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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나리봇짐 젊고똑똑한 여행객들을 잡아라!
작성자 ***
작성일10.07.24
조회수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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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겨울 005.jpg (파일크기: 673, 다운로드 : 34회) 미리보기
요지음 군산에 찾아오는 관광객중에는 여름방학을 알차게 보내는 아주 똑똑한 젊은이들을 옛 군산세관 문화관광 해설현장에서 자주 만나면서 필자는 많은 생각을 해본 다.
이들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철로 변에 가까이 주택이 들어선 경 암 동 철길마을 부 터 걷기 시작해 지금은 폐선이 된 옛 군산선 철길을 따라 일제강점기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근대사 이야기들을 찾아 개나리 봇 짐 차림으로 찾아오곤 한 다.
1920년대 조선총독부 관저와 비슷한 건축비를 들여 서양식 일본식 한국식을 절충해서 지은 일제시대 최대의 농장주 구마모도 별장 주택인 한국의 슈바이처 쌍 촌 이 영춘 박사의 가옥까지 꼼꼼히 다녀가는 그들을 보면서,
우리 지방도 예전에 비해서 관광거리가 점점 많이 알려지고 그들의 관광 형태도 참 많이 변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든 다. 이 젊은 이 들에게 우리고장의 근대문화 역사만 이야기 거리로 해도,
볼거리 먹을거리 잠 잘 거리를 제공하고 이들을 먹이고 입히고 재워서 만 보낸다 해도 상당한 지역경제에 도움이 될 것 이라고 생각이 된다. 옛 개정병원 자리의 구마모도는 악덕 지주로
서울 여의도 면적 10배가 넘는 광활한 농지를 소유하면서 소작인만 3천 세대 2 만여 명에 달하는 현재 군산에 남아있는 일제강점기 주택 중 가장 아름답고 보존이 잘된 건물인데 구마모도가 귀국선을 탄 이후 얼마 전까지,
이 영춘 박사께서 거주하면서 이 영춘 가옥으로 불리게 되었다,
이 주택의 거실 벽난로 소파와 침대는 고종 황제 일가가 사용했던 것으로 이 건물을 배경으로 빙점, 야인시대. 모래시계와 같은 영화와 드라마가 촬영되어 유명하다
이들은 그 외에도 발산리 금고로 불리는 시마타니 금고로 유명한 3층높이로 만들어진 일본인 시마타니 야소야 라는 일본인의 개인 금고에 전국에서 서화 도자기 불상. 석조, 예술품등 닥치는 데 로 모아서 개인 금고에 빼곡히 쌓아놓았다고 하고
해방이후 이곳에 보관 되었던 수많은 보물급 예술품들이 중앙박물관으로 옮겨졌다는 금고이다. 요지 음 냉면으로 유명한 군산에서 가장 오래된 한정식 집은 압 강 옥 인데
지금은 사정 동 으로 옮겼지만 북한 음식의 진미를 자랑하고, 그 외에도 군산에 일제시대의 흔적만이 아니고 러시아 공관이 있었던 영화 동 12-6번지, 건물과 소수이지만 1889년 배타적 외국인 거주지역인
조계 지역에는 소수의 프랑스 사람들도 살았고, 째보선창. 뜬 다리 부두. 빈 해원 .소설 아리랑에 나오는 아주 오래된 중화 요리 집으로 당시 숙박업까지 했던 곳이,
장미 동 빈해원에서 위로 100m 정도 떨어진 동 해 루이다. 1920년대에 만들어진 우리나라에서 최초에 빵집 일본인에 의해 시작되었고 해방 후 일하던 종업원에게 넘겨주었다는 군산의 대표적 명물이 되었고
청춘남녀들의 아련한 사랑의 추억이 서린 가장 오래된 빵집으로 유명한 이 성 당, 일본 나가사키에 본사를 두고 있던 은행으로 일제강점기에 미곡을 반출하고 토지를 강매하기 위해서 설립된 장기십팔은행. 1923년 신축된 건물로
당시 지금의 서울 외에는 이처럼 큰 건물이 없었다는 조선은행은 바다로 통하는 비상통로가 있어 비상 사 태 시 구명정을 타고 바다로 빠져 나갈 수 있었다 하는 구 조선은행.
