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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만금)수평선을 꿈꾸는 레이서들....
작성자 ***
작성일10.06.11
조회수807
첨부파일
지난 봄에 춘천 인라인 마라톤대회에 참관 했다가,
새만금에서도 방조제 준공기념으로 인라인 마라톤 대회를 개최한다는 포스터를 받아 들었다.
이틀후, 새만금대회 주최측에서 우리 카페에 대회 개최에 관한 공지를 올려 놓았다.
서울에서 좀 멀다 싶어서 망설이다가,
바다를 달릴 수 있다는 상상에,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뭔가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들기 시작했다.
토요일 아침, 온조대왕 체육관에 나갔다.
춘천에서 받아온 포스터 몇 장을 체육관 당직 근무자에게 전달하고 게시해 줄 것을 요청했다.
다음 날, 미사리 번개모임에서 꿈틀거리는 '새만금 상상'을 늘어 놓았다.
이 날은, 금년들어 5개월만에 처음 부츠를 신던 날이다.
나는 새만금대회를 참가하기 위하여 재활훈련을 선포하고, "바다 길을 달려 보자고" 바람을 잡았다.
우리는 이렇게 해서 17명의 선수가 새만금대회를 참가하게 되었다.
그리고, 4주후 오월의 마지막 일요일 새벽 4시, 어둠을 헤치며 하나, 둘 모이기 시작했다.
출발시각이 다 되었다.
백마탈 왕자님이 보이지 않았다. 전화를 해도 받지 않는다.
'큰일이다!' 집이라도 알면 찾아가서 깨우겠지만, 어제 저녘에도 새만금에 "간다"고 했다는데 어쩌나....
4시 15분에는 떠나야 한다는 회원님들의 걱정을 뒤로하고,
계속해서 통화버튼을 눌러 보지만 되돌아 오는 소리는,
"고객이 전화를 받지 않아, 삐~ 소리 이후 음성 사서함으로 연결됩니다. 연결된 후에는 통화료가 부과 됩니다"가 전부다.
점점 초조해 진다. 1분 15초마다 대답해 주는 기계음 대신 왕자님 목소리를 간절하게 기다려 본다
"여보세요?" 출발 2분전, 드디어 들렸다. 4시 13분,
"이제 깨었어요! 금방 올거예요. 오면 함께 가시죠!"
모두들 안도의 숨을 내 쉬었다.
김주수 사장님을 남겨두고, 버스는 예정시간보다 30분 늦게 출발했다.
'휴게소는 Pass해야 할 것 같았다.'
그런데, 진짜 휴게소를 서지 못하고 서울에서 군산까지 Non stop으로 주파하고 말았다.
공주 분기점에서 길을 잘 못 들어서는 바람에 버스기사님은 당황해서 어쩔줄 모르고, 총무님과 태선님은 내비게이션이 되어 고속도로를 안내하고 있었다.
화장실 가야할 사람들이 몇 분 보인다고 원장님은 걱정을 하며 안부부절 한다.
버스안은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늦으면 어떻하나?"
"늦게라도 가서 회라도 먹고 와야지!"
어젯밤에 준비해 온 김밥과 생수를 나누어 주었다.
공주에 있는 여러 톨게이트를 들락달락 하기를 몇 번을 하고 한참 후에야 군산IC로 방향을 잡았다.
군산시내에 들어서, 모여드는 관광버스와 플랭카드를 짚어가며 버스는 대회장에 진입했다.
대회장 도착 7시30분.... 버스 기사님 이마에는 식은 땀이 흐르고 있는 듯 했다.
kd토네이도 부스를 찾은 우리들은, 허레벌떡 유니폼을 갈아입고, 번호표를 가슴과 헬멧에 붙였다.
대회장에 도착해서 출발할 때까지 1시간의 준비시간은 너무 짧았다.
스트레칭도 못하고 겨우 기념사진 몇 컷 찍은후 우리는 출발선 앞에 섰다.
