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흘러간 근대문화 역사를 조명해보자
작성자 ***
작성일10.06.13
조회수795
첨부파일
군산 문화관광 산업의 현황과 과제 자료 들를 살펴보다보니 고고학 측면에서 보존해야할 유물을 찾다가 많은것을 새롭게 발견하게 되었다,
새마을사업이 시작되고 농가 지붕개량사업이 시작 될 때 종가집인 우리 집에 지붕에서 약 1 백여 년 전 농사를 지어 수확을 하였던 볍씨를 발견하게 된 이야기 이다,
그것은 다름 아닌 당시 가을철 벼 타작 기술이 허술해서 볏짚 낱알이 초가지붕용 나 랫 장 에 붙어 있었던 것으로 아주 키가 작은 볍씨 종자 가 그대로 초가지붕 위에 백년의 세월을 말하면서 그 자리에서 그대로 있었던 것이다.
지금 같으면 이 종자를 가지고 유전공학 측면의 당시 벼 종자를 분석해보도록 농촌진흥청 연구실에 기증을 할 것이다. 옛 우리조상들의 농사기술을 파악하는데 좋은 자료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최근에서야 하게 된 것이다,
요지 음 우리고장을 찾아오는 전국 방방곡곡의 관광객들이 주말이 되면, 우리나라 최초의 빵집인 이 성당 빵집에 줄지어서 빵을 사려고 기다리는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 풍경이고
이들은 가족들에게 빵 맛을 보여 주려고 선물용까지 사 가고 있다. 일제 강점기에 우리지역에서 벌어졌던 수많은 이야기 발굴이 더 시 간 이 지날수록 어렵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당시를 체험한 어른들께서 점점 돌아가시게 되거나 기억을 해 낼 수 없는 것이다. 얼마 전에 필자는 내항 진포테마 공원에서 83세이신 장인어른과 대화 중 발산 시마타니 농장에서 쌀가마를 지게로 짊 머 지고
이곳 내항까지 1번밖에 쉬지 않고 오셨다는 증언을 들었다, "그렁게 80kg 쌀 한 가마니를 사정리 고개에서 한번 쉬고 항만에 들어오면 땀이 비 오듯이 얼굴에 흘렀어,
골 마리의 수건이 흠뻑 졌어서 힘없는 사람은 하지 못 허구 아이 구 그놈들 나무 돈표 몇 장을 주고. 곱창 해장국말이 밥 먹었지, 그러니까 힘이 장사도 어쩔수 없었어, 여러 번 이곳까지 운반하셨다는 증언을 하시는데 나도 놀랬다.
20리를 지게로 쌀을 짊 머 지고 왔지 신작로에는 오고가는 지겟꾼들 참 많았던 거야 가용돈은 그렇게 벌어서 썼어 ‘ 이렇게 말씀 하신다, 역사는 그냥 지나간 것이 아니고 새로운 무엇인가를 역사 속 에서 발견 할 수 있다는 이야기 인 셈이다.
내항 부잔교 옆에는 네모난 돌로 박아서 만든 기둥도로가 약 80m가량 그대로 남아있다, 이곳은 기중기나 중장비가 많이 사용하던 일제강점기 당시 항만을 문화유산인데 서서히 세멘트로 그냥 포장이 되어 뭍 혀 지고 있다.
쌍촌 이 영춘 박사님 고택은 문화제로 등록 되어있지만 집 주변 도로는 지난해 개정간호대학 출빕 통로로 사용키 위해 아스팔트 덮어씌워서 땅 밑으로 붙 혀 버린 아까운 돌기둥도로가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필자는 프랑스와 독일 등 유럽 여행 중 도로 바 닦 에 1차 세계 대전당시 포로들이 만들어놓은 돌기둥을 포장을 하지 않고 그대로 보존해가는 것을 보았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 것 인가 그냥 소홀히 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을 덮어버리는 무지함을 더 이상은 하지 말아야 한다,
근대 문화역사를 말하는 현장인 구 세관에서 문화관광 해설사로 활동중 우리나라 세관의 야사인 흘려간 이야기를 보면서 우리지역 당시 자료들을 더 깊게 살펴보고 연구해 보려한다,
역사는 말없이 유유히 흘러갔지만 그것을 간직하려는 마음이나 생각은 남의 일이 되었다 .한 가정에서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다음날 돌아가신 분이 쓰시던 사진이나 용품들은 어김없이 불을 지르거나 버린다.
그런데 최근에 발견된 고문서 한 장에 수억 원이 나가는 문화제가치가 있는 소장품이 모 대학 교수께서 헌책방에서 발견하여 기증한 사례가 있다한다.
군산의 근대문화 역사가 일본인들의 것만은 아니고 우리 고장의 지난날 슬픈 과거의 흔적이라는 사실에 주목하고 나는 지금이 군산세관의 110년의 역사를 재조명해 보면서 그 기록들을 정리할 시점이 아닌 가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우리 군산에는 고 군산 선유도를 중심으로 뭍 혀 진 역사를 조명해야하는 과제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고 군산 해양유물들에 대하여 깊이 생각 해봐야 하는 시점인 것 같다,
이 순신 장군이 수군을 통제하셨던 진영 터 와 임금이 집무를 보았던 행궁. 군산 정. 오룡 묘. 이곳 주변에서 발견된 고려청자 파편들이 말하는 고 군산의 찬란한 역사를 왜 지금까지 그곳에 그냥 두고 방치 하였는지,
더 늦기 전에 지금이라도 재 조명시켜 우리 고장을 찾아오는 관광객들에게 알리는 적절한 안내판 하나 만 이라도 우선 세워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근대 문화 역사만 알리는 구 불 길 코스도 개발해 관광객들 손에 지도 한 장씩 쥐어주고 그들이 잘 보존된 우리 군산시 근대문화유산을 걸어서 찾아 볼 수 있도록 하는 관광 상품이 하나 더 개발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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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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