1908년 대한제국이 8만 7천원의 자금으로 군산항 개발을 시작해 독일인이 설계하고 벨기에서 가 져 온 붉은 벽돌과 건축자제 지붕은 고딕양식이지만 창문은 로마 에 스 코 양식이고 3개의 뾰쪽한 철탑이 인상적인 서울역과 한국은행 본점과 같은 양식이어서
우리나라 건축학적으로 주목을 받고, 드라마 1945년 서울의 촬영지로 시용된 구 군산세관, 1926년 개통된 터널로 일본인들이 주거지역과 수산업 중심지 해망동을 연결해주는 역할을 한 해망굴과 신사 참배의 고통스런 울림이 끊이지 않았고
해방 후 에는 북한군 부대의 지휘소가 연합군 공군기들의 기관총 공격을 피해 있었다는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 촬영장, 해 망 굴,
청 춘 옥, 우리나라에 일본식 사찰로 1913년 대웅전이 창건 되었다는 당시 금강사라 했고 해 방 후 동국사라 로 개명된 민족시인 고 은 선생님이 출가해서 머물던 동국사의 은은하게 들려오는 종소리의 추억을 간직하고
개항 된 후 일본인들과 함께한 종교가 어떻게 이 땅에 정착했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근대유산이다. 일본 전통양식 가옥 중 현존하는 건물 중에 가장 뛰어난 영화장군의 아들에서 홍 야 제 야쿠자 히 야 시 의 집으로
세간에 알려진 일제시대 포목상으로 돈을 많이 번 히 로 스 가 건축하여 한국제분 관사로 사용된 지방 등록 문화제183호인 히 로 스 가옥은 황토색 담장이 흥미로우며. 본 건물은 일본의 사무라이 가옥구조를 띠고 있다.
일제강점기에 세워진 당시 대형 건물로 이곳에서 연극 공연과 문화생활의 중심지였던 지금은 여러 사회단체가 들어선 옛 조달청 자리의 군 산 시 제 3청사인 가 부 끼 극장과
호남지역에서 가장 먼저 기독교의 선교가 이루어진 군산항 개항보다 6년 앞서 들어왔다는 여러 기록을 필자가 살펴본 내용에 의하면 1893년 선교사 전위렴 이 우체국이 세워진 동 령 산에 최초로 군산교회를 세운 후,
그 후 구 암 동산에 궁 멀 교회를, 구 암 교회 와 개복교회는 근세시대 기독교가 어떻게 군산지방에 정착했는지 양 교회가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경성고무는 일제시대 이 만수 사장에 의해 창업된 군산의 유일한 민족기업이고 이름을 경성 고무라 한 것은 한국에서 제일 큰 고무신 공장이었기 때문이란다, 일제가 호남평야 의 쌀 30만 가마를 열차 150량으로 3천 톤 배를 이용해 일본으로 실어 나른
한 많은 부잔교와 군산선 철로를 보면서 많은 생각을 했고. 현재 4,030톤짜리 내항에 정박한 진포대첩 홍보 기념관으로 월남전에 16회 출격한바 있는 위 봉 호 선박 를 보면 당시에 얼마나 큰 선 박 이 었 는 가 생각게 하고 있다,
특히 이곳 내항 주변에는 6,25사변당시 북한에서 피난을 나온 실향민들이 2,5000여명이 잠시 군함에서 내려 머물었던 곳이기도 하다. 해망 동 산자락인 월명 공원과 흥남동, 개정동, 소룡동. 조촌동 지역에 그들의 삶의 애환이 서려 저 있고 .
일부는 익산시, 김제시 진안등 산간부에 까지 당시 실향민들이 살았다. 군산에는 일제시대 아 시 노 하 나( 아침의 꽃) 주조회사로 출발한 1945년 해방이 되자 군산 기업인인 강 정 준 씨가 인수한 조선양조라는 이름으로 변경
군산의 향토 기업으로 키운 백화양조 지금은 모 그룹으로 넘어간 처음처럼, 백화 정종이 생산된 백화양조는 피었구나, 피었구나, 백화가 피었구나, 라는 cm송으로 유명한 선전을 했고
어쩌다가 관광객들에게 해설을 하면서 헤 여진 군산항 노래를 불려주면 흥이 나서 앙 콜 송으로 이 cm 송을 부르면 모두가 자지러지는 웃음으로 즐거운 시간이 되기도 한다.
1930년대 조선 최고의 작가 백릉 채 만식 선생의 탁류 첫머리에 탁류로 흐르는 금강하구와 서해바다 그리고 충청도 장항 제련소가 한눈에 보인 다,
금강 변에 세워진 철새 조망대와 채 만식 문학관 에는 탁류, 태평천하. 레이 메이드 인생 등 대표작과 345편의 많은 소설과 희곡. 수필들이 전라도 사투리의 정감 있게 구사되어 있어
일제 시대배경의 대표작품 탁류문학 기행을 하려는 젊은이들과 만인 보를 완간한 고은 선생님 일제시대 화가로 활동한 일본 이 과전에서 최고상을 받은바있는 하 반영 선생님을 방문하는 발길들이 분주하고.
임 피 향교와 노 성 당. 옥구향교의 대성 전, 고은 최 치원 선생님의 책 읽는 소리가 당나라에까지 들렸다는 신시도 월 영 대, 고 봉 산 낙영 당 선앙서원, 어청도봉수대, 토성들.