저마다 화려한 색상의 유니폼들은 금방이라도 튀어 나갈것 같았다. 육지도 바다도 출렁거렸다.
생각보다 바람은 강하지 않았다.
50km를 뛸 우리는 동그랐게 모였다.
그리고, 손을 가운데로 모으고 "화이팅~"을 외쳤다. 파란 하늘을 쳐다 보며, '끝까지 함께 달리자'고 약속했다.
곧이어, 출발 신호가 떨어졌다.
몇번의 Push만으도 눈 앞에 바다가 펼쳐졌다.
출발부터 감동적인 풍경이 예고 되었다. 앞으로 전개될 대 자연에 2,300여 레이서들은 흥분을 감추지 못 했다.
이 순간을 놓칠세라 두 발은 쉴 새 없이 아스팔트를 밀고, 한 손은 셧터를 눌러댔다.
"회장님! 조심하세요!"
우리의 기관차인 마루치님이 뒤에서 사진 찍는 내가 걱정되었나 보다.
무리들에 섞여 승식님, 태선님, 형철님은 완벽한 꾸러미가 되어 발까지 잘 맞추고 있었다.
그 뒤를, 재홍님, 태형님, 희준님이 약간 간격을 두고 따라 붙었다.
승묘님과 은희님은 꼬리가 되어 선두와 멀어졌다, 가까워졌다를 반복했다.
가을님이 흘깃흘깃 뒤를 돌아본다.
2~3km쯤 지날 무렵, 승묘님이 보이지 않았다.
"승묘 언니 어떻하죠? 저 뒤에 오는데...." 은희님이 물어왔다.
"기다렸다가 함께 가요!" 은희님과 나는 멈춰섰다.
선두에선 마루치님도 멈췄다. 모두가 멈춰서 뒤를 돌아 보았다.
금새 따라 붙었다. 우리 팩은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왼발! 오른발!,
하나! 둘!
누군가의 구령에 8명은 한 사람 같이 발을 맞췄다.
구령도 우렁찼고, 자세도 배운데로 좋았다.
방조제 인도에는 파랑 바탕색에 인어와 물고기들이 그려져 있었다.
검은 아스팔트를 빼고는 하늘도, 바다도 파랬다. 옅은 안개에 수평선 조차 구분되지 않았다.
'이런 길을 달리다니....'
수평선 위에 펼쳐진 검은 아스팔트는 레이서들을 홀리기에 충분했다.
.처녀 출전했던 용인대회의 칼바람 추위....
.세계적인 선수들과 함께 달렸던 영종도대회.....
.대전에서의 3종경기와 108km 대회.....
.섬진강변의 100km 로드런......
지금까지의 그 어떤 코스에서 느껴보지 못 했던, "스르륵~스르륵~" 휠의 마찰음과 브드러운 베어링 소리....
그리고, 끝없는 수평선 너머 작은 섬들의 풍경은 한 폭의 그림 같았다.
상쾌한 바닷 바람 촉감이 주는 행복감에 엔돌핀이 마구마구 뿜어져 나왔다.
4주간의 재활 훈련은 헛되지 않았다.
팩의 선두와 후미를 오르락 내리락 하며, 하늘과 땅 그리고 바다 위를 달리는 kd토네이도를 작은 디카에 채워 넣었다.
기록에 욕심 많은 레이서들은 이제 우리 앞에 모두 지나가고 없다. 우리들만 달리고 있다.
우리 팩이 50km 중에는 맨 마지막인 것 같았다.
한가롭게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며 대열을 흐트리지 않았다. 좌우로 풍경을 감상하며 점점 수평선 끝으로 끌려 간다
우리 팩 말고는 부딪힐 만한 사람이 없다.
한사람, 한사람 얼굴도 클로즈업 하려고, 회원들에게 다가갔다.
시원한 바닷 바람 탓에 흐르는 땀은 보이지 않는다. 모두들 경쾌하게 질주한다.
