 현대식의 절충형으로주건물은 현대식이 고 사대는 목조기와의 전통 양식의 정사 건물을 2003년 착공하여 2006년 3월 26일 준공하였다.
  • 최호장군유지
    최호장군유지는 사당, 무덤과 전시관으로 되어 있으며, 사당은 1729년에 최호장군의 후손이 만들었으며 1906년에 다시 지었다. 최호 장군은 1536년 임피현 발산에서 태어나 무장인 아버지 최한정에게 무장이 되기 위한 훈련을 받았고, 커서 1574년(선조 7)에 무과 병과에 급제하였다. 다시 무과 갑과에 급제한 후 무장으로 뛰어난 활동을 하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나 임금이 의주로 피난갔을 때 함경남도 병마절도사로 왜병의 정예부대와 싸웠고 1596년 충청도 병마수군절도사로 있던 선조 29년(1596)에 이몽학의 난을 바로 잡았으며 정유재란 때(1597)에는 칠전량 해전에서 싸우다가 전라우수사 이억기, 조방장, 배흥립과 함께 전쟁터에서 죽음을 맞이하였다. 그가 사용한 유품과 선조가 그의 공을 기념하여 하사한 삼인보검을 보관하고 있다.
  • 발산리 5층 석탑과 석등
    보물 제276호인 석탑은 신라탑의 양식으로 만들어진 고려시대 석탑으로 완주군 고산면 삼기리 봉림사지에서 일제시대 시마타니가 반출하였다. 보물 276호로 지정된 발산리 5층 석탑은 한눈에 보기에도 전형적인 신라계통 석탑의 양식을 계승한 석탑임을 알 수 있는데 탑의 건립연대는 옥개석의 짧은 추녀와 부분적으로 간략화 시킨 특징으로 보아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탑임을 알 수 있다. 이 탑은 발산리 5층 석탑이라는 이름처럼 본래 5층 석탑이지만 현재는 4층만이 남아있다. 5층 석탑과 함께 시마타니에 의해 완주군 삼기리 봉림사에서 옮겨진 석등은 석탑과 같은 장소에 위치하고 있다. 발산리 석등은 보물 234호로 지정된 문화유산답게 보물이라는 표현 그대로 첫 느낌에도 강한 힘과 부드러움이 절묘하게 융화된 예술 작품임을 알 수 있다.
  • 시마타니 금고
    발산초등학교에는 석조유물 말고도 금고로 이용되었던 3층의 금고형 건물이 있는데 초등학교가 시마타니 농장이었던 시절 만들어진 건물로 일제의 우리 문화재 약탈의 상징적 건물이다. 반지하인 1층과 지상 2층으로 이어진 3층 건물인데 외부로 통하는 창문에는 쇠창살을 치고 그 바깥쪽으로 철물을 달아 2중의 방범장치가 되어있다. 또한 출입문은 육중한 금고 문을 달아 놓았는데 금고 문에는 USA마크가 선명하게 있는데 미국에서 수입한 수입품임을 알 수 있다. 반지하에는 옷감과 음식류가 있었으며 2층에는 농장의 중요서류와 현금이 있었고 3층에는 한국의 고 미술품이 다수 소장되어 있었다고 한다.
  • 대방마을 선돌
    군산지역의 경우 확인된 선돌은 6기(발산리 1, 사정동 1, 미산리 2, 하용정 2)이지만 남아있는 선돌 중에 일명 총각바위라 불리는 발산리 대방마을 선돌은 높이 1m 35cm의 뾰족한 날이 하늘을 향하고 있다. 인근 삼수마을 주민들이 제례를 올리는데 그 이유는 선돌이 쓰러지면 대방산의 음기 때문에 마을 처녀들이 바람난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때문에 혹시 총각바위가 넘어지기라도 하면 삼수마을 사람들이 바위를 다시 세우고 제사를 지냈으며 이때 대방마을 사람들에게도 떡과 술을 대접하며 총각바위를 잘 보호해 달라고 부탁하였다고 한다. 때문에“총각바위 넘어뜨려 떡이나 얻어먹자”라는 농담이 있었다고 한다.
  • 지경장
    대야장은 일명 지경장으로 불렸는데 어원은 남내리에 있는 고개인 지재에서 따온 것이다. 당시 이곳 지재는 옥구현과 임피현의 경계에 위치하고 있었기 때문에 지경이라고 불렸는데 지금도 과거에 지경장이 열렸던 장터마을이 있다. 남내리의 지경장은 소금장과 우(牛)시장이 컸다고 하는데 장날에는 회현과 옥산에서 사람이 많이 모는 장소였기에 일본 경찰의 주재소도 자리하고 있었다. 이 지경장은 일제시대인 1912년 호남선의 지선인 군산선이 대야를 통과하게 되면서 시장이 사람이 많이 모이는 대야로 옮겨가며 시장의 명칭도 따라가서 본래 배달메라 불리던 대야가 지경리라 불리게 되었고 지금도 그렇게 불리고 있다. 지금도 1일과 6일에 5일장으로 서고 있어 장날이면 옛 정취를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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