그리고 최근에 알려진 구 불 길 , 비 단 강 길, 청암산 구슬뫼 길 ,큰들 길, 새 만 금 방조제, 풍력 단지. 째보선창, 등 풍부한 자연 그대로의 풍광과 관광객들의 볼거리가 있어,
한층 명산동 일식 가옥 군을 찾아다니면서 꼼꼼히 저마다 간단한 여행용 가방을 들고 다니거나 등산용 가방에 카메라를 들고 사진을 담아가며 여행들을 하는데, 이들은 대중교통인 기차나 버스로
부산에서부터 시작해 여수에서 군산을 거쳐 수도권까지 자기가 평소에 보고 싶었던 곳이라면 어디든지 찾아간다고 말 하면서, 우리 지역의 일제 강점기 당시 그 시대 사람들의 구석구석에 얽혀진 군산역사 이야기를 들을 물어가면서 여행을 하고 있다.
이들은 숙소를 대부분 어디에 목적지를 두고 하루 일정을 잡은 것은 아니고 여러 날들을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여행하지만, 조금만 시민들이 나서서 우리고장을 찾아온 그들에게 알리고
친절을 베풀어 주면, 그들은 바로 다른 곳으로 향해 자리를 떠나지 않고 머물게 된다, 이들에게 숙소는 조촌동 신 시청 주변 중저가 모텔과 민박 항도 호텔 등 구 도심지의 숙소를 소개하고
식사는 아침 해장국 전주식당과 한일옥 일해옥을, 중식은 유성가든. 계곡가든. 일풍식당. 대정칼국수, 신가내 칼국수, 복성루, 쌍용반점, 빈해원 백반 집 한 주 옥. 성원식당 .도선장 주변횟집을 소개하고
저녁은 군산회집이나 비 응 도 횟집단지 영화 동 유정초밥 소성식당이나 희락을 소개한다, 이들에게 마치 선교사들처럼 군산을 소개하고 자랑하고 친절하게 숙소와 식사를 할 곳을 가르쳐주면 되는데
대부분 지나가는 시민들에게 물어보는면 친절하게 가르켜 주는 분들도 있지만 대게 많은 사람들은 자세히 말해주지 않고 저리로 가보랑게! 하게나 거시기 저기로 쭉 가보시오! 하면
그들은 군산을 외면해 버리고 떠난 다. 우선 관광에 대한 우리 시민들이. 사회봉사 단체가 먼저 공부를 좀 해보자 시간이 되는대로 말이다, 그리고 정책적으로 평가를 하는 사업 중 관광에 대한 실력을 평가하는 항목이 있었으면 좋겠다,
생색을 내는 곳에 많은 사람이 몰려가는 것보다 우리 고장을 알리는 문화관광 사업에 뜻이 있는 시민들이 나서는 일이 백 번 좋은 일이라고 필자는 본다.
돈이 되고 생색을 내는 곳에는 사람들이 몰려들지만 남들이 안보는 곳에서 묵묵히 일하는 사람들이 있어 군산시를 행복하게 만들고 복을 받는 일이 될 것이다
고장을 찾아 이들에게 시간을 물어가면서 열심히 설명을 하자! 군산에 살면서 한번도 군산의 산 역사를 돌아보지 않아 잘 몰랐다고, 서울에서 온 조카 손을 붙잡고 스탬프 여행을 꼼꼼히 하면서
순회하는 나운 동 거주 최 경아 씨(40대)는 외숙모가 이제야 내가 알게 되어 조카에게 많이 챙 피 했 다 며 얼굴을 붉힌다. 조카의 손에 이끌린 손잡고 온 그분의 말이 지금도 내 귀를 생생하게 흔들고 있다,
우리가 친절하게 군산을 소개하고 나면 대부분 다시 그들은 시간을 내어서 가족들과 친구들이 함께 이곳에 오게 된 다고 생각한다,
다행스러운 건 현재 현장에서 땀을 흐리면서 무더운 날씨에 열심히 진을 빼가며 건강을 생각지 않고 적은 인원으로 군산을 열심히 알리는 사람들도 있다
어떻게 지금 소수의 인원으로 그냥 스치면서 다녀간 관광객들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적은 인원을 계속 활용해야 겠 다 생각 하면 절대로 안 될 일이다.
이러한 일은 각 기관 단체가 모두 나서서 홍보 관이 있으면 홍보 관에서 먼저 찾아온 손님에게 군산 관광을 소개하고 실제로 현장 체험을 하면서 현장에서 이야기를 하는 목소리를 조금씩 고쳐가자 그리고 머리를 맞대고 중지를 모아서,
우리 고장 아름다웠던 과거와 현재의 군산의 모습을 비교해 새롭게 변한 활기찬 군산의 모습을 더 많이 알리는 일을 해야 할 것이라 필자는 생각해본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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