"V"자를 펼쳐보이는 여유로움은 바닷새가 되어 날아가는 듯 하다.
up-down도 없다.
굽은 길도 없다.
삼거리나 사거리도 없다.
그저 끝없이 검은 양탄자만 깔려 있을 뿐이다.
혹시 끝없이 달리다 '바다에 빠지지 않을까' 동화같은 상상도 해 본다.
절대로 빠지지 않는 바다라고 이야기 하듯, 과속 감시 카메라가 우리를 뚫어지게 내려다 보고 있었다.
'레이서들이여! 지루해 하지 마라!'고 중간중간 신호등도 깜박깜박 말을 걸어온다.
횡단보도와 이정표가 레이서들의 등대가 되어 주었다.
"우다다다" 빨갛게 염색된 아스팔트는 무릅을 그냥 두지 않았다.
확실한 과속 방지 노면이었다 그러나 피하고 싶었다.
녹색 유니폼의 kd토네이도는 마냥 즐겁다. 하늘을 향해 왼손을 흔들어 본다.
열렬히 응원하는 빨간 조끼의 자원봉사자들 환호를 지나칠 땐 다리에 힘이 펑펑 솟는다.
길쭉한 렌즈를 들고 엎드려 쏴 자세의 카메라 맨은 우리의 폼을 더 멋지게 만들어 준다.
환상의 코스에, 매끄런 대회운영에 모든 레이서들이 편안했을 것이다.
맨 뒤에서 멋진 포즈의 핑크색 은희님을 놓칠 수 없었다. "찰칵~"
아름다운 새만금에 홀려서 달리다 보니, 어느 덧 터널이 나타났다.
처음 달려보는 길이지만, 우리가 달려야 할 코스의 중간쯤 이라고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전망대가 있는 신지도를 지나고 있었다.
터널속도 파랗다. 머리 위엔 물고기들이 헤엄치는 듯 하다.
가을님이 백마탈 왕자님을 밀고 있었다.
한명이라도 낙오자 없이, 함께 갈려는 가을님의 동료애가 빛나는 순간이었다.
터널을 지나 약간의 내리막이 시작되었다.
여기까지 우리 팩은 거의 흐트러짐 없이 유지되었다.
기관차에 바짝 붙은 열차들은 가속을 멈추지 않고 내리 쏘고 있었다. 은희님도 떨어지지 않고 바짝 붙어 달린다
백마탈 왕자님은 이 내리막을 쉼터로 삼고 있었다.
기관차가 자꾸자꾸 멀어져 갔다.
가을님은 왕자님을 슬슬 포기하고 있었다.
승묘님과 나도 왕자님과 인사를 나누고 지나쳤다.
"천천히 오세요....포기하지 마시고.....끝까지요...."
지금까지 하나의 팩이 3개로 나뉘었다.
이때 부터 승묘님과 나는 결승선까지 함께 달렸다.
어느새 선두 그룹이 반대편에서 달려오고 있었다. 설이사님이 선두그룹 바로 뒤에 붙어 있었다.
"설형~ 화이팅~"
잠시후, 우리 팩의 기관차와 열차가 나타났다.
"토네이도 화이팅~"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소릴 질렀다.
그후, 우리도 "반환점(25km)" 표지판에 이르렀다.
반환지점을 가로막은 자원봉사자들은 속도 줄이라고 야단법석 이었다.
이제부터는 뛰엄 뛰엄 레이서들이 보였다.
고갈된 체력에 주져 앉은 사람도 있었고, 더러는 힘없이 어슬렁 거리는 사람을 지나쳤다.
허리축에 마주잡은 손은, 셀카 찍듯이 뒤에 오는 승묘님을 찍어본다.
레이서 없는 하늘만 찍힐지도 모른다.
나중에 보니까 아스팔트 아래 승묘님이 거꾸로 서서 열심히 달리고 있었다.
바다가 하늘같고, 하늘이 바다 같았다.
"왕자님! 화이팅~"
늘어진 어깨를 추수리고 반대편에서 반환점을 향해 왕자님이 다가오고 있었다.
혼자 가는 레이서들을 우리는 하나, 둘 재치고 있었다.
좀더 속도를 내고 싶었다.
그렇지만, 지난 겨울 다친 발가락을 생각하며 나는 "겸손해야지!"하고 속도를 억제했다.
우리는 작은 팩이었지만, 지치지 않는 팩이 되어 일정한 속도를 유지했다.
그렇게 한참을 달리던 중, 낮익은 뒷모습을 발견했다. 가을님 이었다.
이미 가을님은 지쳐 있었다.
"아니 여기까지 와서 이러면 안되죠? 힘내세요!"
"아이고, 체력이 바닥 났어요! 먼저 가세요"
멋적어 했다. 뒤에 붙을 줄 알았는데 가을님은 점점 멀어져 갔다.
"다 왔어요!"
"얼마 안 남았어요"
이번에는 남학생들이 Finish line이 얼마 남지 않음을 알려주었다.
다시 돌아오지 못할 것 같았던, 비응도 항이 점점 가까와졌다.
'수평선의 끝이 여기였던가?'
Finish line 아치를 액정에 담으면서 나는 레이싱 중 촬영을 마쳤다.
매연없는 새만금 방조제는, 전국의 어느 도시에도 없는 최고의 코스였다.
언덕길과 내리막 길이 없는 것이 단조로울 수도 있지만,
초보자에게는 안전해서 좋았고,
상급자에게는 기록에 도전할 수 있는 최상의 코스였다.
내년에도 끝없는 수평선의 레이싱을 기대해 보며, 우리는 채석강으로 버스를 돌린다.
"전망좋은 집"의 조개구이, 농어회, 매운탕과 복분자 막걸리는 또 하나의 추억이 되어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백합죽과 칼국수까지 다 비우고, 새콤한 갓김치를 한 봉지씩 손에 들고 서울로 향했다.
2010. 5. 30 새만금방조제를 달리던 날......
새만금에서도 방조제 준공기념으로 인라인 마라톤 대회를 개최한다는 포스터를 받아 들었다.
이틀후, 새만금대회 주최측에서 우리 카페에 대회 개최에 관한 공지를 올려 놓았다.
서울에서 좀 멀다 싶어서 망설이다가,
바다를 달릴 수 있다는 상상에,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뭔가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들기 시작했다.
토요일 아침, 온조대왕 체육관에 나갔다.
춘천에서 받아온 포스터 몇 장을 체육관 당직 근무자에게 전달하고 게시해 줄 것을 요청했다.
다음 날, 미사리 번개모임에서 꿈틀거리는 '새만금 상상'을 늘어 놓았다.
이 날은, 금년들어 5개월만에 처음 부츠를 신던 날이다.
나는 새만금대회를 참가하기 위하여 재활훈련을 선포하고, "바다 길을 달려 보자고" 바람을 잡았다.
우리는 이렇게 해서 17명의 선수가 새만금대회를 참가하게 되었다.
그리고, 4주후 오월의 마지막 일요일 새벽 4시, 어둠을 헤치며 하나, 둘 모이기 시작했다.
출발시각이 다 되었다.
백마탈 왕자님이 보이지 않았다. 전화를 해도 받지 않는다.
'큰일이다!' 집이라도 알면 찾아가서 깨우겠지만, 어제 저녘에도 새만금에 "간다"고 했다는데 어쩌나....
4시 15분에는 떠나야 한다는 회원님들의 걱정을 뒤로하고,
계속해서 통화버튼을 눌러 보지만 되돌아 오는 소리는,
"고객이 전화를 받지 않아, 삐~ 소리 이후 음성 사서함으로 연결됩니다. 연결된 후에는 통화료가 부과 됩니다"가 전부다.
점점 초조해 진다. 1분 15초마다 대답해 주는 기계음 대신 왕자님 목소리를 간절하게 기다려 본다
"여보세요?" 출발 2분전, 드디어 들렸다. 4시 13분,
"이제 깨었어요! 금방 올거예요. 오면 함께 가시죠!"
모두들 안도의 숨을 내 쉬었다.
김주수 사장님을 남겨두고, 버스는 예정시간보다 30분 늦게 출발했다.
'휴게소는 Pass해야 할 것 같았다.'
그런데, 진짜 휴게소를 서지 못하고 서울에서 군산까지 Non stop으로 주파하고 말았다.
공주 분기점에서 길을 잘 못 들어서는 바람에 버스기사님은 당황해서 어쩔줄 모르고, 총무님과 태선님은 내비게이션이 되어 고속도로를 안내하고 있었다.
화장실 가야할 사람들이 몇 분 보인다고 원장님은 걱정을 하며 안부부절 한다.
버스안은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늦으면 어떻하나?"
"늦게라도 가서 회라도 먹고 와야지!"
어젯밤에 준비해 온 김밥과 생수를 나누어 주었다.
공주에 있는 여러 톨게이트를 들락달락 하기를 몇 번을 하고 한참 후에야 군산IC로 방향을 잡았다.
군산시내에 들어서, 모여드는 관광버스와 플랭카드를 짚어가며 버스는 대회장에 진입했다.
대회장 도착 7시30분.... 버스 기사님 이마에는 식은 땀이 흐르고 있는 듯 했다.
kd토네이도 부스를 찾은 우리들은, 허레벌떡 유니폼을 갈아입고, 번호표를 가슴과 헬멧에 붙였다.
대회장에 도착해서 출발할 때까지 1시간의 준비시간은 너무 짧았다.
스트레칭도 못하고 겨우 기념사진 몇 컷 찍은후 우리는 출발선 앞에 섰다.
저마다 화려한 색상의 유니폼들은 금방이라도 튀어 나갈것 같았다. 육지도 바다도 출렁거렸다.
생각보다 바람은 강하지 않았다.
50km를 뛸 우리는 동그랐게 모였다.
그리고, 손을 가운데로 모으고 "화이팅~"을 외쳤다. 파란 하늘을 쳐다 보며, '끝까지 함께 달리자'고 약속했다.
곧이어, 출발 신호가 떨어졌다.
몇번의 Push만으도 눈 앞에 바다가 펼쳐졌다.
출발부터 감동적인 풍경이 예고 되었다. 앞으로 전개될 대 자연에 2,300여 레이서들은 흥분을 감추지 못 했다.
이 순간을 놓칠세라 두 발은 쉴 새 없이 아스팔트를 밀고, 한 손은 셧터를 눌러댔다.
"회장님! 조심하세요!"
우리의 기관차인 마루치님이 뒤에서 사진 찍는 내가 걱정되었나 보다.
무리들에 섞여 승식님, 태선님, 형철님은 완벽한 꾸러미가 되어 발까지 잘 맞추고 있었다.
그 뒤를, 재홍님, 태형님, 희준님이 약간 간격을 두고 따라 붙었다.
승묘님과 은희님은 꼬리가 되어 선두와 멀어졌다, 가까워졌다를 반복했다.
가을님이 흘깃흘깃 뒤를 돌아본다.
2~3km쯤 지날 무렵, 승묘님이 보이지 않았다.
"승묘 언니 어떻하죠? 저 뒤에 오는데...." 은희님이 물어왔다.
"기다렸다가 함께 가요!" 은희님과 나는 멈춰섰다.
선두에선 마루치님도 멈췄다. 모두가 멈춰서 뒤를 돌아 보았다.
금새 따라 붙었다. 우리 팩은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왼발! 오른발!,
하나! 둘!
누군가의 구령에 8명은 한 사람 같이 발을 맞췄다.
구령도 우렁찼고, 자세도 배운데로 좋았다.
방조제 인도에는 파랑 바탕색에 인어와 물고기들이 그려져 있었다.
검은 아스팔트를 빼고는 하늘도, 바다도 파랬다. 옅은 안개에 수평선 조차 구분되지 않았다.
'이런 길을 달리다니....'
수평선 위에 펼쳐진 검은 아스팔트는 레이서들을 홀리기에 충분했다.
.처녀 출전했던 용인대회의 칼바람 추위....
.세계적인 선수들과 함께 달렸던 영종도대회.....
.대전에서의 3종경기와 108km 대회.....
.섬진강변의 100km 로드런......
지금까지의 그 어떤 코스에서 느껴보지 못 했던, "스르륵~스르륵~" 휠의 마찰음과 브드러운 베어링 소리....
그리고, 끝없는 수평선 너머 작은 섬들의 풍경은 한 폭의 그림 같았다.
상쾌한 바닷 바람 촉감이 주는 행복감에 엔돌핀이 마구마구 뿜어져 나왔다.
4주간의 재활 훈련은 헛되지 않았다.
팩의 선두와 후미를 오르락 내리락 하며, 하늘과 땅 그리고 바다 위를 달리는 kd토네이도를 작은 디카에 채워 넣었다.
기록에 욕심 많은 레이서들은 이제 우리 앞에 모두 지나가고 없다. 우리들만 달리고 있다.
우리 팩이 50km 중에는 맨 마지막인 것 같았다.
한가롭게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며 대열을 흐트리지 않았다. 좌우로 풍경을 감상하며 점점 수평선 끝으로 끌려 간다
우리 팩 말고는 부딪힐 만한 사람이 없다.
한사람, 한사람 얼굴도 클로즈업 하려고, 회원들에게 다가갔다.
시원한 바닷 바람 탓에 흐르는 땀은 보이지 않는다. 모두들 경쾌하게 질주한다.
"V"자를 펼쳐보이는 여유로움은 바닷새가 되어 날아가는 듯 하다.
up-down도 없다.
굽은 길도 없다.
삼거리나 사거리도 없다.
그저 끝없이 검은 양탄자만 깔려 있을 뿐이다.
혹시 끝없이 달리다 '바다에 빠지지 않을까' 동화같은 상상도 해 본다.
절대로 빠지지 않는 바다라고 이야기 하듯, 과속 감시 카메라가 우리를 뚫어지게 내려다 보고 있었다.
'레이서들이여! 지루해 하지 마라!'고 중간중간 신호등도 깜박깜박 말을 걸어온다.
횡단보도와 이정표가 레이서들의 등대가 되어 주었다.
"우다다다" 빨갛게 염색된 아스팔트는 무릅을 그냥 두지 않았다.
확실한 과속 방지 노면이었다 그러나 피하고 싶었다.
녹색 유니폼의 kd토네이도는 마냥 즐겁다. 하늘을 향해 왼손을 흔들어 본다.
열렬히 응원하는 빨간 조끼의 자원봉사자들 환호를 지나칠 땐 다리에 힘이 펑펑 솟는다.
길쭉한 렌즈를 들고 엎드려 쏴 자세의 카메라 맨은 우리의 폼을 더 멋지게 만들어 준다.
환상의 코스에, 매끄런 대회운영에 모든 레이서들이 편안했을 것이다.
맨 뒤에서 멋진 포즈의 핑크색 은희님을 놓칠 수 없었다. "찰칵~"
아름다운 새만금에 홀려서 달리다 보니, 어느 덧 터널이 나타났다.
처음 달려보는 길이지만, 우리가 달려야 할 코스의 중간쯤 이라고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전망대가 있는 신지도를 지나고 있었다.
터널속도 파랗다. 머리 위엔 물고기들이 헤엄치는 듯 하다.
가을님이 백마탈 왕자님을 밀고 있었다.
한명이라도 낙오자 없이, 함께 갈려는 가을님의 동료애가 빛나는 순간이었다.
터널을 지나 약간의 내리막이 시작되었다.
여기까지 우리 팩은 거의 흐트러짐 없이 유지되었다.
기관차에 바짝 붙은 열차들은 가속을 멈추지 않고 내리 쏘고 있었다. 은희님도 떨어지지 않고 바짝 붙어 달린다
백마탈 왕자님은 이 내리막을 쉼터로 삼고 있었다.
기관차가 자꾸자꾸 멀어져 갔다.
가을님은 왕자님을 슬슬 포기하고 있었다.
승묘님과 나도 왕자님과 인사를 나누고 지나쳤다.
"천천히 오세요....포기하지 마시고.....끝까지요...."
지금까지 하나의 팩이 3개로 나뉘었다.
이때 부터 승묘님과 나는 결승선까지 함께 달렸다.
어느새 선두 그룹이 반대편에서 달려오고 있었다. 설이사님이 선두그룹 바로 뒤에 붙어 있었다.
"설형~ 화이팅~"
잠시후, 우리 팩의 기관차와 열차가 나타났다.
"토네이도 화이팅~"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소릴 질렀다.
그후, 우리도 "반환점(25km)" 표지판에 이르렀다.
반환지점을 가로막은 자원봉사자들은 속도 줄이라고 야단법석 이었다.
이제부터는 뛰엄 뛰엄 레이서들이 보였다.
고갈된 체력에 주져 앉은 사람도 있었고, 더러는 힘없이 어슬렁 거리는 사람을 지나쳤다.
허리축에 마주잡은 손은, 셀카 찍듯이 뒤에 오는 승묘님을 찍어본다.
레이서 없는 하늘만 찍힐지도 모른다.
나중에 보니까 아스팔트 아래 승묘님이 거꾸로 서서 열심히 달리고 있었다.
바다가 하늘같고, 하늘이 바다 같았다.
"왕자님! 화이팅~"
늘어진 어깨를 추수리고 반대편에서 반환점을 향해 왕자님이 다가오고 있었다.
혼자 가는 레이서들을 우리는 하나, 둘 재치고 있었다.
좀더 속도를 내고 싶었다.
그렇지만, 지난 겨울 다친 발가락을 생각하며 나는 "겸손해야지!"하고 속도를 억제했다.
우리는 작은 팩이었지만, 지치지 않는 팩이 되어 일정한 속도를 유지했다.
그렇게 한참을 달리던 중, 낮익은 뒷모습을 발견했다. 가을님 이었다.
이미 가을님은 지쳐 있었다.
"아니 여기까지 와서 이러면 안되죠? 힘내세요!"
"아이고, 체력이 바닥 났어요! 먼저 가세요"
멋적어 했다. 뒤에 붙을 줄 알았는데 가을님은 점점 멀어져 갔다.
"다 왔어요!"
"얼마 안 남았어요"
이번에는 남학생들이 Finish line이 얼마 남지 않음을 알려주었다.
다시 돌아오지 못할 것 같았던, 비응도 항이 점점 가까와졌다.
'수평선의 끝이 여기였던가?'
Finish line 아치를 액정에 담으면서 나는 레이싱 중 촬영을 마쳤다.
매연없는 새만금 방조제는, 전국의 어느 도시에도 없는 최고의 코스였다.
언덕길과 내리막 길이 없는 것이 단조로울 수도 있지만,
초보자에게는 안전해서 좋았고,
상급자에게는 기록에 도전할 수 있는 최상의 코스였다.
내년에도 끝없는 수평선의 레이싱을 기대해 보며, 우리는 채석강으로 버스를 돌린다.
"전망좋은 집"의 조개구이, 농어회, 매운탕과 복분자 막걸리는 또 하나의 추억이 되어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백합죽과 칼국수까지 다 비우고, 새콤한 갓김치를 한 봉지씩 손에 들고 서울로 향했다.
2010. 5. 30 새만금방조제를 달리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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